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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불걷어차기 Aug 03. 2023

20년만에 엄마와 살기 시작했다

징한 캥거루족

거의 20년만이다. 엄마와 같이 살기 시작한게.

고등학교를 기숙사 학교로 다니고, 대학을 타지로 가면서 중학교 3학년 정도까지 부모님과 살았다. 그런 내가 둘째를 낳고서, 나는 엄마를 찾았다. 애 한명은 어떻게 어떻게 키웠는데, 또 한명을 낳고 보니, 나는 두손 두발을 들었다. 왜 선녀가 애 3명 낳으면 하늘을 못 갔는지 알 수 있었다. 현실에선 둘도 어렵다.


한명은 배고프다하고 한명은 똥을 쌌다. 한명이 잠이들면 한명이 울면서 자는 한명을 깨웠다. 나는 늘 몽롱했고, 장자의 나비를 매일 본 것만 같다. 누군가 그랬던가. 둘째는 발로 키운다고. 난 두놈 다 발로 키우고 있었다. 정말 이러지도 저러지도.


육아도 쉽지 않은데다 회사에 복직을 빨리 해야하기도 했다. 애기 분유값이라도 벌려면 책상이 있을 때 복직해야 했다. 혹자는 그럴 수도 있다. 그런 상황인데 왜 애를 둘을 낳았냐고. 그러게나 말이다. 아 정말로. 그러게나 말이다. 나는 왜 그랬을까? 도대체 말이다. 인생은 뜻대로 되는 법이 없나보다.


엄마밖에 떠오르질 않았다. 육아 도우미 도움을 받을 수도 있었지만 형편이 그리 되질 않았다. 부끄럽지만 그랬다. 어린이집은 아직 6개월 아기를 받아주는 곳이 없었다.


근데 문제는 엄마는 부산, 나는 서울에 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엄마는 나름 파트타이머로 지방에서 매일 반나절 씩 일하고 계셨다.

“지금이 딱 좋아. 용돈도 벌고, 일하는 시간도 괜찮고, 애들도 다 키웠고” 하며 웃었던 엄마의 모습이 떠올라 몇번이나 수화기를 들었다 놨다 했다. 쉬이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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