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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주온 Feb 28. 2022

동네 카페에 다녀와서


은평으로 이사 온 지 2년 만에 처음으로 은평녹색당 모임에 나갔다. 2020년 초에 막 이사 왔을 당시는 졸업 논문을 쓰고 있는 데다 코로나가 시작되어 여타 모임에 일체 나가지 않았다. 그 사이 21대 총선이 치러졌고, 거대 양당의 위성정당 꼼수로 애써 이뤄낸 선거제도 개혁이 도루묵이 되어버렸다. 그 상황에서 ‘선거연합’이라는 갑작스러운 패가 녹색당을 마구 흔들었다. 동시에 당내 리더들 간의 갈등, 성폭력 사건까지 연달아 공론화되면서 실망한 당원들이 우수수 당을 떠났다. 녹색당이 활동하기에 쉬운 시기란 결코 없었다고 할 수 있지만, 이때의 녹색당은 풍랑을 만난 배처럼 휩쓸리는 대로 출렁이는 아수라장 같았다.

나는 전임 대표라는 상징성 하나 믿고 문제제기를 위한 호소문 따위를 밤새 어 올렸다. 무용한  같았다. 모든 것이 촉박하게 돌아가고, 나의 논문 마감은 다가오고 사람들이 상처받고 떠나는 것을 지켜보면서도   있는  없었다. 그동안에는 당과 나의 정치적 야심 간에 모순이 없다고 믿어왔는데(이 또한 이미 오만한 생각이었을지도),  시기를 거치며 깊은 좌절감을 느끼고서  또한 표류하는 조각배가 되어버렸다. 정치란, 정당이란 내게 무엇이었을까. 사회를 변화시키고 싶고,  일은 결코 혼자   없기에 우리는 함께여야 한다는 믿음에 의심이 없었는데, 어쩌면 내가 혼자서는 아무것도   없는 겁쟁이라 조직이나 동료에 집착하는  아닐까 하는 의구심도 생겨났다.  마음을 들킬까 무서워서 졸업하고 나서도 전처럼 당원들이 있는 곳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못했다.  

은평은 녹색당 창당 초기부터 열렬히 활동하는 당원들이 많은 지역이었다. 창당 후 치렀던 두 번의 지방선거에 모두 후보를 냈다(녹색당은 지역구 후보 자체가 얼마 없기 때문에 대단한 일이다). 지역 공동체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며 지역과 이 낯설고 작은 당을 연결해주는 이들도 많았다. 당에 대한 헌신도 기대도 컸고 그만큼 실망도 컸기에, 2020년 봄에 이들 대부분 상처를 받고 활동을 그만뒀다. 그 상황을 알고 있기에, 어떤 잔해가 남아있을지 확인하는 게 겁이 났기에 다가오는 6월 지방선거에 은평녹색당에서 후보자를 낸다는 걸 알고 있었음에도 발을 들여놓지 못했다. 사람들이 떠난 자리에 누군가 남아서 다시 사람들을 초대하고, 작은 활동부터 시작하려 하고, 함께 막막함을 견디려 애쓰고 있다는 걸 알수록 부채감이 똬리를 틀었다. 그래도 눈을 질끈 감았다. 나는 조금 거리를 두고 다음을 준비할 뿐이라고 생각하면서. ​


그런데 신기하게도 이런 내 마음을 움직인 건 호기심이었다. 은평녹색당 후보자인 유리님이 쓴 책의 출판기념회 홍보물​을 인스타그램에서 보았다. 그런데 그 장소는 내가 아는 곳이었다. 근처에서 디카페인 커피를 마실 수 있는 몇 안 되는 곳이라 기억해두었던 곳. 언젠가 혼자 카페의 한쪽 벽에 기대앉아서 실내를 둘러보다가, 아 이런 곳에서 녹색당원들이 북적이는 파티를 했으면 좋겠다고 혼자 생각했던 곳. 한쪽 벽에는 커다란 스크린이 있고, 큰 테이블도 있는 곳. 베를린에 사는 한국 녹색당 당원들과 모임을 했던 아늑하고 차분하지만 경쾌한 분위기를 만들어주던 공간을 떠올리게 하는 곳. 그렇다고 엄청난 공간인가 하면 그렇지도 않은데, 작은 골목 안의 평범한 카페인데, 그런 생각을 한 적이 있는 곳이라는 게 내게는 특별했다.    ​


녹색당 행사를 했으면 했던 바로 그 카페에서 출판기념회를 한다는 게 내게는 시그널처럼 느껴졌다. 그래서 갔다. 심지어 미적대다가 늦었다. 행사는 이미 중반부를 지나고 있었다. 동네에 사는 사람들이 각자가 이 동네를 어떻게 바라보는지 이야기했다. 트랜스젠더들이 대기실에 잔뜩 모여 앉은 모습이 아주 자연스러운 살림의료생협이 있고, 정신장애인과 발달장애인들이 함께 산책하며 인사 나누는 불광천과 맛있는 지역 빵집과 도서관 마을이 있는 곳 등등 개발과 집값으로만 지역을 바라보는 이들 눈에는 보이지 않을 풍경들을 말했다. ​


뭉텅이로 보면 세상이 나빠지기만 하는 것 같지만, 결코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안다. 이 사실을 이번 주에는 전쟁 반대를 외치는 러시아 사람들을 보면서 생각했다. 이런 세상에서 다른 목소리를 내는 사람들이 있고 우리 곁에도 바로 그런 사람들이 있다는 것. 언제나 그것이 가장 경이로운 일이고, 그들 덕분에 세상이 변화하고 있음에 감사하며 함께하고 싶은 마음을 일깨우는 순간이 소중하다(다만 어떻게 하면 그 목소리와 그들의 염원을 더 크게 할 수 있을지, 대다수의 마음을 얻어 곁에 함께 서게 할 것인지 끝없는 고민이 필요하지만). 그래서 이 자리가 꼭 내가 상상했던 것처럼 좋았다. 수어로 ‘녹색 바람'을 보여주는 후보와 그 후보와 함께하기 위해 아무것도 없다시피 한 캠프에 모인 사람들의 말을 들었다. 장애가 있는 반려인을 돌보며 사는 서한영교님이 자신에게 왜 정치가 중요한지 이야기하며 이렇게 말했다.​


“오늘 우리는 한 번도 상처받지 않은 것처럼 이 자리에 모였습니다. 오늘 우리는 한 번도 좌절하지 않았던 것처럼 이 자리에 모였습니다.”  ​


감동적인 이야기인데, 점멸하듯 전기가 들락날락하는 마이크 때문에 한숨을 쉬었다. 목소리가 오락가락하는 게 꼭 우리 상황 같구나 하면서. 그때 용산구에서 녹색당 후보로 출마하는 제민님이 마이크를 내려놓고 육성으로 이어 말했다. ​


“우리는 이미 여러 번 상처받았고 좌절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분명한 자긍심을 갖고 여기 다시 모였다는 것도 기억했으면 해요.”

나는 오늘 이 말들 덕분에 치유받았다. 구겨진 마음이 펴지고, 새로운 빛이 조금 들었다.   

“우리는 ‘녹색당’이라는 작은 씨앗입니다. 이 씨앗을 싹 틔워 인류가 지구별의 뭇 생명들과 춤추고 노래하는 초록빛 세상을 만들려고 합니다.”​


오늘 발언 중 또다시 인용된 녹색당 강령의 첫 부분을 들으며 생각했다. 녹색당이라는 씨앗이 매번 척박한 땅에 떨어져 말라죽지만은 않기를, 그중 어떤 씨앗은 좋은 흙을 만나 뿌리를 내리고 발아하고 가지와 잎을 내고 무럭무럭 자라기를, 매 순간이 그런 과정이기를 기도하는 마음으로 함께한다. 이 마음이 사랑이 아니면 뭘까? 내 마음을 순식간에 충만하게 만들기도, 갈가리 찢을 수도 있는 그 감정. 이걸 확인할 때마다 조금 울고 싶어진다. 나는 이 감정을 타고 정동으로 나아가야 한다. 내 마음뿐만 아니라, 더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게 하는 힘으로 전환하고 싶다.

어제저녁에 온라인으로 열린 재팬 필름 페스티벌에서 <여름 영화를 타고 It's a Summer Film​>라는 영화를 봤다. 사무라이 영화를 만들고 싶어하는 영화부 여고생 ‘맨발'과 친구들의 이야기다. 영화를 사랑하는 마음은 곧 영화의 과거, 현재, 미래와 대면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맨발'은 자신에게 사무라이 영화란 곧 사랑 영화임을 깨닫는다. 한편, 내가 끝내 마주해야 할 "네 녀석"은 바로 정치였다. 치열하게 베고 인사를 건네야 할 상대. 그것을 알게 된 하루였다. (22-0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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