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OurStellar Feb 16. 2024

콩고물 주먹밥

- 기억에서 찾은 맛

“맛있는 것 먹으러 갑시다.”

“생일이니 좋아하는 것 먹으러 가요.”

“좋아 음식이 뭐예요?”

이런 말을 들으면 대답이 궁색하다. 내가 좋아하는 것이 뭐더라. 맛있어하는 음식이 뭐였지? 아무리 생각해 봐도 신통한 답이 안 떠오른다. 그럴 때 십중팔구 하는 말은,

“다 맛있지. 맛없는 게 뭐 있겠어. 그냥 아무 데나 갑시다.”


왜 그런지 모르지만, 나는 내가 딱히 맛있다고 고집할 만한 음식이 없다. 맛있는 것이 뭔지 잘 모르겠다. 그렇다고 음식 맛을 모르는 것은 아니다. 제대로 된 요리와 대충 싼 재료로 만든 인스턴트 요리를 구분하고, 맛있는 음식을 먹으면 맛있다고 한다. 가능하면 몸에도 좋고 맛도 있는 음식을 먹으려고 한다. 하지만 음식이 맛있으면 그저 ‘맛있구나!’ 하는 정도지, 맛있어서 ‘꼭 다시 와서 먹어야지’, ‘돈이 생기면 꼭 먹어야지’, ‘아껴 뒀다가 특별한 날에 먹어야지’와 같은 생각을 해 본 적이 없다. 


음식은 생존의 필수 요소로서 본연의 역할이 너무 중요하다. 음식이 주는 맛은 부차적이다. 그러나 지금은 배고픈 시절이 아니고, 온 사방에 먹거리가 널렸다. 음식을 단순히 생존을 위해, 배 불리기 위해서만 먹지 않는다. 배부른 것을 넘어 맛이 더 중요한 시대가 되었다. 아직도 음식의 맛을 부차적으로 생각하는 나는 여전히 배고픈 시절의 생각을 못 벗어나고 있는지 모른다. 어린 시절 가난했지만, 그렇다고 배를 곯린 적은 없는데도 말이다.


내 또래 대개가 비슷하게 가난한 시절을 겪었지만, 주변의 친구, 동료들은 맛집을 잘도 찾아다닌다. 그러나 나는 그런 일이 피곤하다. 그런 점에서 내가 맛있는 것에 대해 무심한 것은 꼭 어린 시절 가난해서 그런 것 같지만은 않다. 물론 나도 맛있는 음식을 맛있어하고, 당연히 맛없는 음식보다 맛있는 것이 좋다. 어쩌면 내가 맛에 대해 열의가 없고 무심한 것은 게으른 천성 때문일지도 모른다. 아무튼 나는 게을러서 그렇게 맛집을 찾지도 않고, 맛있는 것을 먹으려고 안달하지도 않는다. 그저 차려주는 밥상 고맙거니 하고 잘 먹는 것이 음식에 대한 내 생각이다. 


맛집 찾는 먹방에서 패널들이 군침을 흘리거나 맛에 탄성을 지르는 장면을 보면 맛있겠구나 하는 이상의 느낌이 없다. 소문난 맛집을 탐방하는 방송에서 간단한 음식을 하기 위해 오랜 시간 공들여 재료를 만들고, 보통 사람이 생각지도 못하는 비법을 써서 국물을 우려내고, 소스를 만드는 것을 보면 정말 대단하다. 먹는 것에 대한 사람이 쏟아 넣는 노력이 정말 감탄스럽다.


하지만, 간단한 먹거리 하나 만들기 위해 저렇게까지 해야 하나? 묻고 싶은 심정이 든다. 어차피 먹으면 몸속에서 다 소화되고 말 건데, 잠깐 지나가는 입 속의 쾌감을 위해 그 많은 에너지를 쏟아야 할까! 물론 최고의 맛을 위한 노력을 이해하려고 한다. 요리가 단순히 먹기 위한 음식 만드는 것을 넘어선 예술과 같은 고차원적 행위라는 것도 모르는 바가 아니다. 그러한 뜻과 노력을 충분히 존중하고자 한다. 그렇더라도 음식에 대한 내 생각은 크게 변하지 않을 것 같다. 나는 그저 나를 지키는 소소한 음식, 누군가의 너무 애씀이 들어가지 않은 평범한 음식이면 족하다. 하지만 세상에는 나 같은 사람보다, 작은 쿠키 하나를 만들기 위해 몇십 번의 손이 가고, 온갖 진귀한 재료가 들어가는 소스로 만든 파스타에 더 찬사를 보내는 것 같다.


맛에 대한 의지가 없어 그런지 맛있는 음식을 맛보는 기회가 많지 않다. 그래서 먹는 것 대부분이 거기서 거기다. 아내 또한 맛에 대한 감각이 나보다 크게 낫지 않아, 대부분의 식탁 음식이 거기서 거기다. 그래서 다행이다. 요리를 할 줄 모르는 배우자에게 맛없다고 매번 불평하거나, 맛있는 요리를 기껏 해줘도 맛있다는 말을 안 한다면 싸울 일이 많을 텐데, 그럴 일이 없으니까. 맛있는 것에 대한 욕심도 크게 없어 맛있는 것 먹으러 가자는 말도 거의 하지 않는다. 그나마 외식한다면 그저 칼국수나 잔치국수 한 그릇이면 충분하다.


겨울인데도 봄 날씨같이 포근한 날이었다. 전날 비까지 내려 미세먼지까지도 말끔히 씻겨, 맑은 하늘이 드러났다. 오랜만에 밖에서 달리기 하자고 나갔다. 이어폰으로 라디오를 들으면서, 따뜻하다고 너무 얇게 입고 나왔나 걱정하면서 달렸다. 곧 땀이 났고 더워서 옷 한 겹을 벗어 허리에 묶었다. 벌써 이렇게 더워서 어쩐담, 또 걱정하면서 달렸다. 신나게 음악이라도 울리면 좋을 텐데 노래가 끝난 후 진행자와 게스트가 이런저런 이야기를 한동안 했다. 아침밥에 대한 이야기였다. 어릴 적 학교 가기 전 밥 안 먹겠다는데 엄마가 김에 싸서 입어 넣어 주었다는 이야기, 엄마가 엘리베이터까지 밥을 들고 쫓아왔었다, 옛날 마가린에 밥 비벼 먹었으면 부자다, 나는 토마토케첩에도 밥 비벼 먹었다, 우유에 밥 말아먹으면 정말 맛있다 등 다양한 시청자의 댓글이 오고 갔다. 그러다가 진행자가 아니 이분은 콩고물에 밥을 비벼 먹었다네요, 하면서 콩고물에 밥 비벼 먹는 것은 처음 들어 본다고 했다.


쌕쌕거리는 숨소리가 멈췄다. 햇살 속 아직도 차가운 겨울바람이 땀을 훑고 지나갔다. 콩고물. 그래! 콩고물. 노오란 콩고물이 그림처럼 떠올랐다. 콩고물에 밥을 비벼 먹었었지. 노란 가루를 밥그릇에 한 숟가락 넣고 비벼 먹었지. 또 콩고물 속에 밥을 넣어 손으로 굴려서 고물을 묻혀서 뭉쳐 먹었지. 그러던 시절이 있었는데. 맛있는 시절이 있었는데. 어떻게 새까맣게 까먹고 있었을까! 노란 콩고물에 묻힌 밥 알갱이를 손으로 집어 먹던 시절이 맛이 머릿속에 피어올랐다.


정월 초하루가 설날이 지나고, 이틀, 사흘, 나흘 지나면 설날에 마련했던 음식이 하나둘씩 동이 나기 시작했다. 몇 번씩이나 밥 위에 쪄서, 쪄도 딱딱한 시루떡도 다 먹었고, 바싹 말라비틀어진 전 쪼가리마저도 사라졌다. 명절이 끝난 아쉬움. 끝난다는 것을 알지만 막상 명절이 끝났을 때의 허무함. 다시 시작된 지루한 일상. 시간은 더디 가고 더 새로울 것도 없는 시골 생활. 다시 시작한 보통의 하루는 왜 그리 긴지. 누구에게라도 짜증이라도 쏟아 내고 싶은 때, 학교를 마치고 집에 와도 나를 맞는 것은 아무도 없는 빈집뿐이었다.


딱 그런 때, 텃밭에서 돌아온 할머니는 투정이 쏟아질 것 같은 손자에게 한쪽에 싸 두었던 비닐봉지를 꺼냈다. 봉지 안에는 노란 콩고물이 들어있었다. 콩고물을 접시에 들어내 밥을 콩고물 위에 손으로 조몰락, 조몰락하여 주먹밥을 만들어 입에 넣어 주었다. 텁텁한 콩고물이 처음에는 입에 거슬렸지만, 곧 입안이 고소해졌다. 치밀었던 짜증도 주먹밥과 함께 내 속으로 쏙 넘어갔다. 설날에 인절미를 만들면 언제나 콩고물 여분이 생겼고, 할머니는 남은 콩고물과 인절미에서 떨어진 콩고물을 모아 한쪽에 두었다. 그리고 명절 음식이 다 떨어질 즈음 꺼내 밥을 비벼 주셨다. 나도 콩고물 밥이 맛있었다. 허리가 꼬부라진 우리 할머니도 콩고물로 비빈 밥을 좋아하셨다.


명절이면 찹쌀밥을 짓고 돌절구에 찧어 방 한가운데 떡을 펼쳐 콩고물을 묻혀, 인절미를 만들었다. 할머니가 돌아가시고는 방앗간에서 찰진 떡을 만들고 집에서 콩고물을 묻혀 인절미를 만들었다. 지금은 집에서 인절미를 만들지 않는다. 그러니 집에 콩고물이 있을 리가 없다. 콩고물로 밥을 비벼 먹는 일도 없다. 잊는다는 의식도 없이 콩고물을 잊어버렸다. 


내 기억 속에 남은 유일한 맛. 콩고물로 뭉친 밥. 잊고 있었던 맛있었던 기억을 찾았다. 맛에 대해 무심했던 내게도, 맛있었다는 것이 있었다는 것에 행복해진다. 

매거진의 이전글 어김없이 오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