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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란 Sep 02. 2020

일한 만큼 받고, 받은 만큼만 일하고 싶다

네 번째 소란

내 시급에 서비스 값은 없어!

글쓴이. 감자





   2017년 현 정권이 출범하고, 정부는 ‘최저시급 1만 원’ 공약을 달성하기 위해 매년 조금씩 시급 인상을 하겠다고 발표했다. 그리고 2018년 최저시급은 전년 대비 1,060원 올랐다. 이에 기업들은 최저시급 인상을 이유로 채용인원을 대폭 감축했다. 그때의 나는 아르바이트 구인 대행 앱을 통해 총 12곳에 지원했고, 그중 단 1곳에서 연락을 받았다. 나를 포함한 주변 친구들은 안전과 복리후생이 보장되지 않은 일자리마저 감사하며 들어가야 했다. 


   내가 뽑힌 가게는 ‘이자카야’로 음식과 주류를 판매하는 업체였다. 주변에서는 주류 판매업체 알바가 신체적·정신적으로 힘들다며 극구 말렸지만, 어쩔 수 없었다. 부모님께 받는 월 40만 원 용돈은 교통비와 식비만 해도 부족했는데, 자취방 관리비가 7만 원이었기 때문이었다.


   출근하는 첫날, 사장님은 ‘일의 강도상 3개월을 버티는 사람이 없는데, 그걸 버티고 3개월이 넘어가면 시급 1만 원으로 맞춰주겠다’고 말했다. 좋은 조건이라고 생각했지만, 이 제안에는 조건이 붙었다. 근로계약서를 작성하지 않는 것이다. 당장 그 달 생활비가 궁했던 나는 달리 방법이 없었기 때문에 이 제안을 수락했다. 그리고 4개월만 해보자는 생각으로 버텼던 것이 2년이 넘었다. 매번 새 알바를 구하려 했지만 그럴 수 없었다. 그렇게 하려면 현재 알바를 그만두고 새 알바를 구해야 하는데, 정기적 수입이 없는 상황에서 일자리만 구하고 앉아있기는 힘들었다.


   2년 사이에 많은 일이 있었다. 나는 한 번에 20개 이상의 주문을 암기할 수 있었고, 혼자서 가게 매출을 최대 160만 원까지 올리는 기가 막힌 능력을 갖게 됐다. 여기에 성추행 발언을 삼켜내는 능력은 덤으로 주어졌다. 


   사장이 예고했던 것처럼 가게의 업무 강도는 심각했다. 나는 서빙 일로 취직했는데, 다른 일들도 해내야만 했다. 통상의 상식으로 서빙은 ‘음식을 나르는 것’인데, 우리 가게는 그것 말고도 다양한 일을 요구했다. 구체적으로 몇 가지를 나열하자면, ‘도미구이 또는 조림이 들어올 시, 냉동 창고에서 생선 가져오기’, ‘커피 주문이 들어오면, 커피 내려서 드리기’, ‘사케 주문이 들어올 시, 창고에서 얼음 갈아서 가져오기’, ‘주방 식자재가 떨어질 경우, 지하 창고에 내려가서 들고 오기’, ‘볶음 주문이 들어올 경우 창고에서 야채 꺼내오기’, ‘밥 메뉴는 적당량의 밥 퍼주기’, ‘술 나갈 때, 무조건 안주랑 같이 나가기’, ‘손님 나갈 때, 인사하고 문 닫아주기’, ‘만석일 때 손님 오면, 죄송하다 하기’, ‘귀를 쫑긋 새우고 있다가 손님이 젓가락이나 숟가락을 떨어트렸을 경우, 손님이 말 안 해도 알아서 주기(우리는 보통 젓가락 센스라고 말한다.)’, ‘설거지하기’, ‘주문받은 전 메뉴는 암기하기’, ‘마감 때, 화장실 청소하기’ 등이 있다. 


  여기서 주의할 점은, 이 각 요구는 절대 각각 한 개씩 차례대로 들어오지 않는다. 평소 아르바이트 상황을 대입해서 예를 들면, 1번 테이블에서 도미구이와 소주를 시키고 2번 테이블에서 새우볶음 요리와 커피를 시켰는데 3번 테이블이 식사를 마치고 일어났을 경우, 내가 취해야 할 행동은 다음과 같다.


  먼저 1번 테이블 주문을 받고 도미머리를 가지러 창고에 뛰어갔다가 3번 테이블 계산을 하기 위해 돌아오면서 중간에 2번 테이블에 ‘주문 잠시만 기다려주세요’라고 웃으며 말해야 한다. 그리고 3번의 계산을 해주고 손님이 완전히 나가기 전까지 앞에서 배웅하다 문을 닫아줘야 하고, 돌아와서 2번 주문을 받자마자 야채를 가지러 다시 창고에 갔다가 오자마자 음식 세팅을 한 후, 기본 안주를 만들어 1번에 소주를 먼저 서빙한 후에야 2번의 커피 샷을 내릴 수 있다. 그 사이에 3번의 테이블을 치우고, 1번의 메뉴가 나오면 실수 없이 음식을 줘야 한다. 기본적 일이 이 정도일 뿐, 사장이 요구하는 추가적 일은 설거지와 젓가락 센스 등이 있다. 위의 예시는 테이블 3개의 상황이지만, 실제 가게 자리는 테이블 8개와 1인석 8개다. 알바생은 이 과정에서 단 한 개의 실수도 해서는 안 되며 완벽하게 이행해야 한다. 자연스럽게 우리는 안전을 포기하게 됐다. 급하게 서빙을 하다가 국이 손에 닿거나, 계단에서 넘어질 뻔하거나, 서빙하다가 손을 베이거나 하는 위태로운 안전 경고를 신경 쓰지 못하고, 퇴근할 때 오늘도 잘 넘겼음에 감사한다.


   가게의 지역 위치 특성과 음식 종류 때문인지, 대부분의 손님은 30~50대였고 여성보다는 남성 비율이 높았다. 사장은 ‘손님에게 웃으며 친절하게 말하기’를 강조했다. 처음 아르바이트를 시작했을 때, 나는 사장이 바라는 수준의 친절함으로 손님을 대했다. 사장은 개업하기 전 유명한 호텔에서 일했는데, 그래서 그런지 일개 아르바이트생에게 직원 수준의 서비스를 요구했다. 그가 말하는 요구를 나열하면, ‘무조건 머리는 화장실 앞 공간에서 묶기’, ‘손님에게 웃으며 친절하게 말하기’, ‘젓가락 센스’, ‘핸드폰 사용금지’, ‘음식을 내려놓는 방향’ 등이 있었다. 


 나는 평소에 얼굴이 ‘나이에 비해 어리다’는 말을 자주 들어왔다. 남자 손님은 ‘어리게 보이는 여성이 웃으면서 친절하게 서비스를 할 때’, 대게 몇 가지 일관된 모습을 보였다. 첫째, 무조건 ‘아가씨’라고 부른다. 대부분은 이 호칭을 어린 여성을 높이기 위해서 붙인 것이라고 생각한다. 둘째, 시선 강간을 하거나 성추행을 한다. 


 웃으면서 친절하게 하라 해서 그렇게 하면, 대부분의 남성은 이 행동을 자신에게 호감이 있다고 생각한다. (이거 진짜로 그렇게 생각한다) 그래서 가게에 있는 내내 옆 테이블 치울 때 혹은 음식을 서빙할 때 민망할 정도로 빤히 쳐다본다. 신체적인 성추행은 두 번 당했다. 한 번은 가게에 가족과 자주 왔던 40대 아저씨였는데, 그날은 친구들과 와서 술을 마셨다. 그 아저씨가 나가기 직전 계산을 해달라 했고, 나는 포스기에 카드를 넣었다. 그러자 갑자기 그 남자는 내 팔꿈치 위쪽을 쓰다듬으면서 ‘잘 먹었어요’라고 말했다. 정확히 2번 왔다 갔다 했다. 그때 너무 당황했는데, 어떻게 해서 ‘지금 저 성추행하신 거고, 너무 기분 나쁘니까 사과하세요’라고 해서 사과를 받았긴 했다. 그 이후에도 계속 그 남자는 가게에 온다. 나는 최대한 그 사람을 피하려 하고, 그 사람은 나만 보면 내 두 눈을 똑바로 바라보면서 ‘저기요. 나 싫어? 왜 이렇게 피해?’라고 말한다. 


 두 번째는 처음 본 30대 남자 손님이었는데, ‘메뉴판 준비해드릴게요’라는 내 말에 다짜고짜 팔꿈치를 만지면서 ‘여기는 언니가 예쁘네. 몇 살이야?’라고 물었다. 이때는 어떻게 말도 못 하고 끝났던 것 같다. 나는 이런 일을 알바 회식 장소에서 사장에게 말했지만, 사장은 ‘아이고’, ‘허허’와 같은 추임새만 넣을 뿐, 어떠한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 나를 포함한 아르바이트생 4명은 계속해서 성추행에 노출돼 있다.


   우리는 근로계약서를 작성하지 않았기 때문에, 정해진 출퇴근 시간의 개념이 없다. 손님이 많은 날은 더 일찍 출근하고 더 늦게 퇴근해야 했고, 손님이 적은 날은 더 늦게 출근하고 더 일찍 퇴근해야 한다. 그래서 아르바이트생들은 매 달 유동적인 임금을 받아야 했다. 그 임금은 내 삶을 불안정하게 했다. 내가 일한 지 6개월쯤 지났을까 사장은 또 다른 출근 규칙을 추가했다. 기존에는 아르바이트생 2명이 함께 저녁 6시에 출근하는 구조였는데, 사장은 갑자기 한 명은 6시 다른 한 명은 7시에 출근하라고 했다. 사람이 몰리지 않는 시간대의 인건비를 줄이기 위해서 근무시간을 조정한 것이다. 


 최근엔 상황이 더 심각해졌다. 코로나19 바이러스로 인해 손님이 줄어들었다면서, 1시간 간격의 2명 출근 제도를 무조건 1명 출근으로 바꿨기 때문이다. 문제는 사실상 원래 맛집이라 손님은 줄어들지 않아 매출은 그대로인데, 사람만 줄인 것이다. 똑같은 일의 양을 한 사람이 감당해야 하므로, 당연히 나는 평소보다 실수가 잦아졌다. 그러자 사장에게는 ‘정신 차려라’라는 말을 들었고, 손님에게는 ‘불친절하다’라는 말을 들었다. 문제의 원인은 인원 감축을 한 사장에게 있는데, 그 책임은 오로지 내 몫이 됐다. 이번 달 출근 계획표에는 역시나 금요일을 제외한 전 요일이 1명 출근으로 기록돼 있다. 이제라도 다른 알바를 구해볼까 싶은데, 코로나19 때문에 일자리가 줄어 구하려 해도 구할 수 없었다. 결국 나는 어쩔 수 없이 일을 하러 간다. 나는 평소보다 더 강도 높은 일을 하고, 더 적게 받는다. 그리고 언제 다쳐도 이상하지 않은 상황에 있다. 


   나는 단지 열심히 일한 만큼의 돈을 벌고 싶다. 그리고 내가 받는 시급만큼의 노동을 하고 싶다. 이 요구가 그렇게 어려운 것일까? 요즘은 ‘내 시급에 서비스 값은 없어’라는 생각으로 일을 했는데, 한 남자 손님으로부터 ‘무서워서 주문하겠냐. 웃으면서 친절하게 말해라.’라는 말을 들었다. 그 손님과 사장에게 한마디 하고 싶다. “X까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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