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날의 내가, 훗 날의 나를 위해
책장을 정리하다가 낡은 다이어리 몇 권이 꽂힌 것을 발견했다. 손때가 타서 겉표지 모서리가 너덜하다. 회사에서 매년, 일로 쓰던 다이어리는 크게 보관할 가치가 없어 폐기한다. 여기에 있는 것은 일하면서 사용한 다이어리가 아닌, 다른 목적으로 사용한 것들이다. 멀쩡하지만 시간이 지났다는 이유로 버리기 아까워, 일 아닌 개인용으로 활용했다.
알 장을 한 장씩 넘기니 힘들게 쓴 내 글씨가 보인다. 어떤 날은 컨디션이 좋았는지 또박또박하게 글씨를 써 보기에도 흐뭇하다. 또 어떤 날은 억지로 썼는지 글씨가 날아간다. 그것도 페이지에 한두 줄로 끝나있다. 지금 보기에도 용을 쓰고 있는 내 모습이 보이는 것 같아 몸에 힘이 들어간다. 그렇게 힘들면 안 해도 될 텐데 왜 그렇게 집착해서 했냐고, 시킨 일도 아닌데. 당시의 나에게 따지고 싶은 심정이다.
글 첫 줄은 책의 제목, 그다음은 작가 이름, 그리고 옆에 일자를 적고, 아래에 책을 본 소감을 적어 놓았다. 한 장 한 장 넘기면서 책을 읽었던 당시의 기억이 나기도 하고, 어떤 책은 이런 책도 읽었던가 하고 기억을 더듬기도 한다. 어떤 책은 읽고 나서 괜찮았는지 책에 대한 소감이 몇 바닥을 넘어가기도 하고, 어떤 책은 제목과 작가 이름, 날짜만 적고 넘어가기도 했다. 어떤 책은 무엇이 그리 귀중했길래, 목차를 다 적어 놓았고, 각 제목 아래 간단한 내용을 요약해 놓기도 했다. 하다가 지칠 만도 한데 그러한 짓(?)을 몇 권의 다이어리에 빈 장도 없이 가득 채워 놓았으니, 이건 성실한 건지, 집착이 심한 건지!
직장생활을 하면서 눈코 뜰 새 없이 그렇게 바빴던 것 아니었던 것 같다. 하지만 직장생활을 하는 사람치고 안 바쁘다는 사람 없다. 그래서 나는 바쁘다는 말이 싫었다. 바쁘지 않으면 열심히 하지 않는다는 편견이 싫었다. 누가 “요즘 바쁘시죠?” 물으면 안 바쁘다는 말은 못 하고 그냥 “아, 네에 네에~”하고 얼버무렸다. 그렇다고 팽팽 노는 것도 아니니 분명 지금보다 바쁘긴 바빴을 것이다. 그런데도 이렇게 고집스럽게 책을 읽고, 또 그것을 한 줄이라도 굳이 읽은 표를 남기려고 했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책 읽을 때 좋았던 것이 책장을 덮는 순간 사라지는 그 느낌이 두려웠다. 내가 받은 감동, 읽을 때 주마등처럼 스치고 지나간 여러 생각들이 그대로 내 몸속에 온전히 남아있기를 바랐다. 하지만 그것이 뜻대로 될 수가 있나? 한 번 본 영화도 본 지 안 본 지 기억 못 하는 마당에. 그래서 글로 써놓으면 조금이라도 내 기억 속에 남아있지 않을까. 기억 속에 없더라도 글이라는 것으로 박제를 해 놓으면 훗날 다시 지금을 돌이켜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독후감은 내 기억을 잡기 위한 궁여지책이었다.
나의 독후감은 미래를 위한 배려였다. 지금의 내가 뒷날의 나를 위한 애씀이었다. 훗날의 내가 이 글을 본다면, 지금의 나를, 지금 내가 느낀 감정을 다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그때 미래의 나였던, 지금의 나는 내가 쓴 글을 보면서 그때의 나에게 묻는다.
“언제 이렇게 책을 많이 읽었어?”
“그렇게 많이 읽은 책들의 감동은 어디로 갔을까? 아무 데도 없는 것 같은데?”
물리적으로 많은 시간에 들었을 법한 독서에서 내가 보고 느꼈던 많은 것들은 어디로 갔을까? 아직도 내 영혼의 작은 조각으로 남아 있을까?
“그래, 맞아. 네가 쓴 글을 보니 다시 생각이 나는구나. 아마 내 몸속 어디에서 똬리를 틀고 있었나 봐. 고마워! 잊었던 것을 다시 소생하게 해 줘서”
밑 빠진 콩나물시루에 물을 주면 물은 남지 않고 밑으로 빠지지만, 그래도 콩나물은 물을 먹고 쑥 자라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