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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햔햔 Oct 15. 2021

좋은 결과를 얻(을 수도 있)는 한 가지 방법

[주식 투자 뒷담화 에세이] 비틀어 본 결과에 대한 생각



 미세먼지가 한창일 때, 미세 먼지 때문에 담배 피우기 겁난다는 지인의 걱정을 들었다. 뭔가 사리분별 못한 듯한 멘트에 잠시 어리둥절했지만, 폐암 경고 문구에도 끄떡없던 그였기에 흡연의 발길을 멈칫거리게 했던 미세먼지에 대한 두려움은 금연을 향한 고무적인 현상으로도 보였다. 고민 끝에 돌아서는 그. 가히 미세먼지의 존재는 막강했다. 몸을 돌려 자리로 간 그는 뭔가를 주섬주섬 챙기더니, 이제는 지겨울 법도 한 '담배를 끊던지 해야지.'라는 멘트를 남기고 KF94 마스크를 콧등에 누르며 흡연의 길 위에 올랐다. 


 나는 한 때, 변비로 심하게 고생한 적이 있다. 이때 나는 살기위해(?) 온갖 노력을 다했다. 키위가 변비에 좋다는 얘기에 하루에 키위를 4개씩 집어 삼켰고 30분씩 공을 들여 운동을 했으며 살아서 장까지 간다는 1000억 마리의 유산균들을 하루 세 번 사투의 ‘장’으로 진격시켰다. 하지만 그런 노력도 허사. 배는 갈수록 더부룩해졌고 변과의 대치는 길어져만 갔다. 


 얼굴이 노랗다 못해 검어지던 중, 글 하나를 읽게 됐다. ‘차가운 물을 마시는 건, 장 속에 냉장고를 넣는 거예요. 따뜻한 물을 마시세요.’ 그 글에는 변비 해결을 위한 각종 팁과 함께 차가운 물은 절대 먹지 말라는 경고가 있었다. 한 여름에 더운 물이라니... 살고 싶은 나는 시키는 대로 했고 땀과 함께 묵은 변을 배출했다. 내 생에 가장 더러우면서도 고귀한 원초적 성취감이었다.


가슴시린 투자 실패담을 쓰는 이유


 우리는 대부분의 경우 좋은 것을 해야 좋아지고 대단한 무언가를 해야만 큰 것을 이룰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수많은 좋은 것들이 변변찮을 때, 하지 않으면 좋을 한 가지가 더 큰 효과를 발휘했다. 책 <돈의 심리학>에서는 이렇게 말한다. 좋은 결과를 위해 대단한 것을 할 필요는 없다고, 크게 망치지만 않는다면 괜찮은 결과를 얻을 수 있다고 말이다. 이 말이 내게는 살아 있는 한 언제고 좋아질 수 있다는 얘기로도 들렸다.


 내 주식 투자 이야기엔 성공담이 별로 없다. 대부분 실패담이고 소 뒷걸음치다 밞은 쥐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성공 투자, 필승 전략, 노하우 등은 다른 많은 서적에 아주 잘 설명되어 있기에, 나는 그저 그들과는 다른 결의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해보니 이렇더라는 것과 나도 별 수 없었다는 것과 그래도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얘기들. 


 대단한 이코노미스트도 아니고 경제학자도 아닌, 게다가 주식으로 크게 성공한 것도 아닌 평범한 직장인의 주식 투자가 대단할 리 없다. 눈치 챘겠지만 아는 것도 많지 않아 정보도 변변찮다. 그런 이유로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도 아닌 내 행색을 살피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해 보인다. 


 그런데 어쩌다보니 경험이란 게 생겨 버렸다. 너무나 아쉽게도 대다수가 실패의 경험이다. 그러다 보니 뭘 해야 하는 지에 대해선 잘 모르지만, 뭘 하면 안 되는지는 좀 알게 됐다. 하지 않는 것만으로도 좋아질 수 있었던 경험. 그런 이야기를 이렇게 떠들고 있다.


뜻하지 않은 결과를 위한 위로


 워런버핏 할아버지는 말했다. 지금의 성공은 대부분 우연의 연속들이 가져다 준 행운이라고. 건강하게 태어난 것도 행운이고 출생 지역이 미국이란 것도 행운이며 좋은 선택을 할 수 있었던 삶의 여러 여건도 결코 한 개인의 노력만으로 이룰 수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고 말이다. 


 한다고 했는데 좋지 않은 결과에 우울한 사람에게 이만한 위로가 또 있을까. 그래서 운이 없었다고 생각하고 여전히 나만의 투자 레시피를 만들어보고 있다. 좋다는 것만 잔뜩 넣어 이상하게 만들지 않고 나쁜 것들은 뺀 밋밋하지만 담백한 음식. 거기에 ‘그나마 이게 어디냐’는 다행 한 스푼, ‘주식을 할 수 있다.’는 행운 한 스푼, ‘실패해도 살 수는 있다.’는 감사 한 스푼을 보태며 약간의 감칠맛을 내고 있다.


 메멘토모리. ‘죽음을 기억하라.’는 이 라틴어의 가르침을 종종 생각한다. 주식 투자하면서 무슨 죽음까지 들먹이냐고 할지 모르지만, 주식으로 마음이 심란한 날, 죽음을 가져다 놓는 순간 많은 것이 차분해진다. 그리고 분명해진다. 죽음의 문턱에서 시도하지 않았던 많은 것들에 대한 미련을 줄이고자 하는 이런 생각이, 그를 위해 하지 않아야 할 것들을 포기할 용기를 주기 때문이다.


 1시간 넘게 화장실 변기에 앉아 사투를 벌이던 그때, 엉덩이가 막힌 체 반나체의 모습으로 발견되기만을 바라지 않았던 그때, 주식과 회사 일과 인간관계는 그저 그런 일이 되고 말았다. 그냥 싸고 싶다는 원초적 욕구만이, 그러니까 살고 싶다는 순수한 마음만이 있었다. 


 당시의 순수한 상태를 되내며 이 글을 썼다. 부디 나의 순수한 호소가 나쁜 것을 하지 않을 용기를 내는데 작은 힘이 되길 바란다. 당신의 금연과 쾌변과 성투를 기원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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