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두운 가지 위의 꽃잎들>
언젠가 에즈라 파운드라는 시인의
<지하철역에서>란 시를 읽은 적이 있다.
젖어 있는 어두운 가지 위의 꽃잎들로,
군중을 묘사한 부분이 너무 인상적이었다.
목동에서 강의를 시작하며
그 시가 계속 머릿속을 맴돌았다.
비슷한 학원 시간표를 따라 무거운 가방을 메고,
우르르 몰려다니는 아이들이
어두운 가지 위의 꽃잎들 같아서.
2년 만에 교실에서 마주한
새로운 동네의 아이들은 더 웃음이 없었다.
잘하는 친구이건, 못하는 친구이건,
공부, 숙제, 시험 외의 이야기에는
관심도 없어 보였고,
그래서 어떻게 분위기 전환을
시도해 봐도 늘 실패했다.
아, 학군지가 이런 건가.
아니면 내가 감이 떨어졌나.
별별 생각을 하며 하루하루를 보낼 무렵,
한 친구가 말을 걸었다.
"선생님, 배고파요.
저 다른 학원 갔다 오느라 밥을 못 먹었어요.
선생님 책상에 있는 초콜릿 주심 안 돼요?”
가지고 있던 초콜릿을 건네며,
나는 피식 웃음이 나왔다.
아, 그래. 얘들도 애들이지.
거리를 두고 있던 나였다.
목동, 학군지, 공부.
겉으로 본 목동은 너무 거대해서,
나는 겁을 지레 먹고, 그만 웅크리고 말았던 거였다.
손조차 내밀지 않으면서
애들이 차갑고 어둡고 낯설다고,
선을 그었던 건 이번에도 나였다.
어두운 나뭇가지 위 표정도 없이
무미건조한 수업을 하고 있던 건
어쩌면 나였는지도.
그렇게 나는 아이들과 조금씩,
마음을 열어갔다.
나의 새로운 일터 목동 앞단지.
대한민국에서 손꼽히는 학군지 중 하나인 목동은
밖에서 바라보던 이미지와
안에서 마주한 현실이 천지차이였다.
목동이라고 해서 다 똑같은 건 아니었다.
그 안에서도 크게 세 구역 정도로 나뉘는데,
광장이라 불리는 앞단지 학원가,
오목교역을 중심으로 형성된 중간 학원가,
그리고 광명과 맞닿아 있는 뒷단지 학원가.
그 사이에도 알게 모르게 경계가 있고
구역별 특성이 존재했다.
그 세 구역 중에서도 앞단지는
입시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운 고등학교들이 몰려 있어
경쟁이 가장 치열했고,
그만큼 잘하는 학생들도 많았다.
하지만 내가 일하게 된 학원은
그런 바깥 세계의 치열한 경쟁과
우수한 학생들이 가득한 그런 곳은 아니었다.
20대 때부터 가보고 싶었던 학원이었고,
주변 사람들도 입을 모아 추천했던 곳인데,
막상 와보니 학원은 고요했고,
아이들은 울적했으며, 선생님들은 더 우울했다.
2시에 출근해 수업이 시작되는 4시까지,
교무실 안에 선생님 모두가 앉아 있었지만
아무도 말을 하지 않았다.
필요한 말은 사내 메신저를 통해 전달됐고,
어쩔 땐 그조차도 조용했다.
나는 궁금했다.
내가 가게 하던 사이
학원의 분위기가 이렇게 바뀐 걸까?
이게 말로만 듣던 MZ 세대의 일하는 방식일까?
아니면 목동이라는 지역 특성 때문일까?
선생님들이 치열한 환경에 지쳐 그런 걸까?
뭐가 문제지?
교무실 분위기만 무거운 게 아니었다.
학원 자체에 초6, 중1에 비해,
중2, 중3 학생이 너무 적어
8시 이후에는 선생님들의 수업이 거의 없었다.
덕분에 일찍 다들 다시 교무실로 모였지만 또 침묵.
그날의 수업 소회나 커리큘럼 고민,
학생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은 없었다.
같이 입사한 동기는 이런 점들 때문에
숨이 막힌다며 입사 20일 만에
나에게 어려운 점들을 털어놓더니,
그다음 주부터는 아예 출근하지 않았다.
꿈꿔왔던 학원이라 왔는데,
엄청 기대에 부풀어 왔는데,
뭔가 정말 이상했다.
하지만 시긴은 흘러,
한 달이 지나고 어느 주말이 지나고,
출근한 월요일.
앞에 앉은 선생님이 떡을 건넸다.
"무슨 좋은 일 있으세요?"
"저 토요일에 결혼했어요."
"헉, 축하드려요!"
축하의 말과 달리 그러고 나서
나는 조용히 핸드폰을 꺼내
남편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오빠, 여기 정말 이상한 것 같아."
직장동료는 친구는 아니지만 그래도,
하루의 가장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기에,
대소사는 당연히 나누는 게 맞다고 생각했는데
결혼이라는 인생 가장 큰 일도 공유를 안 하는
직장이라니!
게다가 토요일에 결혼했는데 월요일에 출근이라니.
내 사회생활에 대한 모든 통념과 관념이,
마흔을 앞두고 다시 입사한 학원에서
통째로 흔들리고 있었다.
이곳은 마치, 버뮤다 삼각지대 같았다.
아무리 발에 힘을 줘도,
더 깊이 빠져드는 늪처럼.
분명 뭔가가 잘못된 느낌인데
말할 틈도 없이 가라앉아 입이 막히는 느낌.
아직 계약기간은 4개월이나 남았는데,
모든 것이 다 우울해서 내가 여기서 살아남으려면
큰 결심이 필요하다고 느꼈다.
눈을 감고 숨 한 번 쉬고, 용기를 내자.
다음 날, 축하의 의미를 겸해,
모든 선생님께 입사의 인사를 전하기 위해
디저트 가게 사장 바이브를 내어
샐러드 도시락을 만들어갔다.
한 명 한 명에게 전할 때마다 마음은 콩닥콩닥.
안 먹는다고 하면 어쩌지?
안 받으면 어쩌지?
지난번 밖에서 저 선생님 내가 인사했는데
못 본 척하는 것 같았는데 도시락 버리진 않겠지?
하지만 이미 용기를 내어 준비했는데,
거절하고 먹지 않고 최악으로 버리는 건 그들의 선택.
나는 내 선택을 끝까지 멋있게 완료해야지.
그렇게 수 없이 많은 고민과
예상 시나리오들을 꾹 누르고,
선생님들 각각에게 진심을 담아 도시락을 건넸다.
“이게 별건 아니에요.
그냥, 저도 낯설고 조용해서요,
우리, 서로 말하며 지내요.”
효과가 있었는지,
두세 시간 뒤 도시락을 먹은 선생님들이
미소를 띠며 감사의 인사를 건넸고,
그 일을 계기로 교무실에선
살짝살짝 스몰토크가 오가기 시작했다.
서로 마음을 어느 정도 열게 되자
각자의 어려움도 자연스럽게 나누게 되었다.
수업에서 나오는 문제점, 준비하며 겪는 고민,
가르치는 학생들에 대한 생각까지,
같은 동료로서, 일의 선후배로서
일과 수업에 대한 마음을 공유했다.
그런데 사실, 그때 그 교무실에서
가장 우울해 보이던 건
다름 아닌 그 캠퍼스를 담당하고 있는 원장님이었다.
원장님은 내가 뭘 제안할 때마다
늘 "여긴 뭐든 안 돼요."라고 말했는데,
원장 2년 차라는 그의 얼굴엔,
지침과 피로가 묻어 있었고, 무력감도 보였다.
안쓰러운 마음이 들었다.
나도 원장이었던 적이 있으니까.
그 얼굴에서 네오엘리트 원장을 하며,
겪었던 내 좌절들이 오버랩되어 안타까웠다.
어느덧 나는 그 안타까움에 또 나를 내려놓고
상담에, 수업에, 아이들 관리에,
여기저기를 들쑤시고 있었다.
일은 어느 정도 노력이 보상을 해주는 것이라 그럴까?
드디어 우리 반에서 웃음소리가 나기 시작했고,
한 명, 두 명씩 친해지는 학부모님들도 생겨났다.
선생님들과 아주 많이 친해지진 않았지만,
눈이 마주치면 커피 한잔 사러 갈 여유는
서로 나눌 수 있게 되었다.
그런데 그 당시 학원이
실제로 어떤 문제가 있었던 건지,
갑자기 총괄원장님과 대표원장님이
캠퍼스를 자주 방문하시기 시작했다.
대부분의 선생님들은 두 분이 오시는 걸
불편해했는데 나는 괜찮았다.
선임들의 시선, 평가, 일에 대한 가치관,
두 분과 함께 대화하다 보면 그런 부분들이
너무 멋져서 일에 대한 내 마음도 다시 커졌다.
그리고 나도 멋있는 관리자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문득 하게 되었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흘러 재계약을 앞둔 어느 날,
나는 조심스럽게 부원장직을 제안받았다.
부원장?
6개월만 하고 '나의 봄'을 하려고 했는데,
하지만 당시에도 공사 완공은 또 미뤄진 상황이었기에
고민이 깊어졌다.
떠오르는 얼굴이 많았다.
이제는 젖은 어두운 가지 위의 꽃잎들이 아니라,
하나하나 따뜻하게 마음속에 피어나는
관심과 애정 속의 꽃들이었다.
이제 마음을 열기 시작해 나를 따르는 학생들,
출근 후 라테를 함께 사러 가는 선생님,
그리고 퇴근길마다 마주치는 피곤한 원장님.
만날 때마다 너무 멋진 얘기만 해 주셨던
총괄 원장님과 대표원장님.
“그래. 6개월만 더 오지랖을 부려보자.
‘나의 봄’은 언제든 다시 피어날 수 있으니까.
지금은, 여기에서 봄이 필요한
누군가의 옆에 서보기로.”
내 마음은 그렇게 흘러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