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에서 매주 10시간. 엄마는 여행이라 표현하셨다.
20년 만에 엄마와 살고 있습니다. 손자 양육을 1년만 부탁드렸는데, 묵시적 갱신으로 5년째 부산에서 서울을 왔다 갔다 하며 두 아이를 키워주십니다. 사랑하는 엄마와 20년 만에 살면서 부딪히는 우여곡절과 추억을 기록으로 남기고, 친정엄마에게 육아를 의지하는 워킹맘들에게 몇 가지 팁도 드리려고 합니다.
손자 육아를 부탁드렸다. 한동안 정적이 흐르더니.
알겠다. 내가 니한테 해 줄 수 있는 것도 없는데 이거라도 해야지. 대신 왔다 갔다 할 거다. 주말에는 내려갔다 다시 올게 아빠도 챙겨야 하니깐.
아 맞다. 내가 놓친 부분이 있었다. 바로 아빠였다. 남편, 집, 수고비 이렇게는 미리 염두에 두었는데 아빠를 생각 못 했다. 졸지에 나는 부모님을 주말 부부로 만들었다. 아빠는 정년퇴임한 지 1년도 안되었고 하실 줄 아는 요리는 몇 개 되지 않았다. 아빠께 양해를 구해야 한다는 것을 생각 못 했다. 다행히 아빠도 오케이 하셨다. 이미 우리가 부산에 가기 전에 두 분이 우리가 부탁할 줄 예상하고 얘기를 하셨다고 했다. 역시, 부모는 늘 자식보다 앞을 내다보신다. 두 분 다 승낙하시고.
“고맙습니다 엄마. 딱 1년만 부탁드려요.” 했던 게 벌써 5년 전. 우리 모두 엄마의 손자 육아가 지금까지 이어질 것이라고는 그때는 생각 못했다.
엄마는 하고 계시던 일을 먼저 정리하셨다. 그리고 난생처음 유럽으로 여행을 다녀오셨고, 몇 주 쉬시고는 나의 복직을 2주 앞두고 서울로 오셨다. 나는 둘째가 6개월이 되는 달, 복직을 했다.
6개월 아기는 태어났을 때 몸무게의 2배는 훌쩍 넘긴다. 여전히 하루에 6번은 분유를 먹고, - 이 얘기는 자는 시간 빼면 2-3시간마다 분유를 타줘야 한다는 뜻이다. - 그리고 이유식을 시작한다. - 또 이 얘기는 분유도 모자라 이유식을 챙겨 먹여야 한다는 뜻이다. - 또, 배밀이하다가 이제 잡고 서기 시작한다. - 이 얘기는 아이가 머리 위에 있는 것을 잡다가 무엇인가를 떨어트리지 않는지, 각진 모서리의 가구에 이마나 눈을 찧진 않는지. 계속해서 아이에게서 눈을 떼면 안 되는 시기기도 하다. 아이에게 눈을 떼지 않으면서 분유와 이유식도 준비하고 아이 먹을거리와 빨래도 해야 하는 아주 중노동이 필요한 시기. 6개월 아기. 60이 넘은 할머니가 손자를 보기는 사실 매우 쉽지 않다.
그리고 이 6개월 아기에겐 3살 터울의 오빠도 있다. 유아 ADHD 인가? 할 정도로 에너지가 많고 갓 태어난 동생에 대한 질투로 동생 보행기부터 침대까지 모두 본인이 차지한다. 이 개구쟁이의 등하원도 책임져야 한다. 날씨가 맑은 날이면 둘째를 유모차에 태우고 첫째와 걸어 다니거나 씽씽이를 태우면 되지만, 날씨가 좋지 않으면 엄마는 둘째를 업고 큰 애를 다독여가며 길 건너 어린이집에 겨우 등하원을 시키셨다.
지금 생각하면, 아니 지금도 너무 죄송하지만.
이때 회사 눈치가 보이더라도 조금 더 늦게 복직할 걸 그랬나 싶다. 너무나도 손이 많이 가던 시기였다. 서울에 아는 사람 한 명 없고, 낯선 곳에서. 애 둘과 조그만 아파트 안에 갇혀 시간을 보냈을 엄마를 생각하면 눈물이 난다. 아들 친구 엄마가 우리 엄마에게
“매주 왔다 갔다 힘들지 않으세요?”
“힘들지요. 그래도 저는 이걸 여행이라 생각하면 즐겁습니다. “
나 듣기 좋으라 하는 말씀이다. 딸이 전문직도 아닌데 길에서 매주 10시간을 보내며 여행이라 생각하신다니. 내가 중소기업이라도 직장을 계속 다니기를 원하시는… 평생 전업주부로 살아온 엄마의 한이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