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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햔햔 Jan 08. 2024

슬릭백은 마스터하진 못했지만...

올 해는 어떤 꿈을 남길 것인가.



무릎 때문에 병원을 다녀왔다. 이게 다 슬릭백과 스모크챌린지 때문이다. 트렌드의 힘은 무섭다. 보고 싶지 않아도 어느 매체에선가는 "이게 요즘 트렌드야!" 하고 눈앞에 들이민다. 거부할 힘이 없다. 그리고 서서히 빠져든다. 


귀가 얇은 만큼 눈도 얇은지라 한 번 빠져들면 그대로 잠수다. 몇 시간을 앉아서 인스타 릴스와 유튜브 쇼츠를 본다. 목과 허리가 왜 아픈지 알면서 불평하는 것도 제법 능청스러워졌다.

             

▲ 슬릭백 챌린지와 스모크 챌린지 공중부양으로 전 세계 2억뷰 이상 조회수를 달성한 이효철 학생과 스모크 챌린지를 시작하게 만든 바다리 댄서 ⓒ tvN / M.net


한 날 도저히 이래선 안 되겠다 싶어, 유튜브 쇼츠를 뜨지 않게 하는 방법을 찾아보기로 했다. 영상에 마음을 뺏기지 않겠다고 단단히 마음을 다잡고 유튜브 설정을 뒤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한 시간을 그대로 영상 시청에 바치고 말았다. 못 산다. 정말...


그리고 그때, 스모크 챌린지를 보고 말았다. 스트릿 우먼 파이터(스우파2)에서 나왔던 댄스 경연의 한 장면을 많은 이들이 따라하고 있었다.


'뭐지? 뭐가 이렇게 강렬하지? 좀 멋진데?'


그런 생각이 이내 내 몸을 움직였다. 뻣뻣. 이상했다. 정말 몸에서 뻣뻣이라는 소리가 났다. 기분 탓인 줄 알았다. 시간이 지나서야 안 쓰던 몸을 쓰면서 생겨난 몸의 부자연스러운 마찰음이라는 것을 알았다.


과했다, 욕심이었다

             

▲  급작스런 과사용으로 인해 무릎통증이 생겼다. ⓒ Pixabay


그렇게 얼마 전 병원을 다녀왔다. 여러 각도에서 찍은 엑스레이를 보고 병원에서는 이상이 없다고 했다. 자꾸만 무릎이 헐렁거리고 찌릿한 느낌이 들었지만 우선은 안도했다. 통증이 계속되면 MRI로 정밀 검사를 해보아야 한다는데, 곰곰 생각해보니 '무리'가 결국 병을 만들었지 싶었다.


스모크 챌린지 이전에 빠져있던 영상이 떠올랐다. 온 세계를 뒤흔든 슬릭백 열풍. 초전도체좌라고 불리며 순식간에 전 세계적으로 유명해진 한 학생의 영상을 보고 너무 신기해서 따라했던 것이 시작이었다.


여기서는 슬릭백 챌린지. 저기서는 스모크 챌린지. 홀린 듯 따라했다. 해도 해도 늘지 않는 통에 힘만 들고 성취감은 없었지만, 그래도 포기하지 않는 끈기 덕분에 보람... 대신에 무릎 통증을 얻었다. 결국은 해내고 마는 모습을 상상하며 마음을 부풀렸는데 무릎도 같이 부풀어 버렸다.


꾸준히 관심을 갖고 시도하고 노력하는 것은 멋진 일이다. 그런데 몸까지 다쳐가며 이렇게 '욕심'내는 것은 곤란하다. 뭔가를 해도 내 상태를 알아가며 하는 것. 그게 중년이 된 사람으로서 가질 수 있는 현명한 자세일 텐데, 급해도 너무 급했다. 이왕 늦은 김에 조금 더 여유롭게 갈 필요가 있었다.


그렇다고 쉽게 포기하지는 않는다. 중년 꼰대의 고집은 이럴 때 필요하다. 오늘도 화장실 가는 길에 공중부양을 시도하고, 거울 앞에서 스모크 챌린지의 중간 부분을 반복해서 따라해 본다. 이전처럼 무리하진 않는다. 반드시 해내겠다는 굳은 각오는 부풀었던 무릎에 밀려 이미 납작해졌다. 이제는 그냥 즐기고 있다.


덩실덩실. 가볍게 공중에 떠있어야 하는 발이 자꾸만 하늘로 솟구친다. 신비랑은 거리가 먼 그냥 신난 사람 같다. 덩실덩실. 마음은 이미 여느 아이돌에 뒤지지 않는 춤을 구사하고 있는데, 거울에 비친 몸은 어째 어릴 적 봤던 이모님들의 몸놀림이다. 흥겹고 구수하다. 금년 중 마스터하겠다는 계획은 물 건너 지고 있는 헌 해를 따라 물 건너갔다. 


후회와 다짐의 교차점


또 한 해가 지나가고 새해가 왔다. 이루고자 하는 일은 대다수 이뤄지지 않았고 많은 경우 시도조차 하지 못했다. 그래도 또 계획하고 다짐한다. 끝날 듯 끝나지 않는 뫼비우스의 띠는 그렇게 다시 이어진다. 


반복되는 뫼비우스의 띠에서도 변화는 있다. 후회와 다짐이 교차하는 횟수가 늘어날수록 조금씩 유연해짐을 느낀다. 인생이 뜻대로 되지 않는 게 이제는 익숙하다. 자책하거나 화를 내기보다 그럴 수 있음을 받아들인다. 그리고 생각보다 괜찮았던, 그리고 다행이었던 지난날을 떠올리며 감사할 줄도 알게 됐다. 


침침해지는 눈 때문에 불평이 나올 때면 눈썹 아래쪽 상처를 만지며 실명할 뻔했던 군 복무 시절의 사고를 떠올린다. 뭔가 이뤄 놓은 게 없다는 자책이 들 때면 산적해 있는 회사 업무와 한시도 조용할 날이 없는 네 아이를 떠올린다. 불만족을 다행으로 만드는 잠깐의 노력이 이제는 익숙하다. 


누구나 많은 것을 꿈꾼다. 그리고 많은 경우, 꿈은 꿈으로 남고 현실이 다가온다. 마주한 현실은 꿈처럼 따뜻하지도 살갑지도 않다. 그럼에도 그런 현실을 마주하고 살아 갈 수 있는 것은 뒤에 남겨 두었던 꿈 덕분이다.


과학자가 되겠다던 꿈 덕분에 공부를 시작했고, 가수가 되고 싶어 연습했던 춤과 노래 덕분에 흥을 추스르고 터트릴 줄 알게 됐다. 소설 속 멋졌던 해커가 되고 싶었기에 SW개발을 업으로 삼을 수 있었고, 카사노바를 동경했던 철없던 시절이 있었기에 과감한 추파로 지금의 아내를 얻을 수 있었다. 


꿈은 이루어지지 않았지만 참으로 고맙고 다행인 과정이었다. 여섯 가족이 머리를 맞대고 슬릭백을 연구하고 서로의 덩실거림을 평가하며 웃을 수 있는 것이 모두 이 과정 덕분이다. 


올 한 해는 또 어떤 꿈을 남길 것인가. 이뤄지면 더할 나위 없겠지만, 이뤄지지 않아도 내 삶을 영글게 할 꿈을 다시 한 번 꿀 시간이다. 챌린지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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