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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햔햔 Mar 16. 2019

카레가 먹고 싶었는데, 저녁이 카레였다.

되는 게 하나도 없다고 생각했는데...




| 되는 게 없다.


    마음대로 되는 게 없다. 오늘은 해야지. 내일은 해야지. 이번 주엔 끝내야지. 했던 대부분의 것들이 그대로다. 빌려 온 책은 다 읽지도 못한 채 반납기한이 됐고, 글감이라고 메모한 수많은 포스트잇은 책상을 나뒹굴고 있다. 호기롭게 키우던 식물은 오늘내일하고 매일같이 다잡는 내 마음도 갈팡질팡한다. '되는 게 없네' 나도 모르게 읊조린다. 이것도 안되고 저것도 안되고, 심지어 화장실에서 조차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 먹은 걸 그대로 내보내면 되는데 그것조차 쉽지 않다. 아. 답답하다. 가슴도 저 아래 묵직해진 배도.


    곱씹을수록 참 되는 게 없다. 원하는 것마다 쉽지 않고 난관은 항상 저기 으슥한 골목에서 대기타고 있다. 한번 달려볼라치면 갑자기 툭 튀어나와 부딪치거나 으슥한 분위기에 근처로 가지도 못하겠다. 좁고 구불한 골목에서 달리려고 해서인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어쩌겠나. 내 인생이 탄탄대로는 아닌 걸.

 

    그렇다고 내 삶에서 난관이라는 것이 어마 무시하고 대단한 것도 아니다. 일찍 일어나고픈데 잠자리에서 보고 있는 웹툰이 너무나 재미있다거나 야식을 먹지 않으려는데 얼마 전 사놓은 오징어가 맥주를 옆에 끼고 긴 다리를 하늘거리고 있는 정도다. 좀 큰 일이라면 이런 것들이 쌓이고 쌓여 생긴 습관이 되겠다. 작은 습관이 꾀 중요한 일에서도 존재감을 드러낼 땐, 일을 그르치게 된다. 그러고 보니 대부분의 난관은 내가 이리저리 숨겨 둔 부비트랩일지도 모르겠다.


| 기대 = 현실적 결과 x 1.5


    어릴 적 동네 불량 형아들이 있었다. 자주 겪다 보니 너무 익숙해져 두려움보다는 지겨움이 먼저인 그런 존재들. '아. 귀찮게 됐네. 또 뭘 시킬까?' 그 시절 딱히 많은 돈을 뜯거나 때리는 일은 거의 없었다. 그저, 오락실 가던 손에 쥐어진 500원을 200원이나 300원으로 환전해주거나 조금 불편한 심부름이나 아이로서는 가슴 조리는 나쁜 짓(초인종 누르기, 작은 손으로 자판기 종이컵 뽑기 등)을 시키는 정도였다. 번거롭긴 해도 처음 집을 나섰던 목적은 항상 이뤘다. 비록 500원어치 오락을 하진 못했어도 그렇게 가고 싶던 오락실에서 재미있게 놀고 오곤 했으니까. 나중엔 번떡이는 아이디어로 주머니엔 100원, 신발 밑엔 400원을 깔고 다니면서 스릴과 승리감도 맛봤다. 참 대단했다. 그런 리스크와 번거로운 상황을 예상하면서도 항상 나돌아 다녔으니까. 그땐, 목표도 분명했고 과정에 최선을 다했으며 결과엔 만족할 줄 알았다.


    그런데 어른이 되고부턴, 목표는 계속 변하고 과정엔 핑계와 후회를 더하며 결과엔 못마땅해한다. 항상 탓할 사람이나 상황을 찾고 이도 저도 없으면, 그냥 내 탓을 한다. 다 뺏길 수 있었던 500원을 400원으로 환전받아도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는 거다. 우여곡절 끝에 도착한 오락실에서 재미있게 400원을 쓰면서도 사라진 100원에 대한 아쉬움을 더 크게 느끼는 거다. 오락실을 나서며 텅 빈 주머니를 만지면서 '에이, 돈만 버렸네' 하곤 인상을 구기는 거다. 목표한 바는 500원을 온전히 들고 가서 여러 도전에 이겨(대전 게임은 도전자가 있으면 계속할 수 있다) 500원어치보다 많은 시간을 보내고도 수중엔 200원 정도 남기는 것이라고 해야 하나. 게임을 잘하지도 못하면서, 돈을 다 쓸 때까지 자리에서 일어나지도 못하면서 그런 욕심을 부린다. 그러니 '뜻대로' 되는 게 없을 수밖에.

 

    언제나 기다리는 결과의 1.5배 정도는 기대를 부풀린다. 그리고 그 커다랗게 부푼 기대를 안고 가다 좁은 골목에 꽉 끼고 만다.


| 카레가 먹고 싶었는데, 저녁이 카레였다.


    '아. 카레 먹고 싶다.' 이래저래 불만이 지속되던 날, 퇴근길에 잠깐 든 생각이었다. 혹자가 마음이 힘들면 달랠 수 있는 음식을 찾게 된다고 하더니, 힐링이 필요했는지 좋아하는 카레가 떠올랐다. 그런데 이게 웬걸. 집에 오니 카레 냄새가 난다. "와. 카레다" 어릴 적 오락실을 처음 들어서던 순간 마냥 설레고 신이 났다. 냠냠 쩝쩝. 참 맛나다. 게걸스럽게 두 그릇을 뚝딱하곤 만족감에 배를 두드린다. 아내에게 한 고맙다는 말에 진심이 듬뿍 묻어난다.

    마음대로 되는 게 없었는데... 이런 일도 있구나 하는 생각에 기분이 묘하게 좋아진다. 뜻하지 않게 원하는 걸 얻어보니 알겠더라. 너무 기대만 하고 지냈다는 걸.


한 번에 너무 많은 걸 원하고 있었어!


    있을 수 없는 완벽한 예측과 완벽한 타이밍. 들인 노력보다 나은 결과. 그런 것들을 원하고 있었던 듯하다. 이제 보니 주변이 달라 보인다. 쌓여있는, 아직 다 보지 못한 책 옆엔 그간 읽었던 책들이 가지런히 꽂혀있다. 갈길을 못 찾은 몇 장의 포스트잇을 들추니, 반복되는 비슷한 메모에 이미 알게 모르게 글로 푼 내용들도 눈에 띈다. 너무 잘 먹어서 그런가. 한 동안 묵직했던 아랫배에서 이젠 나가야겠노라 노크도 한다. 그래. 시기의 문제지 꾸준히 하다 보면 차츰 갖춰져 가는 것들이 있었던 거다. 느리지만 꾸준히 눈을 대니 읽는 책이 늘어나고, 꾸준히 끄적이니 어딘가 쓰게 되고, 꾸준히 밀어 넣으니 언젠간 싸게 되는 거다.


    여전히 길은 좁고 알게 모르게 숨겨 둔 부비트랩이 지천에 깔렸지만 한발 한발 나아가고 있었던 거다. 그저 내 디딜 곳만 보다 보니 얼마나 많이 왔는지 생각해보지 않았던 거지.

 

| 카레가 아니어도 괜찮아.


    혹시, 지금 사막에서 겨우 얻은 물통을 손에 들고, 가득 차지 않았다고 볼멘소리를 하고 있는 건 아닌지 생각해본다. 소중히 여기고 목을 축일 때마다 감사해하고 있는지, 어서 빨리 오아시스가 나타나지 않는다고 불평하는데만 집중하고 있는 건 아닌지 말이다. 어차피 당장 눈 앞에 보이지 않는 오아시스라면 나아갈 힘이 되는 덜 찬 물통에 조금 감사해도 되지 않을까? 그거 조금 감사한다고 해서 오아시스를 찾고 싶은 마음이 없어지거나 질투 난 오아시스가 도망가는 건 아닐 테니까.


    오늘도 카레가 먹고 싶다. 운 좋게 또 카레가 저녁일 수도 있다. 그러면 또 좋아서 소리치겠지. 하지만 아니어도 괜찮다. 아내가 해주는 다른 음식도 충분히 맛있으니까. 누군가가 나를 위해 해준 밥을 먹을 수 있는 게 감사한 거니까. 음. (머뭇머뭇) 그래도 메시지는 하나 보내 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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