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주온 Apr 17. 2020

2020년 3월 13일에 쓴 글

녹색당 당원들께

2020년 3월 13일, 민주당의 위성정당인 선거연합정당 참여에 반대하며, 그러한 참여여부를 결정하는 방식으로서 총투표 제안에 반대하며, 총투표 제안과 함께 선거연합 참여를 제안한 선본의 입장에 반대하며 썼던 글입니다.

21대 총선 결과가 나온 다음날, 그 전부터 내내 괴로웠지만 어쩔 수 없이 더 괴로웠던 날, 세월호를 기억하는 날, 우리는 2020년의 초입에 어떤 시간을 지나온 것일까. 무엇을 배웠던 것일까 자문하는 하루를 보냈습니다. 많은 이들이 떠나는 모습을 지켜보았어요. 내 마음도 어디론가 떠나고 싶어했고요. 일단은, 지금은, 영화 <벌새>의 영지선생님이 말했듯이, 내 마음이 그렇구나, 하고 들여다보며 여기에 존재하고 있을 뿐입니다. 은희의 질문은 선생님도 스스로가 싫어질 때가 있냐는 것이었지요.

온 진심을 담아 썼던 글이기에 여기에도 기록해 둡니다. 이 시기의 괴로움을 기억하고자 합니다. 괴로워만 해서는 안 되었던 거구나 하는 반성까지도요. 그래도 여전히 괴롭네요. 이때 얼굴에 올라온 열은 양 볼에 자리잡아 내려올 생각을 안 하고요.

______

당원 여러분, 안녕하세요. 저는 지난 20대 총선 녹색당 비례후보로 활동했으며, 4기 공동운영위원장을 맡았던 김주온이라고 합니다.  다가오는 21대 총선에서 녹색당의 이름과 색깔, 가치를 지키자고 제안드리고자 이 글을 씁니다.

숨어든 문장들

얼마 전만 해도 21대 총선을 한 달 앞둔 이 시기에 '선거연합'이란 것을 두고 고민하게 될 줄 꿈에도 몰랐습니다. 하루하루가 한달 같은 요즘, 그때가 까마득한 과거처럼 느껴지네요. 그런 뒤틀린 선택지를 고려조차 안 했을 때와, 내 의사와 상관없이 귓가에 불어넣어진 누군가의 속삭임에 모든 논의가 붙들려버린 현재의 차이가 이렇게 클 줄 몰랐습니다.

3월 11일, 카카오톡 오픈채팅방을 통해 긴급히 열려 다음날 새벽까지 진행된 전운위에서, 선거연합 참여여부에 대한 총투표를 결정했습니다. 회의록 및 총투표 공지를 위한 겨우 하루의 시간을 두고, 당규를 바꿔가며, 단 한차례의 공식 토론회도 없이 3월 13일부터 당원 총투표를 시작한다는 문자를 받았습니다. 온갖 감정이 밀려들어 처음엔 말문이 막혔다가 늦었지만 뭐라도 말하고 싶어졌습니다.

마음이 너무나 복잡합니다. 올라온 총투표 제안문의 작성자가 선대본임을 믿을 수가 없으면서도, 반대 의견을 내는 게 일하려는 사람들의 발목을 잡는 건 아닌지 고민도 됐습니다. 파악하고 이해하고 고민하고 정리할 시간이 필요한데, 시간이 없다는 것에 좌절감이 듭니다.

저만 이런 혼란을 느끼는 건 아닌 것 같습니다. 말을 하고 싶어도, 말을 아끼는 이들을 봅니다. 당원들의 허탈감이 당을 내부로부터 잠식하는 게 아닌지 걱정이 됩니다. 이 모든 혼란 속 소리없이 마음을 거두는 당원들을 바라보면 어찌할 바를 모르겠습니다.

지난 전운위 결과 발표된 입장문 안에는 역시 각기 다른 마음이 담겨있었나 봅니다. 그런 모호한 입장문을 해석하며 다투던 시간에 차라리 선대본의 명확한 입장을 두고, 총투표 전에 조금이라도 쟁점이 명확한 토론을 할 수 있었다면 어땠을까 하고 부질없는 가정을 하게 되네요.

도대체 무엇을 위해 이렇게 하는 것일까요? 저는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총투표 제안문을 한참 들여다보았습니다. 선대본에서 올린 제안문에 드러난 취지는 연속된 두 문단에 담겨 있었습니다.

"창당 이후 8년 동안 녹색당은 최선을 다했음에도 불구하고, 기울어진 선거제도 하에서 원내 진입이 어려웠습니다. 선거연합정당은 녹색당이 지난 8년동안 선거제도 개혁을 위해 투쟁하면서 만들어진 기회라고 생각합니다. 정치는 자신들이 대변할 이들을 위해 몫을 찾아오는 과정입니다. 녹색당은 당당히 녹색당의 지분을 찾아올 것입니다."

그리고

"기후위기와 심화되는 불평등, 코로나19 같은 감염병이 세계를 비상사태로 몰아가고 있습니다. 국회에 급진적인 정치, 급진적인 대안이 절박합니다. 21대 총선에서 녹색당이 반드시 국회로 들어가야 합니다. 선대본은 선거연합정당의 첫번째 의제를 기후위기 대응으로 만들겠습니다. 절체절명의 기후위기비상 상황에 시급한 대응을 호소하는 녹색당 국회의원을 만들겠습니다."

동의할 수 없는 문장들이 못된 도둑처럼 웅크리고 있네요. 그들을 쫓아내 보았습니다.

"창당 이후 8년 동안 녹색당은 최선을 다했음에도 불구하고, 기울어진 선거제도 하에서 원내 진입이 어려웠습니다. 정치는 자신들이 대변할 이들을 위해 몫을 찾아오는 과정입니다. 녹색당은 당당히 녹색당의 지분을 찾아올 것입니다."

"기후위기와 심화되는 불평등, 코로나19 같은 감염병이 세계를 비상사태로 몰아가고 있습니다. 국회에 급진적인 정치, 급진적인 대안이 절박합니다. 21대 총선에서 녹색당이 반드시 국회로 들어가야 합니다. 절체절명의 기후위기비상 상황에 시급한 대응을 호소하는 녹색당 국회의원을 만들겠습니다."

어색함이 느껴지시나요? 저에겐 이쪽이 더 자연스럽습니다. 서로를 긴밀히 지탱해주는 문장들이 아니었단 점이 드러납니다.

시간의 문제

지금까지 우리의 스텝은 한걸음 한걸음이 어색하고, 실수가 잦아 마치 안개 속을 눈감고 달려가는 듯 했습니다. 물론 당연히 실수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실수가, 제대로 해보려다가 생겨난 실수인지, 무언가를 성급히 처리하려다 생겨난 실수인지는 구분해야하지 않을까요?

또한 기후위기 대응. 그것은 지구상에 살아가는 모든 생명들에게 가장 시급한 문제입니다. 어떤 제안에도, 어떤 결정에도 가져다 붙일 수 있는 명분이고 당위가 될 수도 있겠지요. 그렇다고 정말로 그렇게 활용되는 모습을 바라보자니 이번엔 기가 막힙니다. 기후위기 대응이 시급하다고 해서, 소화도 되지 않는 논의를 당원들 목구멍에 꾸역꾸역 집어넣는 느낌입니다. 저는 이미 체한 것 같습니다.

기후위기가 절박할수록, 시간 앞에 겸허하고 정직해야 하지 않을까요? 그게 진정으로 용기있는 태도라고 생각합니다. 기후위기는 당연히 시각을 다투는 문제, 생사를 가르는 절박함의 문제, 해결을 위해 정치가 근본적으로 바뀌어야 하는 문제이지만, 모두가 진솔하게 자기 욕망을 마주하지 않으면 결코 한발짝도 해결해나갈 수 없는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그렇기에 우리가 어떻게 정치할 것인지와 기후위기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지는 서로 이어져 있다고 생각합니다. 녹색당이 녹색당답게 기후위기에 대응할 수 있는 태도와 방법이 무엇인지 토론하면 좋겠습니다.

그간 녹색당이 100년 정당을 말한 이유는 한가롭게 쉬엄쉬엄 가자는 뜻이 아닙니다. 기후위기와 같이 해결해야할 문제의 기나긴 시간성과 정치/제도/행정이 작동하는 시간성 사이의 어긋남을 고려한 것입니다. 우리의 강령이 그리는 세상에서 단 하루라도 살아보기까지 오래 걸리겠지만, 매순간 치열하되 지치지 말라는 격려와 같습니다.

당의 실력과 역량 역시 시간 위에 정직하게 쌓이고 있습니다. 최근의 당내 갈등으로 드러난 것이 우리의 실력 아닙니까? 선거연합 정당에 참여하면, 이 구멍은 알아서 메워집니까?

지구의 미래가 당연하지 않은 것처럼, 녹색당의 미래도 당연하지 않습니다. 기존에 무수히 실패해온 정치 전략에 합세하는 건, 수명이 끝난 석탄화력발전소의 땔감이 되는 것과 다름 없습니다. 과거의 잘못을 밟지 않은 곳에서, 녹색당이 녹색당만의 역할을 해야 녹색당의 시간이 옵니다. 시간을 건너뛰려는 욕심 때문에 제자리에 멈춰선 것도 아닌, 시계바늘을 한참을 뒤로 돌릴 돌이킬 수 없는 결정을 내리지 맙시다.

"여러분이 꿈꾸던 정치를 실현할 정당의 이름은 무엇입니까"

녹색당 창당 8주년을 기념하며 공개된 영상 첫머리에 들려온 외침이었습니다.
녹색당이란 이름에는 무엇이 달려있을까요? 실질적 효용 없는 명분에 불과하나요?

아닙니다. 녹색당은 단순한 이름이 아닙니다. 녹색당의 이름은 그 자체로 '당색'이며 '가치'입니다. 그 당색은 일제히 맞춰입는 잠바색에 그칠 게 아니고, 그 가치는 한 나라의 정치체제를 넘어 새로운 문명을 만들자 제안할 만큼 급진적입니다. 하루 단위로 결정되고, 통보되고, 집행되는 속도로 밀어붙여 3월 16일에 선관위에 등록될 당명에 끼워넣어지기 위한 '녹색'이 아닙니다(연합정당의 이름에 관한 선대본 공지글 참고).

녹색당이 이름을 되찾기 위해 싸워온 시간이 우스운 것이었던가요? 우리는 그 여정을 단순한 '에피소드'로 말해오지 않았습니다. 2012년 창당 직후 치른 총선에서 정당등록이 취소되고, 꾸준한 활동과 지난한 헌법소원의 시간을 견뎌 다시 '녹색당'이 되었습니다. 여타의 구태 정당들이 모든 것은 그대로 둔 채 반성과 성찰을 대신해 이름을 바꿔댈 때, 녹색당은 떳떳했습니다. 혼탁한 한국 정치 속 변함없는 녹색당의 이름은 푸르른 등대빛이었고, 숨막히는 세상의 마지막 비상구였고, 넘어져도 다칠 걱정 없이 달려안길 수 있는 푸르른 들판이었습니다.

자기 이름을 배신하는 것이 자신다운 길일까요? 미래를 지킬 수 있는 길일까요? 녹색당의 색과 이름을 통해 미래로 나아가기 위해서,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요? 이런 방식의 선거연합은 결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지름길로 가고 싶겠지만, 아쉽게도 녹색당 앞에 그런 길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혹여 지름길처럼 보이는 길이 있다면 무엇이 나로 하여금 갈 길을 헷갈리게 하는지 돌아보면 좋겠습니다.

(선거연합정당에 참여해도 비례후보들만 탈당할 뿐, 녹색당은 여전히 녹색당이라는 주장도 보았습니다. 녹색당을 대표하기로 약속해 선출한 후보들인데, 이들이 어디 봄소풍이라도 가는 건가요? 팀을 분열시키는 더 이상의 기만은 그만 보고 싶습니다.)

2020년의 숫자를 보고 싶습니다

창당 이래 녹색당은 네 번의 선거에서 후보를 내왔습니다. 상황과 자원은 언제나 열악했지만, 최소한 서로를 지지하며, 서로에게 감사하며, 일시적 해방구로서의 축제 같은 선거를 만들어 왔습니다. 그 과정 자체가 한국 정치의 풍경을 바꿔왔고, 정치에 대한 시민들의 상상력을 넓혀왔으며, 녹색당의 살아있는 정치 시간이었다고 감히 말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오롯이 '녹색당'의 이름으로 다음과 같은 숫자를 남겼습니다.

2012년 총선 10만 3811.

2014년 지선 17만 747.(광역비례 후보를 내지못한 다섯 곳 제외한 열두 곳 광역비례득표의 합.)

2016년 총선 18만 2,301.

2018년 지선 17만 5988. (광역비례 후보를 내지못한 두 곳 제외한 열다섯 곳 광역비례득표의 합)

저에겐 이 숫자가 단순히 우리가 원내진입을 할 수 있는지 없는지, 모 아니면 도를 가르는 것으로 보이지 않습니다. 표 이전에 사람이 있습니다. 기다란 투표용지 아래쪽에 자리한 녹색당 이름 세 글자를 기어이 찾아내어 찍은 사람들이자, 지금 나와 함께 여기서 이 시대를 살아가는, 녹색당을 지지해준 동료 시민들의 수입니다.

한국사회, 나아가 지구의 모든 문제를 인간이 만들어놓은 정치체제 안에서 한 번에 풀 수는 없습니다. 그렇기에 어떤 마음과 신념을 품은 사람들이 한 사회에 얼마나 존재하는가. 그것이 정치 체제, 선거제도, 정치공학적 평가 이전에 우리에게 어떤 미래가 가능할지 알려주는 직접적인 바로미터이자, 저에게는 희망 그 자체였던 것 같습니다. 2020년의 투표용지에서 녹색당이 사라져, 오늘의 희망이 얼마나 나아가고 있는지 확인할 수 없는 캄캄한 선거가 되지 않길 온 마음으로 바랍니다.


기후위기 시대, 재난과 일상이 마구 뒤엉키는 이 혼란스러운 시기에, 우리는 우리의 이름을 지킴으로써 빛날 것입니다. 모든 것이 격변하며 갈피를 잡기 어려운 마음에 나아갈 길을 제시하며 닻을 내려줄 것입니다. 지난 8년 동안, 녹색당의 고유한 이름을 부르며 조용하지만 묵직한 걸음으로 다가와준 1만 당원들과 함께, 눈길을 더 멀리 두고 오래 걸을 방향을 고민하면 좋겠습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녹색당이라는 이름에 시간이 켜켜이 쌓이고 있음을 잊지 맙시다. 세계 곳곳에 존재하는 같은 이름의 동지들을 기억합시다. 동료시민들에게 제대로 불려 마땅한 이름, 녹색당을 지킵시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2018년 여름휴가를 다녀오며 쓴 편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