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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햔햔 Feb 22. 2021

"애 넷을 어떻게 키워요?"에 대한 공식 답변입니다.

네 남매 육아, 생각보다 할 만한 이유

글을 쓰다보면 아이가 넷이라는 일급비밀(?)을 발설하곤 한다. 그럴 때면 빠지지 않고 달리는 댓글이 있다.


"와~ 대단하네요. 애 넷을 어떻게 키워요?"


비현실적인 사실을 마주한 현실적인 궁금증. 누군가는 경외를 품고 누군가는 안도감을 품고 건네는 질문이다. 고마운 관심에 별 생각 없이(정확히는 생각할 겨를도 없이) 지내온 시간을 종종 돌아보게 됐다. 그리고 이렇게 현실 육아의 단면을 살짝 내비쳐 공식적인 답변을 내어 본다.


사실, 저희도 화들짝 놀라긴 했습니다


계획했던 것은 아니었다. 지금은 행복의 밑거름이 됐(다고 강하게 믿고 있)지만 넷째의 잉태 소식은 그야말로 신선한 충격이었다. 신선. 충격. 그래, 넷이다. 그 표현 말고 뭘 더 떠올릴 수 있을까.


다행스럽게도 나는 합리화에 능숙했고 아내는 현실 수긍의 달인이었다. 나는 계획성 없는 우리의 처신을 아직도 뜨거운 몸과 여전히 식지 않은 사랑이 가져다준 복이라고 장황하게 설명했고, 아내는 그 모든 것을 그대로 받아들였다. 죽이 잘 맞는 부부. 다시 생각해봐도 졸도할 궁합이다.


무계획과 넘쳤던 사랑으로 아내는 결혼 후 7년간 임신과 출산을 반복했다. 첫째가 4.06Kg, 우량아를 넘어선 거대아로 태어나며 어쩔 수 없이 제왕절개를 했으니, 무려 4번이나 배를 가른 거다. 정말 대단한 아내다. 넷째를 낳고 몇 달 후 정기 검진에서 의사 선생님이 했던 말이 아직도 생생하다.


"이런 말씀 드려도 될는지 모르겠습니다만... 다섯째도 가능하십니다."


그만큼 아내는 대단했고 고개 젓는 그녀 옆에서 "정말요?"라며 뭉클했던 나는 단순했다.

       

셋째와 넷째의 출산이 아빠에게 끼치는 영향 - 갈수록 커지는 걱정


아쉽게도 아이가 알아서 크지는 않더군요


부럽다고 말하면서도 안도감이 엿보이는 분들에게 "지금도 늦지 않았어요! 할 수 있어요!"라고 진심 반 농담 반 응원의 말을 건네면, 왼쪽 관자놀이에 커다란 물방울을 쏟아낼 것처럼 당황하며 하염없이 웃음을 흘린다. 괜찮다고 이미 늦었다고 나는 감당할 수 없노라고 얘기하며 손사래를 친다.


그 손사래에 하이파이브를 날리고픈 욕구를 참는 건, 그것이 당연한 반응이고 걱정이기 때문이다. 절반 정도는 팩트이기에, 하나 혹은 둘이면 충분하다는 그들의 확신에 토를 달 수가 없다. 내 아무리 "넷이 최상의 조합이에요"라고 해본들 그들에겐 혼자 가기 억울해 자신을 홀리려는 귀신의 소리와 다를 바 없을 거다.


적잖은 힘이 든다. 사실이다. 그런데 한 가지 분명히 하고 싶은 것은 넷이라고 네 배로 힘들지는 않다는 것이다. 이렇게 얘기하면 꼭 네 제곱으로 힘들다고 넘겨짚기도 하는데, No No. 수치로 정량화하긴 어렵지만 육제적인 면에서는 두 명의 아이를 돌볼 때와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이 아내와 나의 공통된 의견이다.


하나에서 둘이 되는 시점에 급격히 상승한 육아의 강도가 셋, 넷을 거치며 그리 커지지 않았다. 특히 아이가 둘이 되고부턴 돌아가면서 쉬는 것조차 허용되지 않았지만, 이때부턴 '한계 힘듦 효용의 법칙'이 작용하기 시작했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하루는 24시간이고 몸은 하나이기에 이미 모든 에너지를 쥐어짜 내고 있는 상황에서 물리적으로 더 힘들 수는 없었다. 의외로 감당할 수 없던 것은 네 아이의 돌봄이 아니라 네 아이를 모두 챙겨야 한다는 만족 불가능한 의무감이었다.

       

꽉 찬 공간만큼 차오르는 의무감 - 몸보다 힘든 것은 모두를 돌봐야 한다는 의무감이었다. ⓒ Pixabay


육아는 믿음과 적응이었습니다


아이가 하나일 때나 넷일 때나 우리는 변함없이 부모였고 몸은 언제나 바빴다. 그 경중에 얼마나 차이가 있을까. 아이의 수와는 무관하게, 부모는 자식을 위하고 챙기는 일에 대부분의 에너지를 쏟는다. 그리고 아이가 늘어가는 만큼 늘어나지 않는 속도와 에너지에 부모의 힘듦이 시작된다.


그래서 자연스레 '내려놓음'을 실천했다. 첫째의 밥숟갈을 내려놓고 셋째의 밥숟갈을 들었고 둘째의 밥숟갈을 내려놓고 넷째의 밥숟갈을 들었다. 모두를 동시에 챙길 수 없음을 깨달은 후, 믿고 맡길 것은 맡기고 포기할 것은 과감히 포기했다.


떼쓰며 우는 아이와의 실랑이보다 당장 화장실이 급한 아이가 먼저였고 장난감으로 인한 다툼은 지난한 잘잘못의 판단보다는 그 원흉인 '아빠 소유의' 장난감을 잠시 회수하는 것으로 종결지었다.


깨물면 모두 아플 손가락들에게 이것이 최선이라 생각했고 별수 없었던 대응이기도 했다. 모든 것에 우리의 손과 생각이 닿기엔 한계가 있었고 그 한계를 인정했다. 그런데 그 결과가 나쁘지 않았다.


떼쓰던 아이는 어느새 흥미를 잃고 인형을 만지작거렸고, 장난감 하나로 다퉜던 아이들은 함께 가지고 놀 수 있었던 장난감을 아쉬워하며 사이좋게 소꿉놀이를 했다. 그렇게 내려놓기를 반복하며 그 영역이 넓어지니 아이들에겐 스스로를 챙기는 능력이 생겼고 아내와 내겐 금쪽같은 여유가 생겨났다.


그렇게 모두가 적응해 갔다. 누군가 진두지휘한 것도 아니고 누구 하나가 잘하거나 희생한 것도 아니었다.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 서로가 서로의 사정을 봐준 것이 전부였다. 그래서 어떻게 키우냐는 질문에 사실 할 말이 별로 없다. 하나부터 넷까지 키워봤지만 다른 방식으로 키운 것이 아니라 조금씩 다른 상황을 지나왔을 뿐이다. '스스로 할 수 있다'는 믿음을 쌓고 '잘 할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을 애써 덜어 내면서...


다행히도 아이들이 잘 자라긴 합니다


본분을 까먹지 않는 아이들. 이런저런 사건 사고 속에서도 자라나는 것은 게을리하지 않았다. 어느새 기고 걷고 뛰는 아이들을 보며, 걱정스러움에 챙겨 주려고만 했던 지난날이 아쉽기도 하다. 하지만 이제는 걱정하지 않는다. 믿고 맡기는 것이 아이들에겐 경험이고 배움이란 것을 이제는 안다. 그렇게 커 나간다는 걸. 그리고 이렇게 컸다는 걸. 이제는 알 수 있다.

       

어떻게든 먹고살긴 하겠구나



넷이 아니었음 어쩔 뻔했을까 싶습니다.


오늘도 네 아이를 보며, 적정선과 만족을 되새긴다. 충분히 행복하다고, 이 이상 더 행복하면 안... 아니 행복할 순 없다고. (웃음)


걱정은 여전하다. 잘하고 있는 건가? 더 잘 할 수 있을까? 체력적으로나 경제적으로 안정되지 않은 내가 너무 낙관적으로만 생각하고 있는 건 아닌가? 하는 고민이 수시로 드나든다. 그래서 순간순간 불안해지는 것도 사실이다.  


지금의 고만고만한 행복이 계속될 수 있을지, 더 노력해야 하는 건 아닐지 도통 감이 오지 않을 때도 있다. 그래도 어쩌나. 잠에서 깨어 부스스한 모습으로 아빠에게 안기는 아이들을 품으면 걱정이나 불안보다 행복과 의지가 더 크게 솟아나는데. 배시시 웃는 아이와 내게 좋은 날이 기다리고 있다고 믿는 수밖에.

       

세상 가장 강한 요괴들 귀여움을 무기로 하는 아주 강한 요물들과 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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