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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urStellar Feb 25. 2024

색안경을 낄 거야

-  나를 멋지게 보는 작은 위로의 팁

막내가 고3이 되었을 때 가장 신경 쓴 일 하나는 주민증 만드는 일이었다. 예나 지금이나 주민증 발급은 이제 어른이 된다는 의미로 받아들인다. 그 시절 나 또한 그랬었기에 충분히 그 기분을 알 만도 했다. 하지만 ‘학생일 때가 좋지. 어른 되면 금방 나이 먹어’라는 말하고 싶지만 아이들이 알아들을 리 없고 해서 그냥 지켜만 보았다. 아이는 주민증에 넣을 사진을 찍는 일에 특히 공을 들였다. 요즘 세대, 특히 여성에게 주민증 사진은 더 민감한 부분 같다. 남에게 보이는 공식 신분증이다 보니 더 그러하리라. 한번 사진으로 넣고 나면 바꾸기도 쉽지 않아, 신부 결혼사진 못지않게 신경을 썼다.


처음 만드는 주민증, 결코 아무렇게나 만들 수 없다. 막내는 사진 찍는 일정을 정해 놓고 다이어트를 한답시고 식사도 제대로 하지 않아 엄마 속을 슬슬 썩이기 시작했다. 사진은 얼굴만 나오는데 다이어트를 왜 하냐고 따졌지만 막내는 막무가내였다. 어떤 곳에서 사진을 찍어야 할지, 어떻게 배경 처리를 해야 예쁘게 나올지, 틈만 나면 언니를 붙잡고 물어봤다. 안 들으려고 해도 들려서 어쩔 수 없이 잔소리를 하게 되었다.

“신분증 사진 뽀샵하면 안 돼. 사진 뒤에 배경 색 넣으면 안 될 걸”

“아니에요. 아빠는 모르면서. 친구들 다 뽀샵하고 뒷 배경에 색상 넣어서 예쁘게 한단 말이에요.”

“그럴 리 없어. 다른 사진도 아니고 신분증 사진이. 그러면 어떻게 본인을 확인해? 여권사진 만들 때는 뒷 배경도 없어야 하고 귀도 나와야 하고 아주 까다로워. 잘못하면 사진 다시 찍어야 돼.”

“그건 여권이고 주민증은 얼굴 수정과 배경 색상 다들 해요.”

아이 대답이 너무 확신에 차서 인터넷에 찾아보니 여권 사진과는 달리 주민증 사진은 약간 보정과 배경색이 허락되었다. 공식 사진이지만 워낙 수정이 일반적인지라 정부도 어느 정도 허용한 모양이다.


그렇다고 주민등록증 사진을 심하게 보정하면 안 될 것 같아 막내에게 다른 요구를 했다. 사진 값도 만만치 않은데, 이왕이면 여권 사진 규정을 지키면서 사진을 찍어, 나중에 여권 갱신할 때도 사용할 수 있도록 하자고 했다. 즉, 보정을 최소화하고 배경색은 넣지 말고, 머리를 뒤로 넘겨 귀와 목이 잘 나오도록 찍자고 했다. 엄마, 아빠 요구에 아이는 당연히 싫다고 했고, 티격태격하다가 결국 감정이 틀어져 “그럼 너 알아서 해. 나도 몰라”라는 엄마의 말로 끝났다.


며칠 후 사진 찍었다며 작은 봉투에서 사진을 꺼냈다. 갸름하고 뽀얀 얼굴, 아이와 닮은 여성이 나왔다. 사진을 보면서 아내와 나는 “그래, 예쁘다. 잘 나왔네.”라고 칭찬을 해주었다. 아이 말로는 얼굴 수정은 사진관에서 제공하는 기본만 했고, 추가로 하지 않았다고 했다. 또, 여권으로 쓸 수 있어, 규정에 맞게 찍어 달라고 했다고 한다. 사진을 보니 배경 색이 없고, 얼굴도 귀와 목이 다 드러나 있었다. 친구처럼 예쁘게 사진을 찍고 싶었을 텐데 요즘 세대를 이해 못 하는 부모들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마음에 안 드는 사진을 찍은 게 아닌가 싶어 마음이 짠했다. 그래도 사진이 예쁘다는 말에 아이도 크게 실망하지 않고, 나름 만족해서 다행이었다.



이미지 보정이 보편화된 현실을 모르지는 않다. 회사에서 사원 채용할 때 서류 사진과 실물이 너무 달라 가끔 놀라곤 했다. 사진으로는 보기에는 왜소한데, 키 큰 덩치도 산만한 사람이 나타났을 때는 이거 너무하지 않나라고 생각했다. 실물을 대변하는 사진 본래 역할이 퇴색되어 사진에서 지원자 외모를 파악하겠다는 생각을 버렸다. 사진과 실물이 차이가 난다고 별도 감점할 수도 없고, 그저 성별 정도 파악하는 용도로만 활용할 수밖에 없었다.



얼마 전 큰맘 먹고 얼굴 전체를 레이저 시술하였다. 부분으로 하기에 너무 많아 전체를 했다. 시술 후 거울을 보니 얼굴 전체가 뻘겋게 피로 물들어 있었다. 의사 말로는 가라앉기까지 몇 달 걸릴 거라 했다. 사진으로 얼굴이 가라앉는 과정을 남기고 싶어 스마트폰으로 셀프 촬영을 했다. 전면, 좌측, 우측 돌아가면서 찍었다. 그런데 사진에 찍힌 얼굴에는 벌건 시술 자국이 그렇게 많지 않았다. 거울을 보면 온 전체가 벌게서 보기도 민망할 정도인데 사진에는 그저 빨간 점 몇 개만 있었다. 잘 못 찍었나 싶어 빛을 좋은 곳에서 다시 몇 번 찍었다. 그래도 사진에는 그저 여드름 자국 몇 개 정도로 똑같은 모습이었다. 이상하다 싶어 뭐가 잘못되었지 하는데, 옆에서 보던 딸이 말했다.

“아빠, 그거 카메라가 자동으로 보정하는 거야”

“앱으로 찍은 거 아니고, 그냥 스마트폰에 카메라로 찍은 거라고.”

“아마 기본 기능으로 되어 있을 걸.”

“그래? 특별한 앱이 아닌데도 그렇단 말이지. 그러면 있는 그대로 찍도록 설정하는 방법이 없나?”

“글쎄, 잘 모르겠는데.”


보정이 안 되는 기능을 찾아봤지만 찾지 못해 결국 시술 당시를 사진으로 남길 수 없었다. 그리고 새로운 사실을 알았다. 스마트폰에 제공 촬영 앱도 모든 것이 보정되어 찍힌다는 사실을. 그동안 내가 찍어 댔던 그 많은 사진들은 현상 그대가 아닌, 누군가의 의도에 따라 보정된, 왜곡된 사진이라는 이었다는 사실을.


디지털기술이 보편화된 시대가 되면서 복제와 보정이 너무 쉬워졌다. 사진을 마음에 들게 보정하는 일은 이제 애교에 속한다. 디지털 시대를 넘어 AI가 실생활에 적용되면서 복제를 넘어 현실에 있지도 않은 가상의 존재도 만들 수도 있다. 소위 말하는 가짜가 넘쳐나는 시대이다. 어떤 것이 진실인지 알기조차 힘들다.  사이버 세계, 아바타, 메타버스 등, 현실과는 다른 또 다른 세상을 꿈꾸고, 현실은 쉽게 조작될 수 있고, 그러한 행위에 대해서도 큰 부담을 갖지 않는다. 이미 알고는 있었지만, 막상 내 스마트폰 카메라로 있는 것을 있는 그대로 찍을 수 없다는 일을 통해 왜곡된 사실이 진짜를 대신하는 것 같아 마음이 무거웠다. 디지털로 대변되는 기술의 변화가 올바른 방향인지, 어디에서 어떻게 끝날지 알 수 없어 앞으로 펼쳐질 세상이 두렵기도 했다.



오랜만에 후배들을 만났다. 모임에도 잘 나오던 친구가 최근에 몇 번 빠졌던 터라 더 반가웠다.

“오랜만이야. 그동안 무슨 일 있었어?”

“아니, 일이 계속 바쁘다 보니 그렇게 되었어요.”

“오랜만에 이렇게 제법 모였으니 사진이라도 찍어 올리자.”

“그래요. 내 스마트폰으로 찍을까?”

“아니, 너 카메라 지난번에 보니 너무 보정이 되더라. 내 얼굴이 아이돌처럼 나왔더구만.”

“그게 어때서요. 사진이 보정되면 어때요. 나이 들어가면서 거울에서 내 얼굴 보기도 가끔 심난한데, 사진이라도 예쁘게 찍어서 기분이라도 좋아야지. 사진 찍어 예쁘게 하면 안 되나요? 혼자서 그거라도 마음을 위안을 얻겠다는데 그게 뭐 그리 잘 못 된 건가요?”

갑작스러운 톤 높은 후배 말에 나는

“어어, 그래. 알았어. 뭐 아무거나 찍으면 어때. 그래 찍자.”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후배 말이 떠올랐다. 스마트폰에 예쁘게 찍힌 내 모습. 예쁘게 찍힌 내 모습이 현실 내 모습 그대로가 아니다. 그럼에도 멋지게 잘 나온 사진이 좋고, 가끔 소위말하는 인생 컷도 찍고 싶다.

후배 말처럼 약간의 보정, 약간의 위선으로 소소한 즐거움과 위로를 얻겠다고 하면 나쁘다고 색안경을 끼고 봐야 할까? 물론 나쁘게 이용하면 문제일 수 있지만, 나를 위해, 내 만족을 위해 보정을 해서 예쁜 추억을 남기겠다는 마음을 그렇게 나쁘게만 볼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차피 디지털이 시대에 기술이 주는 이로움을 지혜롭게 사용하고 즐기는 일도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권리가 아닐까.



남녀노소 누구나 화장을 하는 시대이다. 화장이 타인에 대한 예의라고 하는 이도 있다. 화장을 비난하지 않는 것처럼, 멋지게 하는 나를 찍는 일을 그렇게 색안경을 끼고 볼일은 아니지 싶다. 어쩌면 자신을 더 아름답게 보는 자기만의 색안경이 필요할지도 모른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가장 멋지고 존귀한 유일한 나를 아름답게 하고, 작은 위로를 주는, 남들은 모르는 나만의 색안경을 가끔은 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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