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킹스랜딩

[크로아티아] 두브로브니크

by 삼남매

한 달의 칩거 생활을 마치고 다시 우리의 모든 것이 담긴 배낭을 짊어졌다. 긴 시간 머물렀던 만큼 놓고 가는 것이 없는지 서랍들과 침대 밑까지 확인하고 집주인 모녀와 정겨운 인사를 나누고 렌트했던 집을 나왔다.


크로아티아로 떠나는 버스를 기다리고 있을 때, 불현듯 TV 뒤에 꽂혀 있는 크롬 케스트가 떠올랐고 뒷골이 당겼다. 꼼꼼히 살펴봤음에도 불구하고 놓고 오다니 내 스스로가 바보 같아 열불 났다. 열불 나는 마음을 겨우 부여잡고 버스에 올랐고, 얼마 지나지 않아 창밖으로 아드리아해가 보이기 시작했다.



아드리아해에 위치한 두브로브니크 구시가지는 성곽으로 둘러싸여 있는데, 성곽 안으로 들어오니 미드 왕좌의 게임 속 메인 도시인 킹스랜딩에 들어온 기분이었다. 거지 같은 마지막 시즌이 방영되기 전이었기에, 우리는 그동안 뿌려진 떡밥들을 작가들이 어떻게 회수할지에 대하여 나름의 예상 시나리오를 써가며, 드라마에서 나왔던 장소를 돌아다녔다.

드라마에서 보았던 곳들은 우리의 생각보다 소박했다. 마지막 빌런인 서세이라니스터가 'Shame'을 외치며 걸었던 [Historic Stairs]도, 산사 스타크가 납치당할뻔한 [Pile Gate]도 아기자기하게 느껴졌다. TV로 볼 때는 광활하고 웅장해 보였는데 모든 게 CG빨이었나 보다.



몇 번의 전세 생활을 거친 엄마가 처음으로 장만했던 우리 집은 아파트였다. 아파트 입구 옆에는 경비실이, 경비실 옆에는 놀이터가 놀이터 맞은편엔 슈퍼가 있었던 우리 집에 처음 이사 왔을 때 모든 것이 경이로웠다. 6층짜리 아파트는 엄청 높아 보였고, 6개의 동으로 이루어진 단지는 엄청 넓어 보였다. 게다가 단지 내의 놀이터라니 참으로 멋져 보였다.


놀이터는 우리들의 핫플레이스였다. 약속을 하지 않아도 놀이터에 가면 친구들이 있었기에 일요일이면 아침을 먹고 곧장 놀이터로 달려갔다. 그네, 시소, 뺑뺑이, 정글짐, 특별할 것도 없는 놀이기구를 타고 놀다 보면 어느덧 점심을 먹을 시간이 되기 일쑤였고, 엄마들은 들어오지 않는 우리들을 하나둘씩 집으로 잡아가기 시작했다.

우리들의 핫플레이스가 놀이터였다면, 엄마들의 핫플레이스는 1층 화단 앞이었다. 그곳에서 엄마들은 다리 아픈 것도 잊은 채 서서 몇 시간씩 대화하기도 했으며, 더운 여름이면 돗자리를 펼치고 앉아서 수박을 나눠 먹기도 했다. 가끔은 멈출 줄 모르는 엄마들의 수다는 아빠들의 퇴근시간에 맞춰 끝날 때도 있었다.

내가 고등학교를 입학하기 전에 우리는 이사를 했고, 그 후로 한 번도 그곳을 방문한 적이 없었다. 그래서 내 기억 속에 우리의 첫 아파트는 어린이의 핫플레이스도 어른들의 핫플레이스도 있는, 6층짜리 높은 아파트이자 6개 동으로 이뤄진 넓은 단지였다.



여행을 떠나오기 전 결혼한 친구가 신혼집으로 초대하며 카톡으로 주소를 불러줬을 때는 25년 만에 그 아파트를 보게 될 줄 몰랐다. 도로명 주소가 생기기 이전에 이사를 했기에 친구가 보내준 주소는 처음 본 낯선 주소였다.

예상치 못한 나의 추억과의 만남에 가슴이 뭉클해졌다. 아파트 주변은 높은 건물들이 많이 들어섰는데, 우리의 첫 아파트는 그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경비실도, 놀이터도, 슈퍼도 자리는 그대로였지만 소소하게 바뀌어있었다. 놀이터의 흙은 사라졌으며, 슈퍼라는 간판 대신 편의점이라는 간판이 걸려있었다. 무엇보다 6층짜리 높은 아파트이자 6개 동으로 이뤄진 넓은 단지의 나의 옛 아파트는 주차자리가 협소할 정도록 작고 아담해졌다. 내 어린 시절의 기억이 모두 CG빨이었던 것 마냥 모든 게 아기자기하게 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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