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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철목련 Steel Magnolias Oct 02. 2024

예술 속의 삶 혹은 삶 속의 예술

물결치는 삶의 바다에서 

테이트 뮤지엄 근처 그리스식 식당을 방문한 적이 있다.


고단한 하루를 마치고 금요일 저녁을 즐기러 나온 런던 사람들은 싱그러운 지중해식 음식을 먹으며 그들만의 대화에 집중해 있었다. 


식당 한켠에는 그리스인 악단이 공연을 준비 중이었다. 런던에 오기 직전 안소니 퀸 주연의 영화 그리스인 조르바를 보고니코스 카잔차키스의 소설을 읽고 영화음악도 찾아 들었던 참이었다. 그 경험들에서 우러나온 용기로 악단의 부주키 연주자에게 말을 걸었다.


“그리스의 아름다운 악기인 부주키를 실제로 보게 되어 감격스럽다. 혹시 부탁을 드려도 되겠냐, 무례하다고 느껴지면 거절해도 좋다. 한국에서 미키스 테오도라키스라는 그리스 음악가의 곡들에 빠져 살았는데 혹시 아시느냐, 그리스인 조르바라는 그의 유명한 연주 음악이 있는데 아신다면 짧게 한 소절 들려주실 수 있느냐.“ 라고 말씀을 드렸다.


거절을 예상했는데 그는 흔쾌히 승낙해주셨다. 다만 지금은 공연을 위한 곡들을 단원들과 맞춰봐야해서 어렵고, 공연 하며 준비한 곡들을 모두 연주한 후 단원들과 의논해보고 가능하면 곡 전체를 들려주겠다고 하셨다. 그리스 음악과 문화에 관심과 애정을 보내줘 고맙다고 말씀하셨다.


공연이 시작되었는데 무심한 런던 사람들은 박수를 보내지 않았다. 그들에게 악단의 공연은 금요일 저녁을 위한 배경음악에 지나지 않아 보였다. 난 로컬 피플이 아니니 관광객티 내도 괜찮겠지라는 마음으로 뜨겁게 손뼉을 쳤다. 


식사가 끝나가고 저녁이 깊어질 쯤, 식당의 직원이 오시더니 요청한 노래가 곧 연주될 거라고 귀뜀해주셨다. 부주키로 테오도라키스의 익숙한 선율이 연주되자 소름이 돋았다. 소설과 영화의 한 장면처럼 가슴 속에서 조르바 할아버지의 넘실거리는 춤사위가 한 판 벌어지는 듯 했다. 


세상에나! 공연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던 런던 사람들이 여기 저기서 박수를 치며 박자를 맞추기 시작했다. 심지어 자리에서 일어나 춤을 추는 할머니, 할아버지 런더너도 있었다. (시크한 런던에서 전국노래자랑같은 분위기라니!) 식당 안이 흥겨운 열기로 가득찼다. 공연이 끝나자 단원 아저씨가 나를 불러 세워 아름다운 그리스 문화를 사랑하는 아름다운 한국인이 아름다운 곡을 요청해줘 아름다운 밤이라며(아름다운을 몇번이나 붙이시던지…) 먼 동쪽 나라에서 온 한국 여성에게 감사의 박수를 보내달라고 말씀하셨다. 그때만큼은 슈퍼I에서 슈퍼E로 인격이 바뀔만큼 황홀한 밤이었다.


초등학교 6학년 때 페데리코 펠리니 감독 줄리에타 마시나 주연인 영혼의 줄리에타를 보았다. 비슷한 시기에 제임스 아이보리 감독의 영화 남아 있는 나날, 전망 좋은 방도 보았다. 그때부터 예술 속의 삶 혹은 삶 속의 예술에 대해 조금씩 생각하기 시작했던 것 같다. 


30대 중반의 나는 런던으로 떠나기 전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BBC Concert Orchestra의 La Strada를 듣고 줄리에타 마시나와 안소니 퀸이 나온 영화 길을 찾아 보았다. 거기서 받은 감동을 탄력 삼아 안소니 퀸의 전설적인 영화 그리스인 조르바까지 챙겨 보고 책까지 읽었던 참이었다.


영화를 통해 음악을 만나고, 다시 음악을 통해 영화와 책을 만났다. 예술의 세상 안에서 돌고 돌며 수많은 만남을 경험한 덕분에 굴곡진 삶 속에서 어긋나지 않고 살아왔다. 예술은 나에게 기품있게 삶을 지켜나가는 법을 가르쳐 주었다. 


법정 스님의 글을 읽으며 스님도 첼리스트 파블로 카잘스를 좋아 하셨구나 알게 된다. 카잘스가 카탈루니아의 독립을 꿈꾸며 연주한 Song of the Birds를 들어본다.


이 순간 속에 머물며 지금에서야 삶의 바다에 떠 있는 나라는 배의 방향키를 제대로 잡고 항해다운 항해가 시작되고 있다는 걸 감지한다.


영화 리빙을 본 후 스코틀랜드 민요 The Rowan Tree를 들었다.리빙의 각본을 쓴 분이 가즈오 이시구로라는 내가 초등학생 때 본 영화 남아 있는 나날을 쓴 원작자였다.


초등학교 6학년 때의 나와 40대 중반의 내가 마주하고 있는 느낌이 들었다. 다행스럽게도 그때 가졌던 마음을 모두 잃어버리지는 않았지만 자연을 탐색하며 지내던 몸의 반짝이는 열기는 늦은 나이에 딸을 낳고 육아하는 데 쓰며 잃어버린 것 같다. 몸에 새겨진 태만함을 모두 떼어내고 사랑하는 딸과 어린 시절에 품은 꿈을 향해 나아가는 내가 손을 잡고 물결치는 삶의 바다에서 위풍당당하게 항해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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