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봄을 꿈꾸는 나의 봄(13)

<좋은 사람과 좋은 사장 사이>

by 나의봄

영어학원을 운영하며

내가 가장 크게 느꼈던 거리감은

‘좋은 사람’과 ‘좋은 원장’ 사이에 있었다.


선생님들이든, 학생들이든,

좋은 인간적인 관계 유지를 위해
나는 항상 다정한 말만 하려 했고,
기분 상할 말은 조심스럽게 삼켰다.


말 한마디에도 눈치를 보며

관계를 이어가다 보니,
정작 중요한 순간에는 말을 피하게 되었다.

그 말을 해야 하는 상황의 위급함보다는,

그로 인해 상처받거나 기분 나빠할,

그 사람의 마음이, 또 그 때문에 나빠질

우리 관계가 괴로워서

나는 할 말을 계속 미루다가 결국

중요한 말을 문자 메시지로 전하는 일이 잦았다.


돌이켜보면, 선생님들 입장에선
그런 메시지들이 날벼락처럼 느껴졌을 수도 있다.

그래서 결국, 그네들에게

나는 좋은 사람도, 좋은 원장도 되지 못했다.


그리고 ‘나의 봄’에서도
나는 그 실수를 또다시 반복하고 있었다.


밀려드는 주문을 어쨌든 모두 감당해야 했고,
모든 공정이 수작업으로 이루어졌기에
작업실은 거의 가내수공업과 다를 바 없었다.

많은 손이 더해질수록 빨라지는

그 구조는 그야말로, 손이 많을수록 빨라지는

노동집약적인 시스템이었다.


그 단순한 생각에,

아르바이트생의 친구의 그 친구

그렇게 일할 사람들을 모으다 보니,

그 조그만 공간에

어느덧 스무 명이 넘는

아르바이트생과 직원들이

하루에도 수차례 부딪히게 되었다.


목표가 있으니 세부적인 계획을 세우고,

그에 맞는 작업을 분배하고

또 잘 되고 있는지 확인하며,

상황이 잘 되어가고 있는지, 놓치는 것은 없는지

살폈어야 했다.

그게 내 역할이었다.

하지만 나는 그런 큰 그림은 보지 못한 채
그날그날의 퀘스트를 지우기에 급급했다.


누군가 "뭐가 없어요!" 그럼 주문하고,

누군가 "이거 어떻게 해요!"

그럼 달려가 처리하고,

그야말로 그때그때 때우는 식의 일만 하니,

나도 지치고, 직원들도 지쳐갔다.


그렇게 바쁜 와중에도,
너무 많은 사람들이 한 공간에 갑자기 모이니

작고 큰 충돌은 끊이지 않았다.


“누가 열심히 안 한다.”
“누가 화장실 간다더니 숨어서 유튜브를 보더라.”
“누가 이것을 안 해놔서 일이 더 힘들었다.”


이미 일이 넘쳐나는 상황에서,

나조차 정확히 무엇을 해야 하는지 모르는 채,
‘좋은 사람’처럼 이 사람, 저 사람들의

모든 이야기를 들어주다 보니,
나는 줏대 없이 험담만 듣는 사람처럼 보였고,

그에 대한 조정도, 위로도 제대로 해주지 못한 채
어느새 그저 ‘볼품없는 사장’이 되어 있었다.


그러다 유독 한 사람에 대한

불만이 쌓여가던 어느 날이었다.
유난히 그 친구 이름이 많이 나와 안 그래도

언제 한번 이야기를 나눠야지 생각하던 때였다.

하지만 가게만 나가면 해야 할 일들이 너무 밀려,

또 이야기를 미루던 그때, 그날,

나는 창고에서 정신없이 일하다가
잠시 작업실로 들어갔다.


유독 모두에게 지적당하던

그 친구는 애니메이션을 틀어놓고

계란을 분리하고 있었다.
얼마 전 구부정한 어깨로

계란을 분리하던 엄마의 모습이

그 아이와 겹쳐 보였다.

눈은 화면에 고정된 채, 깔깔 웃으며

일을 하는 그 친구를 본 그 순간,

나는 이성을 잃었다.


기다리는 고객이 많았고,
배송 문의는 매일같이 쏟아졌으며,
나는 잠도 못 자고 일하고 있었는데...


그 친구는 그 모든 바쁨과는 상관없는 듯
혼자 즐겁게 웃고 있었다.

다른 열심히 하는 직원들의 얼굴도 스쳐 지나갔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렇게 이성을 놓을 일까지는 아니었는데,


그건 애초에 내 일이었다.
내가 벌인 일, 내가 감당해야 할 일이었다.

거기 있는 모든 직원 및 아르바이트 생들은

비록 수당을 지급받고 일하는 것이지만,

내가 벌인 일을 돕고 있는 것이었고,

해야 할 일과 하지 말아야 할 일을

애초에 설명도 안 한채,

그냥 닥치는 대로 직원들에게 일을 시키고 있던

내가 일차적 책임자였고, 사건의 시초였다.


그냥 그저 침착하게 그 친구에게

이렇게 말했으면 됐을 것이다.


“지금 모두가 힘들게 움직이고 있으니
혼자 영상 보면서 그렇게 천천히 즐기는 모습은

바쁜 다른 친구들에게 오해를 살 수 있어.
일에 집중해 줬으면 좋겠어.

빨리 이 일을 끝내고 저것 좀 해주면 안 될까?”


딱, 그 정도만 지적했으면 되었을 텐데.


하지만 ‘좋은 사람’이고 싶어 꾹 눌러두었던
수많은 불만과 피로가
그 순간 한꺼번에 그 친구에게 쏟아졌다.


무슨 말을 했는지조차 기억나지 않는다.

악다구니를 쓰며, 아마

"너 그 따위로 일할 거면 집에 가!” 하고

소리쳤던 것 같다.


그 친구는 “미친 X”이라며 앞치마를 던지고 나갔다.


막 스무 살을 넘긴 아이에게 그런 말을 들으니,
너무 충격적이어서 정신이 아찔했다.


차분하게 감정을 절제하며 잘못을 지적하고,
기회를 다시 주고, 내가 먼저 손을 내밀었다면...

더 나은 그림이 있지 않았을까.

감정이 앞서니 화가 아닌 짜증이 되었고,

그 짜증은 그 아이의 잘못은 덮은 채,

나만 이상한 사람으로 남게 했다.


그래서 그날은 가게를 운영하며

가장 후회되는 순간 중 하나지만,

내가 좋은 사장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생각하는 기회도 되었다.

그런데도 그 후로도 나는
그렇게 괜찮은 사장이 되지 못했다.


여전히 ‘좋은 사람’이고 싶은 마음이 커서
일하느라 지친 분위기를 유머로 띄우고,
사람들의 기분을 맞추기에 급급했다.
분위기가 좋아지면,
그게 내가 곧 운영을 잘하고 있는 거라 믿고 싶었다.


하지만 좋은 사장이 꼭 좋은 사람일 필요는 없었다.

그리고 그 사실을,

나는 나의 봄이 다 끝난 후 깨달았다.


나는 그때 몰랐다.

진짜 ‘좋은 사장’이란 무엇인지.

좋은 사장이란, 농담으로 기분을 맞춰주고
맛있는 것을 사주며 친목을 도모하는 사람이 아니라,

일하는 시간을 명확히 정하고,
각 직원들의 업무의 경계를 분명히 하며,
초과 근무와 강도를 세심하게 살피고,
각자의 균형을 조율해 주는 사람이어야 했다.


작은 작업실 안에서도
직원마다 일의 양과 강도는 다르고,
그에 따른 책임도 나뉘는데,

그를 살피고 적절한 보상 및 휴식도 제공하며,

지치지 않도록 잘 이끌고 나가었야 했는데.


대부분의 초보 사장들이 그렇듯
나 역시 그런 설명과 기준을
제대로 전하지 못했고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그저 내가 열심히 하니까
그들도 당연히 열심히 해주길 바랐고,
누군가 힘들어 보이면
커피나 간식으로 그 마음을 무마하려 했다.


이 글을 그때 같이 그 공간에 있었던

그들이 읽게 될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만약,
그 공간 안에서 함께했던 모두를
다시 만나게 된다면, 나는 꼭 말하고 싶다.


인생에서 가장 큰 파도를 만나
가슴이 막막하고 답답했던 그 시절,

그들이 함께 노를 저어주었기에
나는 무사히 그 파도를 넘을 수 있었다고.


그 노의 무게도, 함께 저어준 그 마음도,

그 안에서 피어난 갈등과 상처도

제대로 바라보지 못하고,

항상 외면해 미안했다고.


그래서 진심으로 사과하고 싶다.

그리고 그들의 따뜻한 봄날을 위해 기도하고,
필요한 도움을 주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꼭, 말하고 싶다.


특히, 제일 먼저 나의 아르바이트 생이자,

내가 제일 사랑하는 제자 중 하나였던,

그 친구가 가게가 끝난 후 안 좋게 헤어져,

마음이 제일 아픈데.

이렇게라도 꼭 사과하고 싶다.


미안해. 고마웠어. 늘 행복하길 바라.

나는 너로 인해 그 무겁고 힘든 봄의 파도를

잘 건널 수 있었어.

나도 어려 그때는 내가 잘해서

그렇게 했는지 알았는데,

네가 없었으면 절대 못할 일이었어.

너의 모든 하루를 응원해. 정말 정말 고마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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