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분하지만, 찬란하게>
흰자와 노른자.
마카롱의 시작은, 달걀을 나누는 일에서부터다.
마카롱의 껍데기, 꼬끄는
흰자, 설탕, 그리고 아몬드가루.
딱 이 세 가지 재료로 만들어진다.
그 단순한 조합이
어떤 날엔 완벽하게,
어떤 날엔 실패작처럼
마카롱 꼬끄를 만들어낸다.
날씨의 영향은 또 얼마나 큰지.
비가 오거나 습도가 높으면 꼬끄가 잘 마르지 않아
한 판, 두 판 실패작이 줄줄이 쌓인다.
그러다 보면
하루를 통째로 날려버린 것 같은 기분에
기운이 쭉 빠지기도 했다.
완벽한 마카롱을 만든다는 건
생각보다 훨씬 까다로운 일이었다.
아몬드가루 함유량 1% 차이에도
모양과 맛이 눈에 띄게 달라졌다.
아몬드가루를 줄이면 원가는 낮아지고
모양은 오히려 안정적으로 나왔지만,
그 고소하고 오래 남는 풍미는 사라졌다.
아무도 모를 수도 있었다.
강한 크림 맛이 그 빈자리를 덮을 수도 있었고,
귀엽고 화려한 데코가 그 맛을 잊게 만들 수도 있었다.
실제로 그런 마카롱이 더 잘 팔릴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알았다.
아몬드 가루 100%, 신선한 달걀,
그리고 유기농 설탕의 힘을.
그리고 그건 누군가 알아주지 않아도
먹을 것에 대한 나의 신념으로
지켜가야 하는 것이었고,
내가 이렇게 정직하고 좋은 재료로 만든다면
언젠가 누군가도 알게 될 것이라고 믿었다.
그래서 포기할 수 없었다.
조금 수지타산이 맞지 않고,
또 어렵고 비싸더라도,
그 맛은 지켜야 했다.
간판도 없는 상가 2층,
고요하고 낡은 전당포와 도장 가게 사이
그 조용한 공간에 혼자 마음의 치유를 얻고 싶어서
문을 연 베이킹 작업실이,
이제 어엿한 가게가 되었다.
하지만 과연 누가 알고 마카롱을 사러 올까 싶었다.
그저 작업실보다는 조금 더 굽고,
혹시나 오는 손님이 있다면
정성껏 대접하면 되겠지.
남으면 그냥 학원 가서 아이들과 나눠 먹으면 되고
그런 마음으로 마카롱을 만들었다.
첫 손님들은 역시나 아이들이었다.
얼마나 동네방네 소문을 내고 다녔는지,
한 순간에 그 조용한 2층 전체에,
아이들의 활기찬 웃음소리와 발걸음 소리가
방방 울려댔다.
그리고 그다음 손님들은
아이들에게 소식을 들은 어머니들이셨다.
지금 돌이켜 생각해 보면,
내 아이를 가르치는 선생님이
수업에 집중하는 것이 아니라,
뜬금없이 디저트 가게를 열어
마카롱을 굽는다고 하면,
신경도 쓰이고,
기분이 별로 좋지 않으셨을 수도 있는데,
직접 가게에 들르신 어머니들은
한결같이 따뜻한 응원을 건네주셨다.
"선생님, 꼭 잘되실 거예요."
두 손 무겁게 마카롱을 사 들고 가시며
소문내시겠다고,
입으로, 마음으로, 그렇게 말해주셨다.
눈빛만 봐도 그 말이 진심이라는 건 누구도 알 수 있어,
나는 한 분 두 분 어머니들이 들러
마카롱을 사 가실 때마다 울컥한 적도 많았다.
그리고 진짜 소문을 내신 건지 어느 순간부터,
그 간판도 없는 고요하고 조용한
도장가게와 전당포 사이 2층 가게에
사람들이 찾아오기 시작했다.
하루 이틀, 소문을 따라
찾아오는 사람들이 늘어났고,
생각보다 빨리 품절되고 마감이 되는 날이 많아졌다.
워낙, 혼자 할 수 있는 양이 적어,
소량으로 판매하다 보니 벌어진 일이었지만,
어쨌든 올 때마다 품절일 때가 많다 보니,
예약을 원하는 손님들이 생겼다.
손님들 중 누군가가 올린 SNS의 마카롱 사진과
맘카페에 올라온 글들을 보고,
더욱 손님들이 몰려오기 시작했다.
자꾸 와도 못 사는 손님들을 위해
예약을 받기 시작했던 건데,
어느새 우리 가게는 예약으로만,
하루 판매가 꽉 차 버리게 되었다.
선택과 집중을 하면 조금 더 나았을까?
그 당시 나는 아침 7시쯤 나와 마카롱을 만들어
11시쯤 가게를 열고,
3-4시까지 판매 및 다음 날 준비를 하다가
5시면 학원에 수업을 하러 갔다.
그래서 더욱 손이 빠듯했고, 만드는 양이 적었다.
예약만으로 판매가 끝나는다는 말이 돌자,
예약을 원하는 문자와 전화가 시도 때도 없이 왔다.
예약을 받고 만드니
재료 관리나 품질 관리는 훨씬 더 수월해졌는데,
예약 관리도 하고 마카롱도 만들면서,
수업도 하려니 여간 힘든 게 아니었다.
결국, 당시 내가 제일 좋아하던 제자가
알바를 하겠다고 하여,
우리는 둘이 그렇게 우리의 봄을 만들었다.
내가 가게에 없어도
누군가가 필요한 일들을 해주고 있다는 것이
당시에 얼마나 든든했는지 모른다.
똘똘한 알바 한 명 덕분에
예약 관리도 쉬워지고
그날 그날 수요에 쫓기지 않게 되자
내가 구울 수 있는 만큼,
정성껏 만들 수 있다는 게 너무 좋았다.
그리고 오래 만난 제자라
궁합이 좋아 그런지 눈빛만 봐도
서로가 원하는 걸 너무도 잘 알아,
정말로 나의 봄이 성장하는 데 있어
그 친구가 많이 애써줬음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그 당시 '나의 봄'은 그런 저런 이유로
어쨌든 예약제로만 마카롱을 팔았고,
수요일부터 토요일까지만 가게 문을 열고,
일요일부터 화요일까지는
그다음 주 예약을 받는 방식으로 운영을 했다.
누군가 보기에는 소박하고,
제대로 규모도 갖추지 못한,
인테리어도 엉망진창인 작업실 같은 가게였지만
우리의 진심을 다해 만든 마카롱이
누군가에게도 서서히 진심으로 전해지는 게
느껴지는 계절이었다.
몸은 비록 고되고 힘들었지만,
그래서 그 일이 점점 따뜻하게 느껴졌다.
게다가 내가 상상하고, 만들어낸 맛이
다른 사람에게 좋은 평가로 돌아올 때면
마음 깊이 뿌듯함이 차올랐다.
학원 선생님은 늘 학생의 성적으로 평가받는다.
내가 어떤 노력을 했든 결과가 좋지 않으면
열심히 했던 그 마음이 전달되지 못하는 날도 많았다.
하지만 마카롱은 달랐다.
내가 들인 노력만큼, 결과가 정직하게 돌아왔다.
열심히 하면 열심히 하는 만큼
맛에 대한 평가와 그에 대한 손님들의 진심이
나에게 전달되었다.
그 단순한 구조가 오히려 내 마음을
더 벅차오르게 만들어
그동안 상처가 가득 나 있던 내 마음이
다시 살아날 수 있었다.
나는 지난 몇 년 동안
길고 지독하게 추운 봄날을 지나고 있었다.
그런 나에게, 2019년의 봄은 처음으로
정말 '나의 봄'이라 부를 수 있는 시간이었다.
모르는 이로부터 온라인에 달리는 작은 응원 하나,
따뜻한 말 한 줄이 모여서 진짜 봄이 되어가는 기분.
그때 처음으로 깨달았다.
진심을 다하면, 정말 되는구나.
그래서 나는 더 마음을 다해 마카롱을 굽기로 했다.
내가 굽는 건 단지 마카롱이 아니라,
나 역시도 누군가의 하루에 피어나는
작고 조용한 응원일지도 모르니까.
'나의 봄'은 그렇게,
차분하지만 찬란하게,
마치 잊고 지내던 햇살 한 줄기가
문틈으로 스며들 듯
조용히 피어나기 시작했다.
봄은, 그렇게 다시 내게 돌아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