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얘기인 줄 알았더니 내 얘기더라
넷플릭스에서 어느 날 미쉘 오바마 자서전 투어를 다룬 <비커밍 Becoming> 이 떠서 보다가 <American Factory 미국공장> 까지 보게 됐다. "어느 날" "어쩌다가" "떠서" 만큼 넷플릭스와 어울리는 단어가 없지 않나 싶다.
<미국공장>은 다큐멘터리로 미국 'GM(General Motors)' 공장이 문을 닫고 몇 년 후 그 자리에 중국의 자동차 유리제조 기업 '푸야오Fuyao'가 들어서면서 그 지역 노동자들을 흡수, 다시 공장을 열게 되며 일어나는 내용이다. 다큐는 미국 오하이오주 데이턴 (Dayton, Ohio)의 GM 공장이 문 닫던 2008년 겨울 시점부터 시작한다. - 나중에 찾아보면서 알게 된 일이지만, 이 다큐멘터리를 찍었던 부부 감독 스티븐 보그너(Steven Bognar) 줄리아 레이처트(Julia Reichert)는 과거 2009년 <The Last Truck: Closing of a GM plant> GM 공장이 문을 닫을 때에 그 내용을 담은 적 있었다. - 공장이 닫자 삶의 터전을 잃어버린 노동자들은 슬퍼한다. 그리고 몇 년 뒤 중국인 부부가 미국 하늘을 바라보며 마치 아메리칸 드림을 얘기하는 듯한 장면으로 이어진다.
2016년, 이 지역에 '푸야오'가 들어선다. 회장인 차오는 중국 갑부로, 미국의 상징 그 자체인 GM 이 있었던 지역에 공장을 연다. 차오는 2천 명 넘게 해고됐던 노동자들을 고용하고 이에 미국인들은 "기회를 줘서 너무 감사하다"며 희망에 부푼다. GM 에서 시간당 29달러를 받았던 미국인들은 푸야오에서 12.8달러를 받으면서도 일자리가 생겼음에 감사한다. 파견된 중국인들은 중국인들대로, 미국인들과 미국 문화에 대해 수업을 들어가며 배워나간다. 미국 문화는 "실용적이고 법이 허하는 내에 자유를 누리는"문화라고. 미국인들은 파견된 중국인들을 집으로 초대해 함께 시간을 갖기도 한다.
차오 회장은 중국인 노동자들에게 "우리가 여기에 온 것은 돈을 벌러 온 것이 아니다.... 민족과 나라는 어머니와 같은 존재다. 우리는 미국인들의 중국에 대한 관념을 바꾸자" 라고 얘기한다. 아..이 대목에서 나도 모르게 차오 회장을 응원했다. 미국 기업들은 중국에 기업을 잘도 여는데, 아시아 기업이라고 미국에 공장을 못 차릴 게 있는지. 우리도 해외에 나가면 우리가 사실 한 나라를 대표한다는 생각으로 '잘' 행동하자는 얘기 얼마나 많이 들었던가.
그러나 사실 큰 두 문화가 섞여 일하는 게 쉽지 않다. 미국 노동자들은 "손이 두껍고 느리다"며 보고되고 공장 내에선 파견된 중국 노동자와 미국 노동자들이 서로 화내며 싸우기도 한다. 일이 남았는데도 미국 노동자들은 왜 추가 근무를 하지 않는지 중국 노동자들은 이해하지 못한다. 같은 작업을 무한 반복하며 유리를 만들다 보니 너무 뜨거운 작업 환경에 미국 노동자들은 지쳐간다. 흡사 미국과 중국의 무역전쟁을 보는 것처럼 공장 곳곳에는 아슬아슬한 상황이 계속 벌어진다.
어느 날, 공장 준공식 때 이 지역 상원의원이 축사에 노조 설립을 언급했고 그게 회장의 심기를 건드리며 갈등이 시작된다. 차오 회장은 노동조합에 대해 매우 부정적이며 안 그래도 계속 적자를 겪고 있는 공장에 해가 될 거라며 이를 막으라고 공공연히 지시한다.
차오 회장은 미국 공장의 몇몇 책임 노동자들을 중국 본사 공장으로 초청하여 중국 공장이 어떻게 "효율적"으로 일하는지 보여주라고 한다. 미국 노동자들은 중국 노동자들이 "멈추지 않고"일한다며 놀라워하고 위험한 작업을 보호장비 하나 없이 일하는 장면들을 보고 매우 충격받는다. 그리고 2교대 근무를 견디고 휴일까지 나와 일을 하는 중국인들. 가족과 떨어져서도 돈을 벌기 위해 일하는 노동자들은 사실 한국의 과거 혹은 현재까지 이어지는 모습을 연상케 하며 안쓰러운 마음이 들기까지 했다.
미국으로 다시 돌아온 몇몇 직원은 중국에서 본 직원 아침 조례 등을 시도해보지만, 사실 잘 되지는 않고... 위험한 작업환경에 노출된 몇몇 노동자들이 다치거나 업무량이 늘어나면서 미국 노동자들은 불만이 생기기 시작한다. 이때 전미 자동차 노조에서 노동조합 설립에 대해 후야오 공장 노동자들을 독려하면서 공장 내에는 노동조합 설립파와 반대파가 나뉜다. 노동조합 설립에 매우 부정적인 차오 회장은 경영진을 중국계 미국인으로 바꾸고, 노동조합 설립을 무마시키기 위해 컨설팅 업체를 고용한다. 이 업체는 노동조합의 최후 수단인 파업으로도 오늘날 기업에 큰 위협이 되지 않는다며 노동자들이 노동조합을 설립하는데 반대할 수 있도록 한다. (차오 회장은 이 컨설팅 업체에 최소 10만 불 이상을 지불했다고 한다.) 노동조합 설립을 찬성하는 직원들은 업무 배치가 달라지거나 효율이 떨어진다는 근거로 해고된다. 이런 전략이 먹혔던 것일까. 노동조합보다 당장의 복리후생 유지 및 증가를 택하는 미국 노동자들.. 눈 앞의 현실 앞에 자유와 의사를 표현할 기회를 포기한다. 노동조합 의사결정을 묻는 투표에 결국 노동조합 설립 반대가 훨씬 우세하게 나왔다. 한국의 노동조합 없는 몇몇 회사들이 생각나며 사실 이는 미국과 중국의 대립이 아니라, 노동자와 자본의 대립이 아닌가 싶었다.
그런데 차오 회장의 장기적 계획은 이에 그치지 않는다. 성가신 인간 노동보다 단순하고 위험한 작업을 담당할 수 있는 기계로 계속 대체해 나간다. 자본가들은 끊임없이 "효과적"이고 "효율적"인 노동을 통해 이익을 최대화하려고 한다. 이제 인간의 노동력은 기계, AI로 대체되는 세상이 온 것이다.
노동의 일부가 계속 기계로 대체되어서일까. 2018년부터 드디어 이 공장은 흑자로 전환을 하기 시작했다면서 다큐는 끝이 난다.
만약에,, 해외 기업이 그것도 우리보다 못하다 생각했던 '예를 들면' 동남아 기업 중 하나가 한국에 공장을 설립하고, 같은 상황이 벌어진다 생각해보자. 더 못하다고 생각했던 나라가 아니어도 된다. 우린 그럼에도 '미국'공장 얘기라고 할 수 있을까. 아니면 이미 이런 상황은 한국에도 벌어지고 있지 않은지. 그런 면에서 이는 더 이상 '미국'공장 이야기가 아니다. 우리의 이야기다.
<미국공장>은 버락 오바마 부부가 2018년 설립한 "하이어그라운드 Higher Ground" 라는 컨텐츠 제작사에서 선보인 첫 작품이기도 하다.(이 작품은 2020년 아카데미 다큐 부분까지 상을 받았다. ) 오하이오 지역은 대표적 '러스트벨트' 지역으로 미국 제조업, 공장지역이었으나 제조업 후퇴로 지역 자체가 사양화 됐다. 그리고 이후 2016년 트럼프 대통령의 보호무역주의 메시지에 힘을 실어주면서 - 트럼프 대통령은 제조업의 후퇴가 민주당의 자유무역 때문이라고 했다 - 이 지역은 대표적인 트럼프 지지 지역이 되었다. 버락 오바마 부부가 왜 이 지역을 주제로 한 다큐를 제일 처음으로 선보였을까. 인간의 노동력이 기계로 대체되는 부분은 트럼프여도 해결해 주지 못할 거라는 얘기 해주고 싶었을까. 오바마 대통령은 묘안이 있을까. 하이어 그라운드의 다음 작품을 보면 알 수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