다섯 번째 소란
아가씨라고 불러 주면 감사할 정도죠. 야, 너 이렇게 다들 부르니까.
인터뷰. 태린-루나
42%. 2018년 조사된 신규 간호사 사직률이다. 절반 가까운 신규 간호사들이 병원을 떠난다. 코로나19로 인해 의료인들이 겪고 있는 고충들이 재조명되고 있지만, 간호사들의 고통 섞인 외침은 지금까지 계속 존재해 왔다. 그들의 노동은 ‘백의의 천사’라는 이름 아래 대상화, 혹은 성역화될 뿐이다. 우리는 그들의 진심 어린 목소리에 귀 기울였던 적이 있는가. 한 달 차 신규 간호사 루나의 이야기를 들어 보았다.
- 안녕하세요, 간단한 자기소개를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대구 소재의 간호학과를 졸업하고 현재 대학병원에 재직 중인, 천사가 되기 싫은 신규 간호사 루나입니다.”
- 지금 어떤 일을 하고 계신지 소개해 주실 수 있나요?
“저는 대구에 위치한 상급 종합병원에서 3월부터 발령을 받아 근무하고 있습니다. 제가 일하고 있는 병동은 신경외과인데요. 뇌, 척수, 말초신경 등 우리 신체의 신경계에 발생하는 질환에 대해 수술적 치료나 약물적 치료를 하는 곳입니다.”
- 근무 형태는 어떻게 되나요?
“근무는 아침-데이, 오후-이브닝, 밤-나이트로 구성이 되어 있어요. 8시간씩 3교대 근무를 하고 있습니다. 저희 병동은 팀 간호방식으로 환자 인원 수에 맞게 4~5개 팀으로 구성되어 있어요. 간호사 한 명당 최소 8명에서 최대 12명의 환자를 보게 됩니다. 간호 보조 인력으로는 간호조무사 2명, 환보사 1명이 있습니다. 동료 간호사들의 연령대는 저랑 비슷하게 20대 중반부터 40대 후반까지 다양합니다.”
- 처음 투입된 시점이 코로나 시국이기도 하고… 신규 간호사로써 느낀 점이나 힘들었던 점이 있나요?
“네, 일단 시국이 시국인지라 코로나 확진 환자로 인해 병동을 4개 정도 새로 열었는데요. 이 때문에 기존에 있던 병동이 뿔뿔이 흩어지게 되었어요. 그래서 메인 과가 아닌 타과 환자를 어쩔 수 없이 받게 됩니다. 타과 환자는 지시되는 처방이나 간호중재가 전부 다 달라서 환자 파악하기가 너무 힘들어요. 그래서 환자 파악에 많은 시간이 걸리고, 업무가 밀리게 되죠. 저는 이제 갓 들어온 신입이니까 너무 혼란스럽죠, 아직까지. 그리고 보호자의 컴플레인이 제일 힘들어요. 감정 노동이라고 하죠. 환자 옆에서 계속 상주하는 건 의사가 아니라 간호사이기 때문에. 보호자분들이 저희에게 불만을 토로할 때가 굉장히 많아요. 그냥 얘기하시면 상관이 없는데, 욕설이나 폭행을 하시는 분들도 간혹 계시기 때문에 응대하기가 가장 힘들어요. 일단 신규 간호사들은 주어진 업무를 하기도 바쁜데 보호자분들도 상대해야 하니까. 신규 사직률이 실제로 되게 높고요. 높을 수밖에 없는 환경이죠.”
- 신규 간호사들이 주로 20대 초중반인 경우가 많잖아요. 루나 님도 그렇고. 그렇기 때문에 겪는 어려움도 있으실 것 같은데.
“어리다, 막내라는 이유로 병동의 모든 잡일은 제 차지가 돼요. 정해진 업무도 보기 힘든 상황인데, 병동 모든 잡일을 다 하려고 하니 제 업무가 늦어지는 건 다반사고. 의사소통 시에도 반말, 명령조로 하시니까 주눅이 들 수밖에 없는 것 같아요. 환자, 보호자 분들이나 다른 의료인들도 어린 여성 간호사들을 좀 하대하는 분위기가 있다고 할 수 있죠.”
- 특히 차별적인 호칭을 사용하는 분들이 많으시다고.
“네. 간호사라고 불리는 경우가 거의 없는 것 같아요. 솔직히 ‘아가씨’라고 불러 주면 감사한 정도에요. 야, 거기, 이봐, 뭐 이런 식으로 대부분 부르시고. 솔직히 어르신들이 아가씨라고 부르는 건 좀 악의가 없는 경우가 많아요. 그래서 그냥 그러려니 해요. 야, 너보다는 낫다 이런 생각으로.”
- 근무 중에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으시다면 소개 부탁드립니다.
“저희 병동은 일반 병실과 준중환자실로 나누어져 있어요. 준중환자실은 일반 병실에 계시는 환자들보다는 중한 상태고 중환자실에 들어갈 정도는 아닌 중간 상태의 환자들을 보는 병실인데요. 최대 8명의 환자를 받을 수 있고 눈 앞에서 환자들을 보기 때문에 중재를 빠르게 할 수 있어요.제가 입사한 지 2주 정도 되는 날이었는데요. 준중환자실 환자로, 원래 특이병력 없으신 분으로 집에 계시다가 갑자기 뇌출혈이 발생해서 응급수술 하고 경과를 지켜보던 분이 계셨어요. 뇌 수술을 하면 인지나 지각이 잘 되지 않아요. 멘탈이 많이 불안정한데 이분이 계속 화장실을 가고 싶다고 하시는 거에요. 근데 이분이 원래 다리에 힘이 약하시고, 계속 누워 있었으니까 다리에 힘이 잘 들어가지 않았고, 어쩔 수 없이 기저귀에다가 용변을 보셔야 한다, 라고 환자분과 보호자분께도 잘 말씀을 드렸죠. 그리고 제가 다른 업무를 하다가 돌아왔을 때 이분이 화장실 가시겠다고 일어나시다가 서서 용변을 보게 되었죠. 근데 환자한테 있어야 할 기저귀가 없는 거에요. 제가 이전에 기저귀 착용한 것도 확인했는데 기저귀가 없더라구요. 보호자 분이 그냥 환자분이 불편해 보인다는 이유로 빼 버리셨더라구요. 진짜 그날 그만두고 싶다는 생각을 정말 많이 했어요. 바닥에 흐른 대변이랑 소변을 치우고 환자분 몸 닦아 드리고.... 다시 보호자분 교육도 해 드리고. 좀 현타가 오더라구요. 그게 아직도 기억에 선명합니다.”
- 또 다른 경험도 소개해 주실 수 있나요.
“학생 신분으로 실습을 했을 때를 생각해 보면 오히려 즐거운 기억들이 많이 남아 있어요. 정신과 병동에서 실습을 했었는데, 제가 실습한 병동에는 10대 환자가 많았거든요. 부르마블이라는 보드게임을 했었어요. 그때 상대 팀 환자가 9살 남자아이였는데, 처음부터 서울을 탐냈어요. 하지만 서울은 제 차지가 되었고 그 이유로 저한테 삐져서 하루 종일 말도 안 걸고 째려보기만 하고. 그 친구 화 풀어준다고 온갖 노력을 한 기억이 나네요. 귀여웠어요. 또 뿌듯했던 기억은 정형외과 병동에서 실습을 했었을 때 이야기인데요. 다리 수술을 받고 보행운동을 해야 하는 환자분이 계셨는데 보행운동을 안 하시는 거예요. 자기는 더 좋아질 수 없다고 생각을 하신 거죠. 그래서 매 번 그분 병실을 찾아가서 말동무가 되어 드리면서 운동의 중요성에 대해 교육해 드렸죠. 실습 마지막 날은 제가 해준 말로 인해 운동 할 의지가 생겼다고 말씀해 주셔서 너무 뿌듯했어요. 앞으로 계속 운동하겠다는 약속도 받고 기분 좋게 퇴근했던 게 기억이 나요.”
- 감사합니다. 마지막으로 하고 싶으신 말씀이 있다면?
“저도 취업을 준비하면서 스트레스도 많이 받고 엄청 힘들었거든요. 지금은 간호사가 되어가는 과정 중 시작이고… 저도 매일매일 현타 오고 그만두고 싶긴 하지만, 시간이 해결해 준다는 말이 있잖아요. 간호사, 간호사 지망생, 그리고 여성 노동자 여러분 모두 오늘도 화이팅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