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어 마이 프렌즈

[슬로베니아] 류블랴나

by 삼남매

슬로베니아에 오게 된 건 순전히 디어 마이 프렌즈 때문이었다. 주인공 완이의 연인인 연하가 전화로 완이에게 프러포즈를 하며 뛰어가던 류블랴나의 거리가 아름다워 보였다.


기다리던 프러포즈를 받은 완이는 연하가 만나자고 한 세렌 광장의 교회로 향하던 길에, 눈 앞에서 연하의 교통사고를 목격하게 된다. 그렇게 그녀가 가장 행복할 때 그녀는 가장 불행해졌다.

04.jpg


걷지 못하게 된 연하를 남겨두고 완이는 한국으로 돌아왔고, 엄마의 권유로 엄마의 친구들인 늙은 꼰대들의 이야기를 쓰게 된다. 처음 그녀는 자신의 소설에 나오는 어른들의 이야기를 슬프고 아름답게 쓰고 싶었다. 하지만 어른들과 이야기를 하면 할수록 늙은이가 젊은이들에게 전하는 살벌한 잔혹동화가 돼버린다.

07.jpg

죽음보다 서서히 기억을 잃는 것을 두려워했던 희자 이모는 치매에 걸렸고, 힘들었던 지난 세월을 세계일주로 보상해 주겠다는 남편의 말을 철석같이 믿었던 정아 이모는 남편에게 배신을 당한다. 무엇보다 평생을 아웅다웅하며 함께 살던 엄마 난희는 암에 걸렸다.

08.jpg

완이가 엄마의 암 소식을 처음 듣게 된 날, 그녀는 암에 걸린 엄마보다 자신의 안위를 걱정하는 이기적인 모습을 발견한다. 다시 힘들게 재회한 연하에게 돌아갈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부터 어쩌면 엄마를 잃고 혼자 살아가야 할지도 모르는 두려움까지 그녀는 그녀의 엄마보다 자신을 더 걱정했다. 그런 그녀가 화장실에서 자기 뺨을 때리며 울었을 때, 나는 그녀의 마음이 이해됐다.


끝을 알 수 없는 항암치료는 엄마에게도 우리에게도 힘든 일이었다. 암세포는 사라지는 듯하다가도 다른 부위에서 불쑥 존재감을 드러냈다. 그럴 때마다 엄마는 지쳐갔고 의미 없는 치료 대신, 우리와 여행을 하며 시간을 보내다 답답한 병원이 아닌 집에서 마지막을 보내고 싶다고 하셨다.

10.jpg

엄마가 얼마나 고생스러운 시간을 보냈는지 누구보다 잘 아는 나였지만 엄마가 더 버텨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이기적 이게도 나도 완이처럼 엄마 없는 내 삶이 엄마의 아픔보다 더 걱정이었다. 하지만 평생 우릴 위해 희생한 엄마에게 나의 이기심 때문에 힘든 시간을 버텨달라는 말을 할 수가 없었다. 그 정도의 염치는 있었다.

06.jpg

엄마의 몸이 마음의 소리를 들은 걸까? 엄마의 몸은 항암치료를 받기엔 약해져 있었고, 의사 선생님께서 몇 주간은 치료를 쉬자고 하셨다. 치료를 쉬는 동안 엄마는 항암치료의 부작용으로부터 잠시나마 벗어 날 수 있었지만, 우리와의 여행을 하며 시간을 보내다 집에서 마지막을 맞이하고 싶다는 뜻은 이루지 못했다.



엄마를 떠나보낸 후 방황하는 아이처럼 나와 동생들의 삶은 흔들렸다. 엄마를 떠나보낸 지 1년이 되던 해에 누군가는 힘들어하는 우리 삼남매에게 어른스럽지 못하다 말과 함께 산사람은 살아야 하지 않겠냐며, 하루빨리 우울한 삶에서 벗어나라는 질타를 퍼붓었다.

05.jpg

한 해가 지날수록 조금씩 나아진 삶을 살고 있지만 여전히 문득 떠오르는 엄마가 그리워 슬플 때가 있다. 이 곳, 사랑스러운 류블랴나의 거리를 걸으면서도 엄마가 떠올랐고, 급 서글퍼졌다. 우리 삼남매만 엄마를 잃은 게 아닐 텐데,,, 누군가의 말처럼 우리가 어른스럽지 못한 건가 싶기도 하다.


살면서 아무리 경험 많은 어른이어도, 이 세상에 내 어머니가 돌아가시는 경험은 그 누구에게나 단 한 번뿐이다. 그래서 슬픈 건 어쩔 수 없이 슬픈 것이었다. 늙은 딸이 늙은 엄마를 그렇게 보냈다.
- 디어 마이 프렌즈 중에서-
keyword
작가의 이전글나의 킹스랜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