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해 보면 어릴 때부터 글을 쓰는 습관이 있었다. 중학교를 입학하고 나서는 선생님에게 일기장 검사를 받지 않아도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혼자 글을 쓰곤 했다. 미국 대중음악과 일본 만화와 펑크 록과 조규찬, 박정현, 이소라와 같은 국내 보컬리스트의 음악을 섭렵했던 것을 생각하면 지금의 감수성은 예민했던 10대 시절에 구축되었다.
나는 반에서 눈에 띄지 않는 학생이었다. 선생님들이 자주 애정을 담아 이름을 부르곤 했던 모범생, 교실 뒷자리에 앉아 싸움에 소질 있던 문제아들, 그리고 소위 잘 나가는 아이들에게 놀림당하던 힘없는 아이들, 그 틈에서 나는 항상 거리를 두곤 했다. 쉬는 시간에 누구와 함께 매점을 간다든지, 누구와 도시락을 먹는다든지 등, 10대의 조직은 '누구'와 함께인지가 집단 내 위치를 보이는 척도였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그 척도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혹은 그 문화와 집단에 홀로 반항했다. 대신 누구도 듣지 않는 음악을 듣고 만화책을 탐닉했으며 쉬는 시간이면 자리에 앉아 그림을 그리곤 했다. 친구들이 좋아하니까 따라서 연예인을 좋아했다던가, 유행하는 옷이기 때문에 따라서 쇼핑을 한 적도 없었다. 내가 설득되지 않으면 행동에 옮기는 경우는 드물었다. 이런 군중 반대 심리에도 불구하고 왕따를 당한 경험이 딱히 없었던 것을 보면, 그래도 나는 사회적 소외에 대한 근본적인 두려움을 가지고 있었던 어쩌면 어설픈 괴짜였고, 말 없는 고집스러운 나를 포용해 준 주변의 친구들이 곁에 있었다.
나는 수다를 좋아하지 않았다. 친근한 분위기를 만들기 위한 목적으로 대화를 한다는 것은, 나에게는 말의 목적이 되지 못했다. 대신 집에 돌아와 일기를 적었다. 집단 내에서 공통의 대화 주제를 느끼지 못했던 나는, 영화를 보고 그림을 그리고 글을 읽으면서 내 세계를 구축해 나갔다. 돌이켜 보면 나에게 10 대란 긴 침묵의 시간이었지만, 동시에 '나'라는 개인을 빚어내기 위한 재료를 담아내는 시간이었다. 타인과의 소통이 어려웠던 나는 대신 글을 쓰고 그림을 그렸다. 대부분은 일기를 적었지만 때로는 소설과 시를 쓰기도 했고 만화를 그리기도 했다. 그리고 그 소설과 시와 만화는 혹여나 누가 볼까 책상 깊숙이 노트를 넣어 두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