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면 가족여행

[스위스] 인터라켄 융프라우

by 삼남매

엄마가 아팠던 그때, 우리 가족은 방송에서 항암효과가 있는 음식이 소개되면 효능이 있기를 기대하며 이것저것 사곤 했다. 음식을 먹고 난 후, 정기검진에서 좋은 결과라도 얻게 되면 언젠가는 암세포가 사라질 수도 있을 것 같다는 희망도 가졌다.


7월의 어느 더운 날 우리는 항암효과가 있다는 와송을 사러 경주 근처로 떠났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경주나 잠깐 들렀다 가자는 엄마의 말에 하루 동안 머무르며 이곳저곳을 돌아다녔다. 그렇게 계획 없이 간 경주는 우리 가족의 마지막 여행지가 되었다.




부슬부슬 비가 오는 8월의 어느 날, 우리 가족의 첫 해외여행지가 될 뻔 한 스위스에 도착했다. 호스텔에 도착해 체크인을 하고 있을 때 셋째가 아저씨의 옷을 가리키며 "유벤투스?!"라고 말했고, 아저씨는 셋째를 향해 유벤투스 팬이냐며 묻고는, 환하게 웃으며 팬을 만나 기분이 좋다는 이유로 숙박비를 할인해 주셨다. 예상치 못한 선물에 덩달아 우리도 기분이 좋아졌다.

사실, 밀라노에서 스위스로 향하는 기차 안에서 표현할 수 없는 공허함이 밀려왔다. 가장 가고 싶어 던 여행지였는데 막상 스위스로 향하게 되니 가기 싫어졌다. 원래는 가족여행이었는데 남매여행으로 바뀌었다는 생각에 마음이 좋지 않았는데 아저씨의 기분 좋은 웃음이 위로가 되었다.



눈 덮인 융프라우 산을 오르 던 기차 안에서 들리는 한국말에 자연스럽게 귀가 쫑긋해졌다. 주변에 방해될까 봐 낮은 목소리로 말했지만 누가 봐도 단단히 화가 난 목소리다. 들리는 내용으로는 그녀들은 모녀사인데 조식을 먹이려는 엄마와 잠을 더 자려는 딸 사이에 다툼이 생겼고, 그 다툼은 불씨가 되어 여행 동안 쌓였던 불만을 서로 터놓게 된 것이다.


서로에게 쌓인 불만들이 유치할 만큼 사소한 것들이었는데, 나와 엄마가 여행을 했다면 똑같은 이유로 싸웠을 것 같다는 생각에 공감이 되면서 싸우는 그녀들이 부러웠다.



"내가 엄마랑 또 여행을 하나 봐라!"


목적지에 도착하자 딸이 엄마에게 쏘아붙이고는 홀로 내렸다. 그런 딸을 엄마는 쓱 흘겨보고는 말없이 내리셨다. 어쩐지 오늘 그녀들에게는 융프라우 따윈 눈에 들어오지 않을 것 같다. 그녀들에게 남은 여행 기간이 얼마나 될지는 모르겠지만 아마도 오늘이 최악의 날이지 않을까 싶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 그녀들이 스위스 여행을 추억한다면, 오늘을 가장 먼저 떠올릴 것이다. 여행 중 싸웠던 일은 그 어떤 자연경관 보다, 랜드마크보다 강렬하게 내 기억 속에 남아 있기 때문이다. 여행이란 싸움조차 추억으로 만드는 묘한 능력을 지녔다.



엄마가 돌아가시고 난 후, 나는 경주에 가본 적이 없다. 경주 여기저기에 엄마와 함께 했던 시간들이 남아 있어 선뜻 갈 수가 없었다.


더 많은 시간이 흘러, 웃고 장난치며 걸었던 포석정의 기억도, 온 마음으로 엄마의 건강을 기원하며 기도 했던 불국사의 기억도, 사소한 이유로 투닥거리며 싸웠던 양동마을의 기억마저 추억으로 자리 잡는 다면, 그때 다시 한번 가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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