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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햔햔 Jul 05. 2023

캐리어에 들어간 아이들. “우리도 데리고 가요!"

따뜻함으로 아이들의 순수함을 지켜주고 싶습니다.

얼마 전 아빠 회사 야유회에 극적으로 함께 하게 된 아이의 깜찍한 행동이 전국을 웃음바다로 만들었다. 아이다운 순수함에 예의바른 말투와 엉뚱함이 더해져 많은 이들이 미소 지었다.


나 역시, ‘나도 데려가 달라’는 부탁이 아닌 ‘아빠와 오빠도 못 가게 해 달라’는 아이의 진중한 요구에 빵 터졌다. 역시 아이는 아이구나하고 생각할 즈음, 회사 전무의 함께 가자는 말에 언제 그랬냐는 듯 해맑아지는 아이의 반응에 어느새 아빠 미소를 짓고 말았다.


여러 차례 영상을 돌려 보다 주인공 가족이 우리 집처럼 4 남매를 둔 가정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 어째서인지 내 마음에서 ‘역시’라는 공감이 솟아났다. 친구 같을 아빠의 모습과 다둥이를 둔 아빠의 고충이 눈앞에 그려졌다. 그리고 이 대박 사건 이외에도 다른 소소한 사건들로 매일이 당황스럽고 즐거울 아빠의 모습이 떠올랐다.


다른 아이를 보며 미소 짓고 있던 얼굴이 자연스레 내 아이들에게로 향했다. 자식 가진 부모라면 모두가 겪어 보았을 소소한 즐거움이 하나 둘 생각나며 입가가 저도 모르게 귀 쪽으로 향하고 있었다. 


우리도 데리고 가요!


코로나 전, 가끔 해외 출장이 잡힐 때면 아이들의 오해와 장난으로 인해 짐 싸는 시간이 두 배는 길어지곤 했다. 


그날도 캐리어가 나오면 어딘가 간다는 것을 아는 아이들이 우르르 모여들었다.


“아빠! 우리 어디가요?”

“아니... 아빠 회사 일로 출장 가~”

“출장이 어디에요?”

“으응... 그게... 다른 데로 일하러 가는 거야~”

“아빠는 일하러 출장가요?”

“응, 금방 다녀올게~”

“우리도 데리고 가야지요.”

“으응... 아빠 놀러가는 게 아니고 출장.... 얘... 얘들아?”



갑자기 비어 있는 캐리어에 들어가기 시작한 아이들. 그 모습에 당황스러우면서도 웃음 한 가득 머금고 사진을 찍었던 나. 


출장, 우리도 데리고 가요!


첫째의 장난기 섞인 단호한 요구에 안 된다고 말할 수 없었던 것은 장난인 줄 알면서도 정말로 데리고 가고 싶은 마음 때문이었다. 출장 전날 자기 전까지 아이들은 ‘우리도 가고 싶다.’, ‘조심해요.’, ‘잘 다녀와요.’, ‘도착하면 전화해요.’ 당부와 걱정을 한 가득 내놓았다.


그래서인지 그렇게 1주일 정도 떨어져 있다 만날 때면 애틋함이 남달랐다. 분명 떨어져서도 화상통화를 하고 가끔 카톡도 주고받았지만, 그간 있었던 일들을 이야기하는데 여념이 없었다. 그리고 이야기를 나누며 천천히 비운 캐리어에 다시 들어가 다음에는 꼭 같이 가겠다며 의지를 불태우는 모습은 여행의 피로를 싹 씻게 만들었다.


상상을 초월하는 아이들의 순수함


아이들의 행동과 말에 미소 짓게 되는 건 그들의 순수함 덕분이다. 연못에 삐쭉 솟아 오른 돌을 보고 돌이 가벼워서 물에 떠 있는 거라며 허세를 부리기도 하고, 흩날리는 먼지에 눈살을 찌푸릴 때면 작은 나비라며 손을 옴짝거려 찌푸린 인상을 둥글게 펴주기도 한다.


“햇딸 바다 간식 머거요.” (햇살 받아 간식 먹어요.)


첫째가 두 살 때 차 안으로 들어오는 햇살에 눈부셔 하면서도 손을 모아 햇살을 받으며 불평이 아닌 동시를 읊었을 땐, 어른이 되어 얼마나 별 것 아닌 걱정과 불만을 늘어놓는지를 새삼 깨닫게도 했다.


물론, 가끔은 너무 순수해서 할 말을 잃게 만들기도 한다. 이 순수함은 아이로선 당연하면서도 타인의 입장에서는 엄청난 무기가 되기도 하는데, 가령 치아 건강이 걱정되는 엄마의 잔소리에 이를 닦는 것이 뜻대로 되지 않는 아이의 이유 있는 항변이 그것이다.


“안쪽이 안 닦였잖아!”

“보여야 닦지!”

“.................”



당시 막 스스로 ‘치카’를 시작한 둘째의 이 말에 아내는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이 닦기의 중요함을 온몸으로 강조하려던 아내의 연기에도 제동이 걸렸다. 펴지는 미간. 올라가는 입 꼬리. 결국 새어나오는 한숨 섞인 웃음. 아직도 심각한 표정으로 엄마의 말을 기다리던 아이는 그렇게 신경전에서 승리했다.


공기 밥이라며 정말 공기만 들어 있는 밥그릇을 주며 많이 먹으라고 하는 것은 기본이고, 장사 놀이를 하면서 뭐든지 주문하라고 해놓고선 주스 주문이 들어 올 때까지 주문을 ‘요구’하기도 한다. 


정말이지 순수함은 뭔가 거스를 수 없는 강함을 가진다. 그리고 그 순수함에 어른들은 조금 부드러워지고 긍정적으로 변한다. 그렇게 따뜻함이 찾아온다.


야유회 에피소드에서 처음과 끝을 관통하는, 많은 사람들을 행복하게 했던 두 개의 키워드를 꼽자면 순수함과 따뜻함이 아닐까 싶다. 11살 아이의 전화를 기분 좋게 받아 준 따뜻함, 고민을 해결해 준 어른의 지혜에 곧바로 기분이 좋아진 아이의 순수함, 그리고 그런 아이일 수 있도록 노력했을 친구 같았던 아빠의 순수함과 따뜻함. 우리는 언제나 이런 순수한 따뜻함에 얼어 있던 마음이 녹아내린다.


나는 아빠로서 혹은 어른으로서 과연 따뜻함을 전달할 수 있는 사람인가. 단호히 그렇다고 말할 수 없는 처지에 쓴 웃음이 난다. 그래도 좋은 아빠가 되고자 노력한 것 같은데, 그 노력이 따뜻함의 전달이 아니라 세상에 널린 허들과 그것에 대한 무서움을 자꾸만 강조하고 있지는 않은지 생각해보게 된다.


따뜻함이 순수함에서 발현될 수 있다면 그 순수함을 지켜주고 싶다. 그리고 가능하다면 그들의 순수함에 동화되어 일말의 순수함이라도 되찾고 싶다. 그런 욕심에 아이들을 바라보니... 응? 얘들아? 언제 이렇게 컸니? 아무래도 시간이 더 지나기 전에 이 시간을 즐겨야 할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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