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봄을 꿈꾸는 나의 봄(14)

<그런 봄날도 있었지.>

by 나의봄

어린 시절,
제일 하기 싫은 일을 해야 하거나
시간이 도무지 가지 않을 때,
아빠가 가장 자주 해주시던 말이 있다.


“이 일은 결국 끝난다.”
“어차피 시간은 흐른다.”


그 말처럼, 어느덧

마지막 주문 리스트가 손에 쥐어졌다.
꼬박 석 달 동안 쌓여 있던 주문들.
이제 우리 팀은 하루에

거의 3,000개의 마카롱을 만들 수 있었다.


오븐 6대, 스탠드 믹서 10대가
숨도 쉬지 않고 24시간을 돌아갔다.


어쩔 땐,
오븐은 조명처럼 보였고

그 앞에 늘어선 믹서기들은
그 조명 아래서 춤추는 댄서들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우리 마카롱이 뭐라고,
그 오랜 시간을 기다려준,

손님들이 정말 고마웠다.


그래서, 마음이 무너질 때도,

몸이 아플 때도,

악착같이 버티고 또 버티며
끝까지 만들 수 있었다.


올라오는 후기들,
가게 폰으로 쌓이는 감사 메시지들,
문을 열지 않는 날에도
“맛있게 먹었다”며 간식을 놓고 가는 손님들.


할 수 없을 것 같았던 일을
결국 해내게 만든 건 그런 사람들이었다.


물론, 소위 말하는 ‘블랙컨슈머’도 있었다.

개인 휴대폰 번호를 어떻게 알아냈는지
새벽 2~3시에 전화를 걸어
“왜 안 만들고 자냐”라고 따지는 사람,


가게로 직접 찾으러 가겠다며
계속 독촉 전화를 해오던 사람.


별난 손님들 가운데서도

가장 기억에 남는 손님은
9구 세트 1 상자를 주문했던 분이었다.

그 손님은 “9가지 맛이 다 똑같다”며,

환불을 요구했다.


전화로 설명드렸다.
입맛의 차이가 있을 수 있고,

그렇게 느끼셨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이미 전부 드신 상태고,

식품 특성상 환불은 어렵다고.


그러자 그분은 말했다.
“가족 모두가 똑같이 느꼈다.
내 입맛이 이상한 게 아니다.”
그리고 재차 환불을 요구했다.


물어보니, 마카롱 9개를 가족 네 명이서

전부 4 등분해서 나눠 먹고
그렇게 느낀 결론이라고 했다.


그 뒤로도 “그러니 환불해 달라”는 말만 반복되었고,

급기야 상세 페이지와 다르다며
“이건 사기다”라는 말까지 하였다.


뭐라 대답해야 할지, 허탈한 웃음만 나왔다.

그것마저 불쾌하였는지
“이런 대응 태도도 인터넷에 올리겠다”며
공론화를 예고하였다.


우리가 식당에 가서 밥을 먹고,
그 맛이 내 입맛에 안 맞았다고 해도
이미 다 먹은 뒤에 환불을 요구할 수 있을까?


그 작은 6cm짜리 마카롱.

배송비 포함 14,500원.

작지도, 크지도 않은 그 금액 안에

우리 팀의 시간과 땀, 노력,

그리고 자존심이 있었다.

단순히 크림과 꼬끄가 아닌,

우리의 시간과 마음이 굳어져 들어간 결과물이었다.

그걸 4 등분해서 나눠 먹는다면,
그 작아진 마카롱 조각들로,

애초에 맛의 차이를 느끼는 건
어렵지 않을까?


나는 정중히 사과드렸다.
실망을 드린 건 죄송하지만,

다 드시고 난 후라

환불은 어렵다고 다시 한번 간곡히 말씀드렸다.


그때부터였다.

그 고객의 언니, 그 고객의 어머니가
차례로 전화를 걸어 같은 말을 반복했다.


결국 어머니는 말했다.
“환불 안 해주면 이제 우리 남편이 전화할 거예요.”


나는 그 남편이 무서운 게 아니었다.

하지만, 이 전화가 계속되면
나를 지탱해 온 자존감마저 무너질 것 같았다.

그래서 결국 환불을 해드리겠다고 말했다.


그때, 승리를 취한 듯한 웃음으로
그 어머니가 남긴 마지막 말이
한동안 귓가를 떠나지 않았다.


“사장님, 그래도 모양은 예쁘더라고요?”


게다가,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라는 말처럼
그 일은 정말로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유튜브든, 블로그든,
우리 제품이 리뷰로 올라오는 곳이라면
어김없이 그 손님의 아이디가 등장했다.


처음에는 환불 요청,
그다음은 리뷰 댓글을 통한 비난,
그리고 어느 순간부터는
나에 대한 인신공격까지 이어졌다.


“사장님 말투도 너무 싹수없고요.
늦게 보낸 주제에, 맛도 없으면서
미안하단 말도 절대 안 하던데요?”


늦게 보내 죄송한 마음에
손편지도 쓰고,
수제품이라 오래 걸릴 수 있다는 설명도 드렸으며,
기다려주셔서 감사하지만,
취소하셔도 괜찮다고 말씀드렸다.


통화에서도 여러 번 사과했다....

물론, 그 언니와 어머니의 전화엔
지쳐서 제대로 응대하지 못했던 것도 같다.


하지만,
얼굴도 모르는 사람의 미움이라니.

이건 또 다른 종류의 고통이었다.


이 하늘 아래 어딘가에서,
나를 이토록 미워하는 사람이
내 제품이 언급된 글마다
저주를 남긴다는 사실.

그 미움이 내 머릿속에 콕콕 박혀,
사람이 점점 무서워지기 시작했다.


마카롱을 만들다가도
괜히 다시 맛을 보고,
또 불안감에 판을 뒤집어엎고,
리뷰가 올라오면 내용보다도 그 아래
그 사람의 댓글이 달릴까 봐 숨이 막혔다.


그렇게, 그 모르는 사람의 저주에 걸려
나는 하루하루 공포 속에서 일했다.


그런데도 결국,
사랑의 아픔이 또 다른 사랑으로 치유되듯,
손님으로 인한 상처는
또 다른 손님들 덕분에 조금씩 아물어갔다.


그 날카로운 댓글들 아래,
대댓글이 하나둘 달리기 시작했다.

다른 손님들도 이제
그 아이디를 알아보기 시작한 듯했다.


“저는 맛있었어요.
그리고 맛이 없었다 해도
그걸로 끝이지, 이렇게 계속 댓글 다시는 건

보는 사람도 불편합니다.

님만 안 드시면 되는 거 아닌가요?”


디엠으로도 많은 위로가 왔다.
혹시 내가 봤을까,
그걸 걱정해 주는 따뜻한 메시지들.
응원과 격려가 가득 담겨 있었다.


“임산부라 아무것도 못 먹었는데,

나의 봄 마카롱을 먹고, 처음으로 속이 편했어요.

제 힘든 하루에 따뜻하고 달콤한

봄 햇살 같은 디저트를
선물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 문장들 속에는
내가 ‘나의 봄’이라는 이름을 붙이며
마카롱을 만들기 시작했던
그 처음의 마음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아직 많은 인생의 시간을 살아본 건 아니지만,
이만큼의 경험과 시간을 지나며
나는 조금씩 알게 되었다.


삶에는, 이유도 없이
무작정 나를 미워하는 사람도 있지만,
그만큼이나,
조건 없이 나를 응원해 주는 사람들도 많다는 것.


만난 적도, 스친 적도 없는 어떤 손님들이
섣부른 말로 상처를 남기기도 했지만,
또 다른 누군가는
무한한 신뢰와 따뜻한 응원으로
그 위에 약을 발라주었다.


그런 때도, 저런 때도.
그런 손님도, 저런 손님도.

이제 지나고 나니, 상처를 줬던 이들은
내 성장의 디딤돌이었고,
상처를 위로해 줬던 이들은
그 디딤돌 위의 나를 밀어주는

따사로운 봄바람 같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이제는 원망보다 감사한 마음이 크다.


나에겐, 그런 봄날도 있었으니까.

그래서 이제, 조금 더 단단해진 마음으로

다음 계절을 기다릴 수 있게 되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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