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트업 프로덕트 고민상담 - 1화
스타트업은 프로덕트가 전부다.
2020년부터 프로덕트에 진심인 스타트업의 대표와 팀원들을 만나오고 있다. 현재를 살고 있는 그들도, 내가 5년 전에 했던 고민들을 안고 있더라. 나는 멘토로서 그들이 가지고 있는 모든 문제를 해결하지는 못한다. 하지만 적어도 그들의 프로덕트가 올바른 방향으로 성장하기 위해 반드시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알고 있다.
그들에게 목이 쉬도록 알려준 말들은 또 비슷한 고민을 다른 누군가들에게도 도움이 될 것이다. 스타트업에서 프로덕트에 대한 고민은 결국 다 비슷비슷하니까.
그렇게 <스타트업 프로덕트 고민상담> 연재를 시작한다.
지수: 뱅크샐러드에서 앱을 2번 닫았던 경험이 있다. 첫 번째 중단은 그야말로 고객의 외면을 받았기 때문이었는데, 제품 론칭 후 마케팅을 돌리고 나서 몇 주? 몇 개월? 너무 오래전 일이라 정확히 기억이 나진 않지만, 밤새워 개발해서 스토어에 오픈하고 퍼포먼스 마케팅을 몇 차례 돌린 후 후에야 '아.. 고객 반응이 쉬원찮네'를 알아차린 것이니, 그다지 빨리 알아차린 건 아니다. 그로부터 3번째 앱이 나오기까지 1년 넘게 걸렸으니까 최소한 1년 정도의 시행착오 비용이 발생했다고 보면 된다.
이보다 더 빨리 알아차릴 수 있는 업무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특히 신사업이라면 프로토타입을 제작하고 잠재 고객의 피드백을 통해 검증해보는 과정을 반드시 가져야 한다. 몇 명 만나본 걸로 확신을 가질 수 있을까 의심부터 할 필요는 없다. 10명을 만났는데 그중 1명이라도 '대박이다'라는 반응이 없다면 스토어에 오픈하고 마케팅을 돌린다 한들 우리가 원하는 만큼의 빵 터지는 성과를 기대하기 어렵다.
지수: 앱을 설치한 고객이 돌아오지 않았다는 건 고객이 외면했다는 것이고, 제품이 애초에 구조적으로 잘못된 것이다. 인정할 수 밖에 없었다. 그도 그럴게 서비스 기획에 참여한 사람 중 누구 하나 가계부를 제대로 써본 사람이 아무도 없고, 기껏해야 구글링 정도로 알아낸 가설 속에서 설계한 제품이었으니까. 물론 업계 전문가만이 제품을 만들 수 있다는 말은 절대 아니다. (혁신은 업계 비전문가가 더 유리하다고 생각한다.) 나를 포함한 당시 팀원들은 고객에 대한 충분한 이해가 없었다. 어쩌겠는가? 고민해봐야 시간만 흐를 뿐이다. 아예 새로운 구조로 시작하기 위해 기존의 제품은 없던 일로 하기로 했다.
두 번째로 론칭한 앱은 고객 반응은 있었으나 아이폰으로 확장이 불가능한 기술(문자 파싱)로 개발해 버린 게 완전 미스였다. 개발자들의 눈물을 외면하고 새로이 제품(세 번째)을 만들어야 했다. 두 번째 앱은 제법 열심히 쓰는 고객들이 있었기 때문에 바로 중단 하진 않았다. 이미 설치해서 쓰고 있는 사람은 영원히 해당 버전으로 쓸 수는 있게 했고, 원하는 사람이 있으면 apk파일을 주기도 했다.
이후 세 번째 앱(현재 운영 중)에 대한 운영비용이 커지면서 두 번째 앱을 유지하는 것조차 버거워졌고, 결국 두 번째 앱은 고객들에게 운영 중단을 고지 후, 단계적으로 중단했다.
지수: 현재 운영하고 있는 제품(웹사이트)을 살펴봤다. 프로덕트 만드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만들어야 된다 싶은 기능들을 어떻게든 다 담으려고 욕심부렸네"라는 생각이 들었다. 맞나? (멘티: 맞다는 듯 웃음)
고객으로서는 "뭐하는 곳이지?"라는 느낌을 받았는데, 사람 느끼는 건 다 비슷하니, 아마 나만의 생각은 아닐 거다.
신사업을 추진하는 초기 스타트업은 타깃 고객군을 정의해야 한다. 우리 제품을 시장에 선보였을 때, 우리 제품을 끌어줄 고객을 정하고, 그들의 선택을 받아야 한다. 그런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제너럴 한 만인'들을 모두 만족시키려고 한다. 물론 우리는 만인의 선택을 받는 것이 목표다. 그러나 첫술에 배부르려고 하지 말자. 처음부터 세상 모든 사람이 만족하는 제품을 만들자는 건 욕심이다. 운이 좋게도 5천만 니즈를 아우르는 아이템을 선택한 것이 아니라면 말이다.
"시장의 누구에게, 어떤 솔루션을, 왜 제공하는가?" 이게 핵심이다. 이 질문에 대해 명확한 한 문장으로 설명하지 못한다면 아직 제품의 방향이 모호하다는 뜻이다. 이 상태에서 팀원들의 아이디어를 다 적용해버리면, 제품을 만드는 사람의 마음은 편할지 모르나, 고객의 혼란은 가중될 것이다.
맞다. 막막할 것이다. 상황은 급하겠지만, 하나하나씩 정리하는 결단이 필요하다. 시장의 누가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사람들인지 정의하고 만나보라. 그들이 원하는 게 뭔지 들어라. 현재 우리가 설계한 제품에 대해 설명하거나 피드백을 받는 건 의미없다. 아마 '괜찮은데요' 정도의 적당한 답변을 들을 것이 뻔하다. 우리가 만든 제품이 정답이라는 확신이 없다면 일단 아무것도 만들지 않았다고 생각해라. 프로덕트를 만드는 사람이 제로에서 부터 고객을 만나봐야 한다.
지수: 스타트업은 밸런스가 중요하다. 때로는 신규 서비스를 공격적으로 우다다다 론칭해야 되는 시기도 있다. 나는 매 분기 새로운 서비스를 내느라, 기존 서비스 운영에 소홀했다. 그럼 그때로 다시 돌아가면 기존 서비스를 신경 쓸 것이냐 하면 아마 그러지 못할 것이다. 3개월마다 참여 프로젝트는 기본 3개에, 동시에 신사업까지 추진하며, 거기다 인사관리며 채용이며... 기존 서비스 유지보수?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 나도 살아야 될 것 아닌가.
유지보수를 포기해야 될 때도 있다. 초기 스타트업에 다니는 사람들이 제발 완벽한 코드, 완벽한 디자인, 완벽한 운영, 그리고 그놈의 완벽한 기획문서에 목매지 말았으면 좋겠다. 그런 걸 요구하는 팀원이 있다면 프로덕트 검증이고 나발이고 지옥같은 협업이 펼쳐진다. 소위 '효율적으로 일하자' 라며 온갖 시스템과 업무 규칙을 만드는 건 수십 수백억 투자받고, 팀원이 수십수백 명이 되고 나서 하자. 스타트업은 원래 엉망진창이다. 받아들여라. 디자이너 한 명이 고객 조사, 기획, 디자인, 프로젝트 매니징까지 하는 마당에, 세분화된 조직구조의 유니콘 기업의 프로토콜을 따라 하는 건 가랑이가 찢어지는 일이다.
우리가 시장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무엇에 집중해야 하는지 전사 차원에서, 특히 대표의 계획과 동기화되어 있어야 한다. 동의가 되지 않는다면 설득해야 하고, 그렇지 않으면 떠나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