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피아노를 통해서 알아가는 음악이라는 신비한 세계
피아노 레슨 시작한 지 벌써 오 년이 넘었다.
퇴직 후 배워야지 했던 피아노를 어느 날 문득 왜 그때까지 기다려야 하지?라는 질문에 적절한 답을 찾지 못해 퇴근 후 늦은 시간 아파트 앞 상가 학원을 무작정 찾아갔다. 그렇게 시작한 레슨이 오 년이 지나갔다. 초등학생이 대부분인 학원에 나이 많은 아저씨가 들락거리는 처음의 쑥스러움도 사라졌고, 일반인 수강생이 그러하듯 얼마나 오래가겠냐고 생각했던 선생님도 이렇게 길게 배우는 것을 신기해한다.
길고도 긴 연습 끝에 한 곡이 나름 완성되면 다음 곡으로 넘어가기 전 동영상, 아니면 최소 녹음이라도 해서 결과물을 남기려고 한다. 처음에는 그냥 보관만 했는데, 나중에 용기를 내어 SNS에도 올렸다. 하지만, 팔로워 수가 적어 자랑이나 플렉스라기보다 기록 차원 이상 이하도 아니다.
취미가 뭐냐?라는 물음에 아직도 피아노라고 말하지 않는다. 그리고 피아노 배운다는 사실을 다른 사람에게 잘 말하지 않는다. 한번 말이 나오면 오십 넘어 피아노 배우는 남성을 신기해하거나, 오 년이나 피아노를 배웠다면 잘 치겠네요?라는 질문이 부담스럽다. 즐길 정도의 피아노 실력은 아직 까마득하다. 아마 그날은 안 올 수도 있을 것이다.
대부분 사람은 악기 하나 정도 다루었으면 하는 로망이 있다. 젊은 때는 바빠서 못하다가 퇴직하면 악기를 많이 배운다. 내가 피아노를 배우는 것도 그런 것과 완전히 무관하지는 않겠지만, 더 큰 동기는 궁금해서였다.
클래식이라는 음악의 세계가 궁금했다. 뭔가 특별해 보이는, 보통의 서민이 쉽게 다가갈 수 없는 그 세계가 궁금했다. 그래서 많은 클래식 명곡을 들었다. 2~5분 만에 끝나는 가요만 듣다가 가사도 없고 연주만 되는 3, 40분 이상 되는 음악을 듣는 것은 쉽지 않지만, 클래식이라는 오묘한 세계를 조금이라도 알기 위해서는 그 정도는 감수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면서 또 궁금증이 생겼다. 현란하게 손가락을 움직이는 피아니스트를 보면서, 명연주가와 그냥 연주가의 차이가 무엇인지 궁금해졌다. 다시 말해 피아노를 잘 친다는 것이 무엇인지 알고 싶었다. 피아노는 그냥 악보대로 건반을 누르면 되는 악기인데 연주에 차이가 있을 수 있을까? 악보대로 그대로 칠 수 있다면 그냥 연주이지 명연주라고 할 이유가 따로 있을까? 어떠한 곡을 칠 수 ‘있다’와 ‘없다’로 구분되면 되면 되는데 말이다.
그런 궁금증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피아노를 배워봐야겠다고 생각했다. 물론 예상하듯이 나의 궁금증은 피아노를 배우기 시작하면서 바로 풀렸다. 피아노는 단순히 건반을 누르는 악기가 아니었다. 건반에서 ‘도’를 누르면 ‘도’라는 음이 나지만, 어떻게 치는 가에 따라 ‘도’라는 음은 무궁무진하게 표현된다. 피아노는 음을 누르면 똑같은 음만 내는 기계가 아니라, 소리를 만들고 표현하는 악기인 것을 알았다. 음악이란 오선지에 뿌려진 음표를 단순히 악기로 소리를 내는 것이 아닌 연주자의 의지로써 음을 표현하는 행위인 것이다.
안 돌아가는 손가락을 억지로 움직여 가면서 많은 시간을 연습한다. 빼곡히 쓰인 음표를 보면서 곡을 만든 작곡자를 생각한다. 그가 생각했던 소리가 종이에 남아 몇백 년 후 나에게까지 전달되었다. 소리를 종이에 남겨야 하겠다는 처음의 발상이 신기하다. 또 ‘도레미파솔라시도’라는 음계가 정해진 것도 신기하다. 한 옥타브의 음계가 끝나고 다시 새로운 옥타브가 똑같이 시작되는 것이 신기하다. 낮은 음의 ‘도’와 높은 음의 ‘도’가 같은 음인 것도 참 신기하다. 소리 높이는 다른데 우리의 귀는 낮은 ‘도’와 높은 ‘도’가 같은 음인 것을, 낮은 ‘도’와 높은 ‘미’가 다른 음인 것을 안다. 누가 그러한 것을 알았을까? 7개의 음이 차례로 높아지다가 8번째부터는 다시 새로 처음의 음이 시작된다는 것을.
매번 생각해도 음악은 신기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