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택의 기로>
배송이 모두 끝난 후,
처음으로 다시 가게 문을 여는 날이었다.
무려 세 달 만의 오픈.
걱정 반, 불안 반.
새벽부터 작업을 시작했는데
자꾸만 입 안이 바싹 말랐다.
간판도 달지 못한,
고요하기만 한 상가 건물 2층.
도장가게와 전당포 사이에 있는
조그만 내 공간, ‘나의 봄’.
믹서기가 도는 소리,
현기증 날 만큼 달콤한 향기로 채워진 그곳 앞에
사람들이 줄을 서기 시작했다.
오랜만에 문을 연다는 부담이 무색할 만큼
오픈 시간 전에 정말 많은 손님이 줄을 서기 시작했다.
농담처럼 해왔던
“가게 앞 줄 세우기”라는 꿈이
그날, 정말로 이루어졌다.
아직 오픈 시간은 멀었는데,
코끝이 시렸다.
그간 괴롭고 힘든 일도 많았지만,
“아, 이러려고 그랬구나.”
그 생각이 들 만큼
감사했고, 행복했다.
매일 새롭게 선보일 메뉴를 고민했고,
그동안 해보고 싶었던 쿠키도 하나둘 내놓았다.
멀리 부산에서, 삼척에서, 천안에서
왔다는 손님들에게 서비스도 드리며,
나는 하루하루를 바쁘게 살아냈다.
그러던 어느 날.
잠을 자고 일어났는데,
손이 잘 쥐어지지 않았다.
부은 건지, 아니면 잘못 잔 건지,
고개를 갸웃하며 그날도 여느 때처럼 하루를 시작했다.
아프긴 했지만, 힘을 주면 그럭저럭 움직일 수 있었다.
그래서 예정된 작업을 그냥 밀고 나갔다.
그런데 손을 쓸수록 너무 욱신거렸다.
결국 아픔을 참지 못하고 가장 가까운 정형외과에 갔다.
의사 선생님은 손가락 이곳저곳을 눌러보셨고,
엑스레이를 찍고 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방아쇠수지염입니다.”
방아쇠… 수지염?
그게 뭐냐고 여쭸더니
사격 선수들에게 자주 생기는 증상이라고 했다.
하지만 나는 총 대신,
마카롱 꼬끄를 수십만 번 짜낸 사람.
단시간에 손을 너무 많이 써서
염증이 생겼다고 하셨다.
이미 인대가 늘어난 상태.
당장 손을 쓰지 말고,
오늘은 주사 맞고 설거지도 하지 말 것.
그 말을 듣는데도, 머릿속으로는
‘가게 문을 열어야 하는데…’
그 생각뿐이었다.
결국 주사도 맞지 못하고,
약만 받아 가게로 돌아왔다.
진통제를 먹으며 그 주를 간신히 버텼다.
그리고 쉬는 날이 되자,
이제 나는 팔도 들 수가 없었다.
다시 병원에 갔을 땐
의사 선생님의 말투가 달라져 있었다.
“그러니까요,
지금 안 쉬면, 통증은 팔을 지나
어깨까지 올라갑니다.”
‘그러니까’로 시작된 훈계가
시린 눈발처럼 하나하나 내게 내려앉았다.
몸을 혹사한 대가가 결국,
내 손에서부터 시작되고 있었다.
가게 사정도 좋은 건 아니었다.
조용한 상가 건물 2층.
다른 공간의 주인들은 그 고요함이 깨지는 걸
몹시 불편해하고 있었다.
갑자기 사람들이 몰려드는 소란함,
24시간 풍겨대는 단내가
1년 넘게 지속되자,
하나둘, 불만을 꺼내기 시작했다.
그러던 어느 날,
문을 닫고 작업을 하고 있는데
문밖에서 머리가 희끗한 할머니 두 분이
유리창 너머로 가게 안을 들여다보고 계셨다.
무슨 일이신지 여쭸더니 임대인이라고 하셨다.
"장사가 잘 된다 해서 와봤어요.”
겉으론 웃고 있었지만, 순간 심장이 철렁했다.
그 뒤로 이어지는 질문은 묘하게 심문처럼 들렸다.
여기서 무엇을 만드는지, 가게는 언제 여는지
이것저것 자세히 물으셨다.
그리고는 갑자기 나에게 재계약할 거냐고 물으셨다.
아직도 재계약까지는 수개월이나 남았는데.
이상해서 여쭤보니 별건 아니라며,
2층 절반을 본인들이 소유하고 있는데
가장 큰 미용실 자리를 리모델링해
의사 며느리의 병원을 차릴 계획이라고 하셨다.
그리고 우리 가게 자리는,
병원 직원들의 휴게 공간이나,
아니면 그냥 창고로 쓸까 한다며 말을 흐리셨다.
그게 무슨 말인지, 당장엔 이해가 되지 않았다.
눈만 꿈벅거리자 그분들은 이렇게 말하고 떠나셨다.
“일단, 그렇게만 알고 계세요.”
너무 황당해서 앞에 있는 도장집 사장님께
자초지종을 말씀드렸다.
그러자 도장집 사장님은
"다 헛소리예요.
임대차보호법이 있으니까 사장님이 나가지 않으면,
아무리 임대인이라고 해도 어떻게 못 해요.”라고 위로해 주셨다.
근데 그 말도 도대체 무슨 말인지
나는 하나도 이해할 수 없었다.
내 공간에서 이제 내가,
제일 불안한 사람이 되어 있었다.
그날, 내 반응이 마음에 들지 않아서였을까?
아니면,
웬만해선 내가 나갈 것 같지 않아서였을까?
얼마 지나지 않아 임대인은 갑작스레
내 가게 앞 공간을 공사하기 시작했다.
복도를 조금 더 세련되게 다듬으려고 한다는
설명과 함께 가게 바로 앞에서 공사를 시작하였다.
공사 중이라는 파란 보호벽이 쳐지니,
엘리베이터에서 내리면
2층 전체가 공사장처럼 보였다.
찾아온 손님들은
가게가 문을 닫은 줄 생각하고
하나둘, 돌아가기 시작했다.
임대인과는 직접 연락할 수도 없었다.
부동산 관리인을 통해야만 말을 전할 수 있었는데,
그 관리인조차 임대인의 계획이 너무 확고하니
자신도 말릴 수 없다고 했다.
“보호법이 있어도,
그런 식으로 계속 괴롭히면 힘드시죠.
아마, 재계약 어렵지 않을까요?
이미 병원을 차리고 거기는 창고로 쓴다고
마음을 먹은 것 같으시던데요.
여간 고집 아니세요. 그 사장님이요."
딱하다는 말투였지만,
그 말은 곧 ‘방법이 없다’는 뜻이었다.
이대로 당할 순 없었다.
경찰에 가서 영업방해로 신고할 수 있는지 물었다.
하지만 돌아온 대답은
“사유재산이라 어쩔 수 없다.”
그런 말뿐이었다.
가게 앞 복도조차 공용공간이 아니라,
그 사장님 공간으로 되어있기에
하는 말이었다.
손이 아픈 건, 몸이 고된 건,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일이었다.
그런데,
같은 층 상인들의 눈총과 임대인의 횡포는
내가 어찌할 수 없는 것들.
그 스트레스가 감당이 안 됐다.
“나… 어떡하지?”
덜컥 가게를 열고 지난 1년 반,
그 하루하루가 롤러코스터 같았다.
종잡을 수 없이 소용돌이치던 그 시간들 속에서
나는 어디를 바라봐야 할지 몰랐고,
그 멀미가 하루하루를 흔들고 있었다.
대학교 때 가장 좋아했던 시가
로버트 프로스트의
The Road Not Taken이었다.
그래서일까?
내 인생은 유독,
선택의 기로가 자주 나타나는 것 같았다.
그 시를 좋아했던 이유는
‘가보지 않은 길에 대한 아쉬움’이 좋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살아보니,
선택의 갈래길 앞에 서면,
아쉬움보다 덜 상처 주고, 덜 피해 주는 선택이
늘 내게 요구되었다.
그게, 그게 바로,
그 시가 내 마음에 오래도록 남아 있던 이유였다.
나는 이번에도
선택의 기로에 서 있었다.
두 갈래 길 중,
후회가 가장 덜 남을 길.
모두에게 가장 나은 길.
‘나’보다는 ‘우리’를 위한 선택,
그 길 끝에 무엇이 있든,
이번엔 덜 아플 길을 골라야 했다.
남은 시간은 고작 6개월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