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봄>
어려서부터 우리 엄마는 여러 가게를 운영하셨다.
초등학교 시절,
슈퍼와 제과점, 치킨 가게를 동시에 하셔서
나는 언제나 친구들의 부러움 대상이었다.
집에 가면 빵도 있고, 치킨도 있고,
슈퍼에서 과자도 마음껏 먹을 수 있었으니
아이들 눈엔 내가
마치 꿈같은 집에 사는 아이처럼 보였을지도 모른다.
뭐든 부족해야 그에 대한 욕심이 좀 생길 텐데,
그래서인지 나는 과자나 치킨은 지금까지도.
그리 선호하는 음식이 아니다.
그런데 빵은 좀 예외이다.
그 이유는 제과점이 우리 집 1층에 있었는데,
아침에 학교에 가려고 현관문을 열면,
2층에서 1층으로 내려가는 계단 틈새로
향긋이 올라오는 빵 냄새가 너무도 달콤해
늘 기분 좋은 하루를 시작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달달한 크림과 설탕 그리고 버터가 가득 발라진
빵이 구워지는 그 냄새만 맡아도 콧노래가 절로 나왔다.
그래서 학교가 끝나면
친구들은 운동장에서 놀기 바빴지만
나는 곧장 집으로 돌아와 1층 빵가게로 내려갔다.
오픈 주방이었던 제빵실에서
제빵사 아저씨가 반죽을 손질하고
오븐 앞에서 빵을 꺼내는 모습은
나에겐 너무나도 마법 같아
봐도 봐도 신기하기만 했다.
가루가 아저씨 손을 몇 번 거치면 단단한 반죽이 되고,
또 거기에 밀가루를 살살 뿌려 몇 번 만져주니
모양이 생겼다.
그 위에 붓질을 열심히 하시고 오븐에 구우면,
너무 멋진 작품이 나왔다.
무와 유를 구별도 못하던 나이였지만,
아무것도 아닌 것들에 모양과 의미가 생긴다는 것이,
나에게는 큰 충격이었던 것 같다.
그래서 나는 아저씨를 볼 수 있는 탁자에 앉아
숙제도 하고, 책도 읽고, 구경도 하며,
하루를 보내었다.
하루도 빠짐없이 그 앞에 앉아 구경하던 나를 보며
아저씨는 웃으며 물으셨다.
“이다음에 뭐가 되고 싶어?”
“저도 아저씨처럼 맛있는 빵을 만들고 싶어요!”
그 대답이 어린 마음이었지만, 진심이었던 걸까.
나는 어릴 적부터
빵의 모양, 맛, 향기, 재료 같은 것들에
유난히 관심이 많았다.
제과제빵을 본격적으로 배우진 않았지만,
20대 중반부터 돈을 벌기 시작하면서
꾸준히 베이킹 클래스를 찾아다녔다.
클래스에서 배운 레시피로
쉬는 날이면 쿠키를 잔뜩 구워 포장해서
다음 날 학원 선생님들과 학생들에게 나눠주곤 했다.
정확한 계량과 조합이
손 끝에서 그럴듯한 모양으로 다듬어져
제법 맛있는 작품이 나올 때면 마음이 벅차올랐다.
그리고 그런 쿠키, 스콘을 비롯한 디저트들을 맛보며
엄지손가락 치켜주던 학생들과
동료 선생님들의 칭찬은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얻는 기쁨이 무엇인지 처음 알게 해 준 계기였다.
그저 취미였던 베이킹이
조금씩 나를 더 끌어당기기 시작한 건,
학원을 운영하며 여러 일을 겪은 후였다.
특히나 유산 후, 다른 아이들을 지키느라,
내 아이를 잃었다는 상실감으로
마음이 점점 수업에서 멀어지고 있을 무렵,
여러 베이킹 책을 사서 연습을 해보며,
조금씩 마음의 위로를 얻게 되었다.
마음이 안정될수록
하루 종일 빵만 만들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아무 생각 없이 반죽을 하고,
오븐 앞에서 노릇하게 구워지는 걸 지켜보며
따뜻한 향기 속에 하루를 보낸다면
지금보다 조금은 편안해지지 않을까.
아이들의 성적 1점에 일희일비하는 나보다는
조금 더 행복할 수 있지 않을까?
그리고 내가 상상한 맛이 나는 쿠키를
직접 손으로 만들 수 있다면,
지금보다 더 나은 내가 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이상한 기대도 들었다.
게다가, 그 무렵에는
마카롱 가게가 여기저기 생겨나고 있었다.
어느 날, 강아지와 산책을 하다가
들어가서 구경하게 된
마카롱은 색감과 모양이 너무 아름다워
보는 것만으로도 즐거움을 줬다.
호기심으로 집에서 재료를 사다가 연습을 해보니,
실패 연속.
몇 번을 다시 확인하면서 레시피대로 해봐도,
가게에서 봤던
마카롱의 완벽한 모양과 맛이 나질 않았다.
수업을 하면서도 왜 실패했지?
왜 마카롱 모양이 퍼지는 걸까?
왜 구우면 너무 딱딱해지는 거지?
마카롱에 대한 생각이 떠나질 않았다.
결국 나는 마카롱 창업 클래스를 신청해 버렸다.
창업을 생각하고 신청한 건 아닌데,
과정이 너무 궁금해서 자세히 배워보고 싶은 마음에
참을 수가 없었다.
드디어 수업 날.
단정하고 깔끔한 선생님의 1:1 수업에서
그동안 내가 실패할 수밖에 없던 이유와
왜 그렇게도 마카롱이 만들기 어려운지
배우게 되며, 나는 더욱더 그 세계에 빠져들게 되었다.
온도, 습도, 재료 1g에도 맛의 영향을 받는
그 예민한 디저트는,
궁합이 맞는 크림과의 조합수도 어마어마해
매일매일의 수업이 새로웠다.
다행인 건지, 손끝에 집중하고, 향을 맡고,
필링을 채워 넣는 수업의 모든 과정을 들으며
지난봄의 상처를 나는 깡끄리 잊을 수 있었고
어린 시절 꿈이 다시 기억나며,
나도 손으로 맛있는 무언갈 만들어 행복의 향기를
전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품게 되었다.
빽빽하기만 한 수업 중 숨 쉴 틈이 조금만 있으면,
어쩌면 학원 일도 조금 부담을 덜 수 있지 않을까.
그래서 생각했다.
이걸 조용하고 따뜻한 공간에서 해보면 어떨까?
가게가 아니더라도,
그저 나만의 작업실이면 될 것 같았다.
숨을 고르고, 마음을 달래고,
내 손끝으로 무언가를 만들어낼 수 있는 그런 곳.
무슨 생각이었을까,
평소 소심해서 실행력이 부족했던
나는 부동산에 가서 말했다.
“그냥 저 혼자 만들기 연습할 거라,
사부작거리기 좋은 곳이면 돼요.”
그러곤 얼마 지나지 않아 부동산에서 연락이 왔다.
사장님과 같이 찾아간 곳은 상가 2층,
진짜 있는지도 모르고 지나칠 만한 조용한 공간이었다.
너무 구석에 있어
혼자 무언갈 연습해 보기도 좋아 보였고
학원과도 가까워 실컷 작업 후,
수업하러 가도 괜찮을 것 같았다.
당시 학원은 마음을 추스르는데 집중하고 있던 터라
더 이상 신입생을 받지 않고
기존 학생들만 가르치고 있던 터라
이런 여유로운 생각이 가능했는지도 모른다.
진짜 뭐에 홀린 듯 계약을 하고,
오븐은 새 걸로 장만했다.
냉장고는 황학동에서 중고로 구매했고,
작업실이라 필요 없을 것 같은
쇼케이스 냉장고도 욕심내어 하나 들였다.
황학동 시장에서 중고 제품들을 보고 돌아오는 길,
오랜만에 남편과 손을 잡고 깔깔 웃으며 걸었다.
그동안 서로에게 쌓여있던 우울감과 자책이
새로운 계획과 준비에 덮여 조금씩 날아간 것 같았다.
"작업실 이름을 뭐로 지을 거야?"
"이름도 필요해?"
"당연하지. 뭐든 시작하려면 이름이 있어야지.
디저트 팩토리 어때?"
우리 남편은 감성이라곤 찾아볼 수가 없다.
디저트 팩토리라니,
누가 들어도 뭔가 따뜻한 이름이면 좋을 거 같은데.
고민고민하다가
얼마 전 라디오에서 들은 노래 제목이 생각났다.
"나의 봄 어때?"
"나의 봄? 그게 무슨 뜻이야?"
"나는 봄을 만드는 사람이 되고 싶어. 따뜻한 봄.
그래서 내가 만들 걸 먹으면,
따뜻해지는 기분이 들면 좋겠어."
"좋다. My spring이네.
그래 너 작업실이니까 그렇게 해."
얼마나 내가 우울하고 힘들어했는지 남편은 알기에,
그 이름 뜻을 듣고는 얼른 지지해 주었다.
작은 간판에 ‘나의 봄’이라는 이름을 새겨
작업실 문 앞에 걸던 날,
코끝에 살랑이던 달콤한 향기가
앞으로의 시간도 달콤할 거라고,
조용히 속삭이는 것 같았다.
하지만, 작업실에서 연습해 보는 디저트의 세계는
집에서 내가 해 온 연습과도 달랐고,
창업 수업에서 배웠던 것들과도 달랐다.
특히 마카롱의 세계는 정말 또 다른 우주 같았다.
배웠던 것 외에 새로운 맛을 구상하고, 조합하고,
작업실에 맞는 온도 및 습도를 찾아 꼬끄를 굽고
그 안에 조심스레 필링을 채워 보며,
나는 색깔 공부도 하게 되었다.
그뿐 아니라 그에 맞는 데코를 생각하고,
숙성 기간에 따라 맛이 얼마나 달라지는지 기록하며,
그 우주 속에 돌아가는
하나하나의 요소가 너무도 재밌어
나는 진심으로 내 천직을 처음 만난 것 같았다.
작업실 오픈 첫 주, 너무 신나서였을까?
생각보다 정말 많은 마카롱을 만들어
처분할 길이 없어 어쩔 수 없이 학원으로 가져가
아이들과 나눠 먹게 되었다.
원한 건 아닌데 아이들의 품평회가 이어졌다.
“선생님, 대박이에요!”
“이거 팔아야 해요!”
아이들의 눈은 반짝였고,
그 칭찬은 내 마음을 춤추게 했다.
연습한 보람이 있었던 걸까?
"내가 팔면 사 먹을 거야?"
"당연하죠! 진짜 맛있다니깐요!"
그렇게 아이들의 반응에 힘을 얻고,
나는 어느덧 마카롱을 진지하게 ‘팔’
계획을 세우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봄, 3월 말.
나는 덜컥, 공방을 가게로 바꾸었다.
사업자 신고를 하고, 위생교육을 듣고,
여러 준비들을 하면서,
어린 시절, "저도 맛있는 걸 만들고 싶어요!"
그렇게 외쳤던
꼬맹이는 진짜 새로운 봄을 만들어 볼 수도 있는
어른이 되었다.
그 해 그 봄은 그렇게, 나를 또 어디론가
조용히 데려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