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쩔 수 없다"는 여기서 멈춘다

자기애라는 힘

by 햔햔


어쩔 수 없다


이 말을 되뇌면 왠지모를 안도감이 느껴진다. 상황을 대충 정리하고 감정도 대충 정리할 수 있게끔 합리화하는데는 이만한 말이 없는 듯 하다. 어쩔 수 없다. 아이가 둘이 되면서 이렇게 생각하는 것이 큰 무기가 되었다. 맹목적 사랑이라는 본능에 의해 움직이던 몸이 어쩔 수 없이 머리를 쓰기 시작한 것이다.

예를들면, 한 아이가 책 읽어 달라고 요구하면 반사적으로 반응하던 몸이 다른 아이의 수유에 붙들려 "동생 밥 먹이고 읽어 줄께. 혼자 보고 있어~"라는 대안을 꺼내게 되고 이를 아이가 거부해도 어쩔 수 없다고 이성적으로 판단하기 시작한 것이다.

맞다. 어쩔 수 없다. 내 몸이 두 개가 아니고서야 한 번에 두 곳에 있을 수 없다. 그로인해 아이가 짜증을 내면 그것도 어쩔 수 없다. 아이는 나름의 감정을 표출하는 것이고 충족되지 않은 욕구에 그럴 수 있다. 나 역시 어쩔 수 없음에 그리하였는데 짜증을 내니 짜증낼 수 있다. 그것도 어쩔 수 없다.

와. 어쩔 수 없다로 모든게 맘 편히 해결됐다. 합리화 최고경지! (엄지)


어쩔 수 없으니 그냥 막 화내고 또 떼쓰고 화내고 떼쓰고. 그런데 이렇게 가다보면 막장이 된다. 끝없는 도돌이표. 그럼 어디까지 어쩔 수 없는 것일까? 이런 상황이 거듭될수록 어쩔 수 없다며 아이에 대한 미안함을 합리화하지만 그로인해 조금씩 늘어나는 스트레스는 정말 어쩔 수 없는 것인가?.


조금 더 이성적인 인간인 척하며 상황을 냉철히 짚어본다.

1. 내 몸은 하나다.

2. 모두 정~~말 사랑하지만 동시에 만족시킬 순 없다.

3. 한 아이의 욕구를 채워주고 다른 아이에겐 타협안을 제시한다.

4. 아이는 협상을 받아들이지 않고 떼를 쓴다.

5. 번잡한 감정이 조금씩 올라온다.

6. 눈빛이 변한다.

7. 떼를 중단시키기 위해 감정을 화로 변환해서 퍼붓는다. (파이어~)

8. 아이는 떼를 멈추고 의기소침해지거나 더 심하게 떼를 쓰고 4번 과정부터 반복된다.


위 상황을 차분히 생각해본다. 정말 어디까지가 어쩔 수 없는 상황인건지. 1,2,3,4,5....

5,5,5,5,5......

햐~ 짜증을 내는 것을 어쩔 수 없는 것으로 치부해버리니 답이 없다. 이 악순환의 끝은 아마 아이가 혼자 책을 읽을 수 있는 시점이 될 것이 분명해 보인다. 1번부터 4번까지는 내가 어쩌지 못하는 정말 어쩔 수 없는 상황이다. 하지만 나의 짜증은 어떡하든 어찌해볼 방법이 있지 않을까? 아.. 지나치게 이성적인 것 같아 부담스럽지만 조금 더 들어가 본다.


내가 바꿀 수 있는 사람은 내 자신 뿐이다


내가 변하면 상황이 변한다. 어쩔 수 없음을 나를 제외한 모든 것에 적용한다. 그리고 나는 그것으로부터 분리되어 나온다. 그리고 오로지 나만 생각한다. 내가 행복하려면 어떻게 해야할까? 오로지 그것만 생각한다. 그러면 답은 의외로 쉽게 얻어진다. 스트레스 받지말자. 간단하다. 지나치게 간단해 보여 스스로 조금 더 미사어구를 붙여 거창하게 만들어 본다. 나는 소중한 존재니까 내 정신건강에 좋지 않은 일은 스스로 하지 않을래. 그래도 뭔가 부족해 보인다. 약간 이기적으로 보이기도 하니 조금은 이타적인 면도 버무려서 장황하게 만들어 본다. 나를 소중히 여길 줄 아는 사람이 다른 사람도 소중하게 여길 줄 아는거지. 내가 스트레스 받으면 그 감정이 소중한 사람에게도 전달되고 그 소중한 사람이 힘들어 지는 것을 보는 건 나를 사랑하는 나로선 나를 위하는게 아니야.


와우. 오글거린다. 그런데 효과가 있다. 저 악순환의 고리를 내가 주도권을 가지는 시점에서 끊어내버리면 나머지 어쩔 수 없는 상황에 대해 감정이 아닌 이성적으로 대할 수 있다. 최선을 다했다는 위안과 이것이 서로를 위해 최선이라는 합리적 근거로 쉽지 않은 상황을 조금은 편안히 견뎌낼 수 있다.


그래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 자기를 사랑하는 마음. 자기애라고 생각한다. 부부간이든 보모자식간이든 우리는 각자다. 공간과 시간, 감정을 공유할 순 있어도 같아질 순 없다. 그것을 인식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가족을 위해 내가 무엇이 되어야 하는 것이 아니라. 나와 아내, 아이들의 존재 자체가 가족이라는 생각. 그렇게 나를 아빠, 엄마라는 가족의 구성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나"라는 존엄한 존재로 받아들이는 연습이 육아로 희생하는 엄마, 아빠가 아닌 육아를 해나가는 내가 되는 길이라 생각한다.


나만 챙기자는 것이 아니다. 나도 챙기자는 것이다. 더 나아가 나도 잘 챙겨서 가족을 더 잘 챙길 수 있게 나를 아껴쓰자는 것이다. 오랫동안 "나"로 살아왔던 존재들이 "엄마", "아빠"가 되면서 거룩한 희생을 스스로에게 강요하고 합리화하면서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니 이제 나도 좀 챙기자. 자신을 "나" 혼자일 때보다 더 사랑하자. 나를 사랑하는 마음이 넘쳐흘러 도랑이 생기고 호수가 생겨서 주변 모든 것을 아름답게, 이롭게 만들도록.




앞서 언급한 상황에 대해 이야기하자면 어느 순간 아이는 보채는 시간이 짧아지고 종종 혼자서 책 보며 (가끔 거꾸로 들고 있긴 하지만) 나와 같이 어쩔 수 없음을 본능적으로 깨닫고 있는 듯 하다. 아무리 울고 보채도 미안한 표정으로 미안하다며 기다려달라고 말하는 부모의 마음을 알았는지, 상황과 행동의 패턴에 익숙해졌는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악 쓰고 열을 올리는 일은 많이 잦아들었으니 나를 아낌으로써 어쩔 수 없음을 끊어낸 효과는 이 정도라도 충분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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