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같은 공간을 공유하는, 어렵지만 행복한 인간관계를 위하여

by 당신의우주

# 2년 만에 친구들을 만났다. 둘째 아이가 태어난 이후 처음 보는 얼굴들이다. 육아로 당분간 정기모임은 못 나가겠다고 했었다. 그래도 날 잊지 않고 안부를 물어주고 모임에 나오라고 세상 밖으로 불러주는 마음이 고맙다. 너무 오랜만이라 처음에 인사할 때 약간 어색했다. 그렇지만 어느새 어제 만났던 것처럼 왁자지껄 웃으며 수다를 떤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놀다가 다음 만남을 기약하고 헤어진다. 또 다 같이 뭉칠 때가 언제일지 모르겠지만, 그래도 이렇게나마 얼굴을 보고 근황을 이야기하는 것이 기분이 좋다.


# 심적으로 가깝고 나를 위하는 사람이라 생각했던 친구가 있었다. 같은 여성 싱글 동료라 공감대가 많기도 했다. 직장에서 만났음에도 불구하고 가끔씩 퇴근 후면 함께 맛집도 다니고 주말에도 만나 커피를 마시고 운동도 같이 했었다. 여행도 같이 가고, 직장에서 일어나는 각종 소식에 대한 업데이트까지, 여러 조언도 해주는 사이였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서운함이 생기는 일들이 하나 둘 생겨나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조금씩 멀어지고 이제는 는 연락조차 하지 않는 사이가 되었다.

처음에는 어떻게 나에게 그럴 수 있는지 이해해보려고 했지만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 여파가 몇 달이나 갔다. 매일 곱씹으며 화가 났다가 만나면 어떻게 대할까 온갖 시나리오를 머릿속에 써보기도 하고, 그래도 좋아하던 사람이었는데 아쉽기도 했다. 그러고 나서 시간이 흐르니 머릿속을 차지하던 생각들은 사라지고 없었다.

신기한 것은 오랜만에 우연히 그녀를 만났을 때였다. 과거의 해묵은 감정은 전혀 기억이 안 나고 오히려 반갑기까지 했다. 물론 어색하긴 했지만 인사를 나누고 '그래, 우리에게 좋은 추억들이 있었지'라는 생각을 하며 기분 좋게 헤어질 수 있었다. 그리고는 다시 빠르게 몰아치는 일상 파도 속으로 뛰어들었고 어느덧 그녀는 평소에는 잘 생각이 나지 않는 과거 속의 인물로 돌아갔다. 아마 나 또한 그녀에게 그런 존재일 것이다.


# 결혼을 하고 부모가 되어보니, 아이들과의 관계를 어떻게 평생에 걸쳐 잘 펼쳐나갈지 가끔 생각을 해본다. 자녀는 가장 가깝기도 하고 나 자신을 상당 부분 '갈아 넣어서' 만든 작품이라고 여기기도 한다. 이 과정에서 심리적으로 집착에 가까운 애정이 만들어지기도 한다.

그러나 가장 귀한 '손님'처럼 자녀를 대하라는 말처럼, 자녀는 태어날 때부터 그 자체로 완벽하고 독립된 존재이다. 양육의 궁극적인 목적도 자녀의 독립이다.

머리로는 잘 알지만 자녀에게 가지는 마음의 크기 때문에 자녀의 삶을 나의 삶과 동일시하여 경계가 무너지기도 한다. 만약 자녀가 삶의 주도권을 잡고 적극적으로 살아가려고 할 때 혹시 내가 너무 많은 간섭을 하지는 않을까 우려도 된다.

우리가 자녀와 살을 부대끼고 곁에 가까이 두고 함께 할 수 있는 시절은, 아마도 대학생활을 하고 취업 준비를 하거나 결혼하기 전, 즉 '자기 삶을 꾸려나가느라 바빠지기 전' 일 것이다. 그 시기를 잘 구분해서 자녀도 수많은 인간관계의 대상 중 하나라고 생각하고 강약 조절을 잘해야겠다는 다짐을 해 본다.




사람으로 인해 스트레스를 받기도 하지만, 결국 사람들 사이에 있어야 행복하다.

혼자 있으면 편하고 자유롭기는 하지만 그것도 북적이는 인간관계 속에서 헤매다가 겨우 빠져나왔을 때 느낄 수 있는 해방감이다.

여러 연구에서 제시하는 행복의 조건 중에는 반드시 '의미 있고 깊이 있는 인간관계'나 '공동체의 존재'가 언급이 된다.

정서적으로 안정되고 행복한 삶을 살아가려면 사람들과 건강한 관계를 맺고 그들과 함께 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그렇다고 지치거나 자신을 잃어버리면서까지 헌신할 건 없다. 모든 관계는 궁극적으로는 나의 행복을 위해 이뤄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 관계 안에서 더 이상 행복하지 않다면 차라리 잠시 혼자가 되어보는 것도 좋다. 누군가로 인해 마음이 너덜너덜해진 경험을 해보면 스스로 고립된 시간을 만드는 게 낫다는 걸 깨닫게 된다. 어떻게 하면 너무 많이 흔들리지 않고 중심을 잘 잡으면서 일상의 관계들에 임할 수 있을까 고민할 필요가 있다.


1. 인생의 여정 중 같은 구간을 함께 걸어가는 사람임을 기억한다


긴 인생이 시간의 덩어리, 시간의 블록들로 연결되어 있다고 생각해 본다. 학창 시절의 친구, 직장생활 중 만난 동료, 육아를 함께한 동네 엄마들, 여행에서 만난 친구 등 특징이 다른 시간들이 촘촘히 연결되어 삶을 구성한다. 심지어 가족들도 마찬가지다. 부모님과도 20~30년 정도 밀도 있게 곁에 있다가 서서히 독립해서 나간다. 형제와도 어느 순간부터는 각자의 삶에 몰입하느라 가끔 생존 확인만 하기도 한다. 물론 가족이기 때문에 정서적 연결고리가 탄탄해서 '잘 살고 있겠거니, ' 혹은 '무소식이 희소식' 마인드로 멀리서 조용히 응원하다가도 일이 생기면 적극적으로 개입하기도 하지만 말이다.

시간이 흐르면, 시간의 한 블록을 함께했던 사람들과 일 년에 한 번씩 만나기도 힘들다. 그 구간이 마무리가 되어 다음 구간으로 넘어간다면 그 이후에는 자주 만나 것이 어려운 게 당연한 것일지도 모른다. 인생의 여정에서 우연히 만나 같은 길을 걸어가다가 서로 다른 길로 진입을 했기 때문이다.

현재에 충실하게 몰입하는 것이 중요하다면 우리 모두 정말 잘 해내고 있는 것이다. 섭섭한 마음이 들 수 있다. 그리고 상대방이 변했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이런 마음을 극복하려는 노력을 하고 나도 다음 단계로 나아가야 한다. 정말로 소중한 인연이라고 생각된다면 바쁜 가운데서도 내가 먼저 연락을 하고 싶어질 것이고, 연락이 오기도 할 것이다.

그렇게 가끔이라도 만나는 것이 마음을 행복하게 해 준다. 뜬금없이 연락하는 것이 힘들 수도 있다. 덩그러니 혼자 있는 것 같아 외롭다가도, 함께 했던 시간을 생각하면서 그립고 보고 싶은 누군가가 있다는 것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하다. 그만큼 내가 홀로 걸어온 것이 아니었고 함께 했다는 것이며, 다채로운 시간과 경험을 만들어왔다는 증거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만난 사람들을 통해 시간여행을 한다. 아무리 나이가 들어도 오래된 친구를 만나면 그때 그 시절로 돌아가서 어릴 적 모습으로 서로를 대하게 된다.

우리 모두 인생의 여행자라고 볼 때, 처음부터 끝까지 곁에서 함께 여행을 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각자 다른 이야기를 써 내려가고 있기 때문이다.


2. 사람마다 느끼는 마음의 거리가 다르다는 것을 인정한다


나와의 마음의 거리가 1m인 사람, 5m인 사람, 10m인 사람 등 그 차이가 천차만별이다. 또한 나는 가깝다고 생각했는데, 상대방은 나와의 거리를 둘 수도 있고, 그 반대인 경우도 있다. 이는 사람의 마음에 달려있기 때문에 내가 어찌할 수 있는 것이 아니고 흘러가듯 내버려 두어야 한다. 서운해하는 마음도 내려놓는 것이 좋다. 그 사람의 마음이 그러한 것을 내가 어찌할 수 있을까? 그건 신도 할 수 없는 영역이다.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고 툭 털어버려야 한다. 그런 인간관계에 매달리는 대신 내가 아끼고 나를 좋아하고 사랑하는 사람들만 챙겨도 시간이 부족하다. 나와 마음의 거리가 잘 맞는 사람과 행복한 시간을 보내는데 집중한다.


3. 나의 색채를 드러내는데 자유롭고, 나다워지는 사람과 함께한다


내 스타일대로 살아가는 게 힘들 수 있다. 다른 사람 눈치도 보고, 반응도 살피고, 그러다 보니 나의 본모습과 다른 자아를 꾸며내느라 피곤할 때가 있다. 내가 나답게 행동한다고 해서 만만하게 보거나 함부로 대하는 사람들은 애초에 곁에 둘 이유가 없다. 오히려 그런 모습을 보인다면 사람을 거를 수 있는 좋은 기회이므로 감사하게 생각해야 한다.

말과 행동을 나답게 할 수 있는 인간관계가 더 자연스럽고, 친밀한 관계로 발전할 가능성이 높다.


4. 그저 우리는 타이밍이 맞지 않았을 뿐이다


시절인연이라는 말이 있다. 불교에서 나온 개념인데, 모든 일은 적절한 인연과 시기가 갖추어졌을 때 비로소 이루어진다는 의미이다.

내가 준비가 되었을 때는 상대방이 준비가 되어있지 않을 수도 있고, 그 사람이 준비가 되었는데 내가 아직 준비가 되지 않았을 수도 있다. 서로 잘 맞는 사람이라도 시기가 어긋나면 인연이 안 되고, 평범한 만남도 ‘시절인연’이 맞아 결실을 맺고 오래가는 경우가 있다.

친구관계도 그렇지만 특히 연애나 결혼에서 이 '타이밍'의 역할이 크다. 그 인연을 알아보는 일은 쉽지 않다. 아무래도 연인이니 감정이 얽혀있어 휘둘리기도 하고, 자신의 내적, 외적 균형을 파괴하면서까지 관계에 몰입할 때도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나를 놓아가면서까지 잡아야 할 사람은 이 세상에 없다. 그런 사람은 마음이 힘들어도 과감히 끊어낼 수 있어야 한다.

그럴 때일수록 '시절인연'을 꼭 기억하고 나와 잘 맞는, 인연이 될 사람은 반드시 나타나기 때문에 그런 사람을 놓치지 않는 눈을 기르는데 집중해야 한다.

우리 곁에 있는 사람들은 정확하게 타이밍이 맞았기 때문에 기막힌 인연으로 만나게 되었다. 그러니 그 인연이 얼마나 소중한지 알 수 있다.


5. 판단, 비판, 조언, 험담, 충고는 아낀다


데일 카네기 <인간관계론>의 첫 챕터의 주제가 '비난이나 비평, 불평을 하지 말라'이다.

우리는 함께해 온 시간이 있어서 서로를 잘 안다고 생각하지만 정확하게는 알지 못한다. 그 경계를 함부로 넘게 되면 관계에 문제가 생기게 된다.

갈등을 겪는 A, B 두 사람 사이에서 옳다고 생각되는 A의 편을 들며 B를 비판하고 그에게 충고한 적이 있다. 그런데 두 사람의 사이가 다시 좋아졌을 때 입장이 난처해진 것은 나뿐이었다. 오히려 내가 편을 들어준 A가 B의 입장을 고려하지 않는다고 나의 편협한 생각을 지적하는 것이었다. 상당히 곤란한 상황을 여차저차 넘어간 뒤 그 이후로는 함부로 나서지 않게 되었다. 이해관계에 따라 오늘의 적이 내일의 동지가 될 수 있고, 오늘의 친구가 내일의 적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가족 같은 가까운 사이에서도 적용된다. 사람은 절대 바뀌지 않고, 조언을 구한다면 이미 마음속에 정답이 있는데 확인을 하려고 하는 것일 뿐이다. 그리고 대부분 충고를 했을 때 결과가 좋지 않거나 관계가 더 악화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비판을 한 경우에도 상대방은 자기 합리화를 하거나 반박하기 급급하지, 자기 성찰이나 반성을 하는 경우는 드물다.

사람은 스스로 바뀌지 않는 이상 절대로 바꿀 수 없다. 상대방과의 관계가 힘들 때,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면서 차라리 나 자신의 태도나 상대방을 대하는 방식을 바꾸는 것이 유일하게 할 수 있는 일이다.

때로는 상대방의 상황이 안타깝더라도 그저 내버려 두는 것이 좋다. 이건 무관심과는 다르다. 내가 알지 못하는 사실이나 복잡한 관계가 있을 수도 있기 때문에 내가 임의로 판단해서는 안된다. 상대방이 하고 싶은 대로 하게 두되 애정 어린 관심을 갖고 지켜볼 수도 있고, 적당한 피드백으로 나의 진심을 표현할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이 상황에서도 나의 삶과 자아를 보호하기 위한 분명한 선을 긋고 상대방에게도 인식시켜 주는 것이다.


6. 불편하지만 나를 위해주는 사람들을 잘 지킨다


주변에 쓴소리를 하거나 돌직구에 가까운 충고를 해주는 사람들이 있다. 본인의 평판을 깎아내림에도 불구하고 나에게 직언하는 사람이 있다면 함께 있기 불편하더라도 잘 지켜내야 한다. 그것이 나의 자존감을 깎아내리는 근거 없는 비난이 아니라 나를 진심으로 위해주는 말이라면 말이다. 듣고 있으면 기분이 나쁠 때가 많겠지만 그런 사람은 정말 드물다. 굳이 시간과 인심을 잃어가면서까지 참견할 사람이 몇이나 되겠는가?

내가 실수하고 있거나 잘못된 방향으로 가고 있는 것을 바로잡아주고 나의 성장을 위해주는 보석 같은 사람이 곁에 있다면 그가 내 편임을 소중하게 생각한다.


7. 나 자신이 잘 살고 있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돌아보면 내 인생의 침체기에는 주변 사람과의 관계도 잘 안 풀리는 것 같고 방구석에 숨어있고만 싶었다.

반면에 삶이 잘 풀리고 열심히 최선을 다해 하루하루 집중해서 살아내고 있을 때는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도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었다. 곳간에서 인심 난다는 말이 있다. 내 마음에 여유가 있기 때문에 타인에게도 너그럽고 '그럴 수 있다'며 상대방의 입장을 이해하려 노력하는 에너지가 생겨난다.

내 삶을 가꿔나가느라 바쁠 때는 각종 인간사에 일일이 대응하고 신경 쓰기 어렵게 된다. 눈앞에 끊임없이 밀려드는 나의 문제에 압도당해서, 상대방의 행동에 예민한 잣대를 들이대 해석할 힘조차 없는 상황에 놓인다. 오해가 있어도 풀기 어려운 경우도 있다. '나중에 설명할 기회가 있겠지' 하고 넘기게 된다. 설득이 안 되는 대상에게 해명을 하는데 드는 시간과 에너지가 무척 아까워서이다.

가장 숭고할 것 같은 부모의 사랑도 시시각각 달라진다. 부모도 어느 순간에는 자신의 입장이 더 중요할 때가 있다. 자녀도 자기 입맛에 맞춰줄 때 부모가 좋다. 조금이라도 틀어지면 섭섭해한다. 배우자도 형제도 마찬가지이다. 가족도 그런데 친구나 지인은 더 그럴 것이다. 영원한 것은 없고, 모든 것은 변한다.

그래서 배가 닻을 내리듯 나 자신의 중심을 잘 잡아야 한다. 외부의 다양한 자극 속에서 내면의 중심을 유지하기는 쉽지 않다. 수없이 흔들리지만 그 가운데서 오늘 내가 해야 할 일들을 하나씩 해나가면서 망설임 없이 한 걸음을 나아갈 때 가능해진다. 해야 할 일이 많고, 그걸 해내느라 분주할 때, 오히려 주변 인간관계는 단순해지고 타인에 대한 집착도 줄어들게 된다. 나에게 센터링을 공고히 할 때, 남으로 인해 일희일비하는 일이 줄어들면서 안정적인 일상을 보낼 수 있다.

그 과정에서 나와 공감하고 위로가 되는 사람들과 서로 기대가며 살아가게 된다. 그럴 때 우리 삶은 훨씬 더 따뜻하고 풍요로워진다.




이렇게 주변 사람들을 바라본다면, 조금은 더 겸허하면서 너무 무겁지 않게 인간관계의 실타래에 접근할 수 있다.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꽃길을 걷듯 경쾌하게 사람들과 만나고, 관계 안에서 비로소 우리는 소소한 행복함을 느낄 수 있다.

우울함을 느끼거나 혼자라는 느낌이 들어 집 밖에 겨우 나왔을 때, 카페 사장님이나 이웃들과 간단한 대화만 해도 기분이 훨씬 나아진다. 사람을 살리는 것은 결국 사람이다.

오랜만에 친구에게 연락해 봐야겠다. 나의 삶의 한 페이지를 함께하며 나의 곁을 지켜준 고마운 마음을 생각하면서. 아주 멀리서 보면 그 존재 자체로 아름다웠던 순간들을 생각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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