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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urStellar Jan 03. 2024

新동명일기

- 갑진년 새해맞이

새해가 되면 어김없이 해돋이를 보러 간다. 한 해가 바뀌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의미가 있는 일인 모양이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나름 문화라는 것이 형성된 곳이라면 삶과 시간에 어떠한 의미를 부여하려 했던 것 같다. 의미는 다를 수 있겠지만 그 행위는 유구한 시간이 흘러 흘러 해 뜨기 전 아직도 어두운 아침에 걸어가는 여기 지금에까지 왔다.


한창 일에 바쁜 시절, 양력 정월 초하루 아침 일찍 일어나 해돋이를 해야겠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새해 첫날은 그저 여느 휴일과 다름없는 날이었다. 일을 안 하는, 늦잠을 잘 수 있는 날이었다. 그렇다고 새해를 맞는 것에 무덤덤한 것은 아니었지만, 새해라고 유달스럽게 해맞이를 한다느니 특별한 일을 한다는 것이 왠지 달갑게 느껴지지 않았다. 새해의 태양이라고 다른 날과 무엇이 다를 것이며, 새해의 소망과 기원을 꼭 초하루에 떠오르는 해를 보면서 해야 할 필요가 있겠느냐고 생각했다. 서울에서 강원도로 해맞이하러 가다가 차가 막혀 고속도로에서 해맞이했다는 뉴스를 들으며, 참 부지런한 사람도 많다고 생각했다.


어쩌다가 신년 아침에 많은 사람들의 무리 속에 끼여 바다 수평선에 해가 떠오르기를 기다리게 되었는지 모르겠다. 나이가 들어 아침잠이 없어져서 그런 것인지, 여유가 생겨서 그런 건지 잘 모르겠다. 그렇다고 열여섯 소년처럼 간절하게 기원하고자 하는 것이 생긴 것도 아닌데. 벌써 몇 년째 해맞이를 하다 보니 이제는 익숙하게 느긋하게 수평선에 떠오를 해를 기다리고 있다.


해안가에 가득 찬 사람들의 눈이 한 곳을 응시했다. 수평선 한가운데 가장 밝은 부분에 사람들의 시선이 모여들었다. 노랗고 발간 밝게 빛나고 있는 저기 바다 아래에서 태양이 솟아오를 것이다. 염원하는 사람들의 눈길에 힘을 받아 바다는 남은 힘을 내어 태양을 잉태할 것이다. 어머니가 혼신의 힘으로 아이를 세상에 존재하게 하듯, 바다는 저 가진 것을 분출하여 태양을 바다 위로 밀어 올릴 것이다.


재잘거리든 사람들의 말소리도, 출렁거리든 바다도 잠시 숨을 멈춘다. 물 위에서 날갯짓하던 갈매기도 어디로 사라졌는지 보이지 않는다. 바다에서 해맞이를 하겠다고 출정한 배들도 한쪽에 가지런히 제 자리를 잡았다. 사위가 어둠이 내리듯 조용해졌다. 찰랑이는 파랑만이 고요히 진동할 뿐이다. 눈앞의 산과 해변과 바다의 적막함에 시간이 멈추었다. 호흡마저 사라져 버린 진공의 공간. 조금 더 길어진다면 숨이 막힐 것 같은 순간. 수평선 위로 빨간 것이 머리를 내민다. 빨간 것이 수줍어하듯 쏘옥 머리를 내민다. 물속에서 검붉은 불덩이가 솟아오른다. 물로도 식힐 수 없는 불덩이 주변에 짙은 진홍색 불기운이 흐물흐물, 불의 태를 벗으려는 용처럼 꼬물꼬물 올라온다. 한번 고개를 내밀더니 쑥쑥 수평선 아래에서 누군가 밀어 올리듯 올라와 머리가 나오고 몸이 나오고 다리가 나오고. 어느새 빨간 동그라미가 느긋하게 굽은 수평선 위에 올라섰다. 완벽한 원과 가장 긴 선의 만남. 그대로 있다가는 수평선 위로 동그란 원이 굴러가지 않을까 걱정이 된다.


둥근 해는 수평선 위로 구르지 않고 위로 올랐다. 붉은색은 어느새 눈부신 황금색으로 바뀌면서 온 세상에 빛을 뿌리기 시작했다. 먼저 수평선에서 시작해서 사람들이 서 있는 해안을 잇는 바닷물 위 찬란한 길을 놓았다. 반짝이는 길을 따라 빛은 구석구석 흘러들었다. 아빠 팔에 안긴 아직 젖살이 통통한 세 살 아기에서부터, 신경통으로 다리를 근근이 끌고 다니는 백발의 영감에게로,  과년한 딸과 같이 살고 있는 중년의 여인에게로, 살살대는 강아지를 꼭 안고 있는 노부부에게로, 올해는 결혼을 해야 하는데 걱정이 많은 안경 쓴 젊은이에게로, 두 손을 합장하고 눈을 감고 기원하는 올해도 독서실에 살아야 하는 취업 준비생에게로, 태양의 빛은 넉넉히 흘러들었다. 그리고, 사람들이 딛고 선 모래 위에 짙은 그림자를 만들고, 소나무 아래 말라버린 풀 잎사귀에도 태양은 잊지 않고 깃들었다.


어제의 태양이 오늘과 다르지 않건만, 오늘의 태양은 어제의 태양과 다르다. 우리가 오늘의 태양을 다르다고 의미를 부여했기 때문이다. 오늘부터 뜨는 태양은 새날의 태양이다. 바다에 모여 해맞이를 하는 사람들의 태양이다. 다가 올 시간에 대한 기대를 가진 이들의 태양이다.



*동명일기(東明日記)는 동해에서 해를 바라보는 감흥을 쓴 한글 기행문으로, 조선후기(1772, 영조 48년) 문인 의유당 남 씨가 쓴 한글 기행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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