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봄을 꿈꾸는 나의 봄(12)

<불나방과 불꽃 사이>

by 나의봄

새벽 5시. 문을 열자마자,

턱밑까지 차가운 공기가 밀고 들어왔다.

모자를 단단히 눌러쓰고,
가슴 가득 숨을 들이쉰 후에야
겨우, 방금 전까지도 떨치지 못한 잠을
툭툭 털어낼 수 있었다.


2019년의 겨울은 그렇게,
이전의 나날들과는 전혀 다르게 시작되었다.

학원은 늦게 시작되고, 늦게 끝나는 공간이었다.
새벽 5시는 내가 잠들거나,

하루를 마무리하는 시간이었는데

나의 봄을 하는 이제는

그 시간이 하루를 열기 위한 시작점이 되었다.


결코 가볍지 않은 발걸음.
낯선 육체노동으로 몸 이곳저곳이 뻐근해지며,
불과 5분 거리의 가게가

50분은 되는 것처럼 멀게 느껴지던 날들.
그럼에도 예약 화면을 들여다보며 걷다 보면
나도 모르게 심기일전하게 되었다.


인스타로 예약을 받아 가게에서 판매를 하고,
네이버로 주문을 받아 배송을 보내고,
어느덧 가게에는 함께하는

아르바이트 친구들도 더 생겼고,
우리 모두는 점점 이 일을

익숙하게 받아들이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학원 때와 마찬가지로
시스템 없이 일을 시작했다는 사실을
그제야 또 깨닫게 되었다.


재료비, 직원 월급, 세금, 임대료, 관리비.

매출은 괜찮았지만,
내 인건비가 남고 있는지는 의문이었다.


그렇다고 멈출 수는 없었다.
하루하루, 주어진 주문량을 처리하다 보면
시간은 흘렀고, 또 새로운 주문이 쌓여 있었다.

그렇게, 그 겨울도 흘러가고 있었다.


그러던 크리스마스 즈음.

디엠이 하나 도착했다.
예약 메시지려니 하고 열어본 그 메시지엔
뜻밖의 제안이 담겨 있었다.


구독자 100만 명을 보유한
먹방 유튜버의 협업 요청이었다.


나는 유튜브에 관심도 없고,
먹방을 즐겨보는 편도 아니라서
그 메시지의 의미를 전혀 알지 못했다.


거절의 메시지를 조심스레 보냈지만,
그 유튜버는 여러 번 정중하고

적극적으로 메시지를 보냈다.

“추천한 구독자들이 많아서요.”

“소개비는 불우이웃 돕기에 기부할게요.”


함께 일하던 친구들에게 메시지를 보여주자,
다들 “대박”이라며 꼭 하자고 난리였다.

장비도 늘었고, 속도도 붙었고,
우리의 손은 익숙해져 있었고,
마침 연말이었고, 좋은 일이라 하니,

‘그래, 한 번 해보자’ 그렇게 마음이 움직였다.


승낙의 답장을 보내자,
그 유튜버는 당장이라도 오겠다며 연락을 해왔다.


며칠 후, 정말로 가게에 나타난 유튜버.
카메라가 돌아가는 그 순간이
너무도 낯설고 신기해서,
나는 창고와 매장 사이,
그 어딘가에서 숨어 조용히 구경만 했다.


인터뷰는 도저히 자신이 없어
실제 가게에서 일하지도 않던 남편을 불러

그 앞에 앉혔다.
그 모습이 지금 생각하면 참 웃기다.


촬영은 금세 끝났고,
영상 업로드 날짜가 되었다.
영상을 올리면서 네이버 주문 링크도

함께 공개한다고 했다.


마음의 준비는 했지만, 현실은 전혀 상상과 달랐다.

영상이 업로드되자마자, 1분도 되지 않아

인스타 팔로워가 폭발적으로 늘었다.
휴대폰 알림은 쉴 새 없이 울렸다.


그때, 주문 상황을 확인하던 남편이 소리쳤다.

“5분밖에 안 됐는데, 만 건이 넘었어!”


만 건?

우리는 겁이 나서, 주문창을 닫아버렸다.


그전까지 100만 유튜버란 그저 ‘수식어’ 같았다.
그런데 그 위력이,

지금 내 손 안의 주문창을 흔들고 있었다.


더 팔고 싶어도,
우리는 만들 수 없을 것 같았다.

말 그대로, 감당이 되지 않았다.

말은 만 건이지만, 실제 주문은 9구 세트를

3~5개씩 구매한 사람들도 많았다.
대략 계산해 보니 약 2만 상자를 만들어야 했다.


그때 우리는 공장이 아니었고,
모든 과정을 손으로 만들어내는 가게였다.
하루 최대 생산량이 200 상자 남짓일 무렵이었다.

나는, 그 제안을 받아들이면서도 기껏해야

2천에서 3천 상자 정도 들어오겠거니 생각했었다.


배송 시일이 길어질 수 있다며,
손님들에게 양해를 구하고,
원하시는 분들에겐 취소도 가능하다고 안내했다.

그런데, 대부분이 기다리겠다고 했다.


앞이 하얘졌다.

이게 도대체 무슨 일인 걸까.
내가 무슨 일을 벌인 걸까.
곱씹어봐도 믿기지 않았다.


그런데 그 와중에 남편이

도저히 안될 거라 생각했는지

어디선가 꼬끄 짜는 기계를 알아왔다.

"우리 꼬끄만 짜서 크림만 넣어 보내자.

이거 안 되는 일이야. 너 하다가 병나.

이렇게 우리 못해."


순간, 머리가 복잡해졌다.

기계가 필요하다는 건 알았지만,

그건 우리가 지켜온 진심을 놓는 일처럼 느껴졌다.


“… 우리, 수제라고 말해왔잖아.”


그래서 결국, 남편은 내 고집을 꺾지 못했고

기계는 쓰지 않기로 했다.

시간이 더 걸리고, 손이 더 아프더라도

처음 시작했던 마음을 잃고 싶지 않았다.


일은 이미 벌어졌고,

기다리는 손님들이 생겼지만,

우리는 우리가 할 수 있는 방식대로 수습하기로 했다.


오프라인 가게는 무기한 닫았다.
배송이 끝날 때까지.


하루 200 상자씩 만들어도 100일.
아무리 생각해도 묘수가 생각나지 않아

24시간 오븐을 돌리기로 했고,

직원을 급하게 뽑았다.

그 직원의 친구, 그리고 또 친구.


어느 날은, 창고에서 자다 가게에 가니

오빠 사고 이후 급격히 늙은 우리 엄마가

쭈그려 앉아 계란을 깨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는 순간, 나는 또 후회가 밀려왔다.

오빠를 돌보느라 바쁜데,

아등바등하는 딸이 안쓰러워

새벽부터 가게에 와서, 일하는 모습 엄마 얼굴에.

나는 언제까지 못난 딸일까 하는,

그 마음이 짜증이 되어,

"아니, 왜 엄마가 이런 걸 해!!"

그렇게 화를 내고 말았다.


만든 후 배송을 위한 포장도 문제였다.

근거리 위주 주문을 받아 포장을 해왔기 때문에,

멀리 부산, 포항, 해남 이런 곳으로 보낸 적이 없었다.

멀쩡히 도착했다는 말보다

다 깨져왔다, 녹아 있었다는 불만들이 넘쳐났다.


계속 포장방법을 수정해 나가며

아이스박스에 담고, 보호재를 더 빵빵하게 넣고

테이프를 붙이고, 주소를 확인하고,

옮기고, 정리하고…

좁은 가게에 어느새 스무 명 넘는 인원이

쉴 새 없이 움직였다.


완성제품의 품질도 말썽이었다.

너무 많은 주문량을 감당하기 위해,

충분한 훈련 없이 사람들을 투입하다 보니
제각각의 손길로 만들어진 마카롱들이 생겨났고

맛의 일관성이 무너졌다.


초기에 배송받은 손님들 사이에서
들쭉날쭉한 품질과 자리 잡지 못한 배송으로 인해

좋은 후기와 함께,

실망스러운 후기도 동시에 올라왔다.


열심히 한다는 건 충분하지 않았다.

실망을 시키지 않아야 했다.

그게 프로였다.

그렇지만 나는 그 당시 프로가 아니었다.


나는 준비되지 않은 채,

모든 것을 시작했다.


가게도 덜컥 열어,

유튜버 제안도 덜컥 받아,

이 일의 약점이나 위험은 들여다보지도 않고,

급급하게 하루를 살다 보니,

큰 일을 맞닥뜨리자,

도처에서 문제가 쏟아져 나왔다.


무서운 줄도 모르고,

불꽃 속으로 달려든 불나방처럼,

뜨거움과 고통을 온몸으로 배우며,

그 겨울, 나는 어느 때보다

혹독한 시간을 살아내고 있었다.


계획 없는 덜컥의 교훈을

매일 뼈저리게 느끼면서,

나는, 하루하루를 천천히 견디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