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호빗'과 에리히 프롬, 그리고LH사태
반지의 제왕의 이전 이야기를 다루고 있는 ‘호빗’에는 성질 더러운 용 스마우그가 등장합니다. 이 용 스마우그는 베네딕트 컴버배치가 열연을 펼친 걸로도 유명한데요. 그런데 영화에서 스마우그는 아주 탐욕적인 용으로 나옵니다. 금은보화를 끝도 없이 모아도 나눠주기를 거부하죠. 집에 발 디딜 틈이 없을 정도로 금화가 차있지만(부럽다) 용의 탐욕은 그치지 않습니다.
원작의 작가 톨킨은 왜 이런 용의 이야기를 만들어낸 걸까요?
그리고 영화에는 탐욕스러운 또 다른 인물의 이야기가 등장하는데요. 바로 난쟁이들의 왕 ‘소린’입니다. 소린은 처음에는 간지 나는 모습으로 등장하지만, 탐욕에 의해 망가지는 모습을 보여주는 인물입니다. 소린은 스마우그가 빼앗았던 난쟁이들의 보물을 되찾게 되면서 점차 ‘황금의 저주’에 빠져들고 마는데요. 그 모습은 마치 스마우그에게 전염된 것 같이 보이죠.
왜 원작자 톨킨은 ‘황금’이나 ‘보석’에 이런 마력이 있는 것처럼 묘사를 한 것일까요? 용 스마우그도, 난쟁이 소린도 탐욕에 물들게 한 이 ‘황금’ 이야기가 등장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사실 우리가 사는 현실도 영화 ‘호빗’에 나오는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아무리 많은 재산을 모아도 만족할 줄 모르는 사람들은 우리의 현실 속에도 있습니다. 그리고 모두가 부유할 수는 없기 때문에, 그런 소수의 부유한 사람들을 바라보는 보통의 사람들은 마치 ‘소린’처럼 탐욕에 전염되곤 하죠. 스마우그가 실제로 있는 것도 아닌데 우리 세계는 ‘황금의 저주’에 걸린 것처럼 보입니다. 결국 톨킨이 소린의 탐욕을 통해서 보여주고자 한 것이 아마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의 이런 속성이 아닌가 싶은데요.
"동전 한 닢도, 그 한 조각도 나누지 않겠다."
스마우그와 소린이 영화 속에서 한 대사입니다. 영화 속 모습을 보면 의도적으로 소린의 타락한 모습 속에서 용 스마우그의 모습이 떠오르게끔 연출하고 있습니다. 이들의 모습 속에서 우리는 어떤 교훈을 얻을 수 있을까요?
이와 같은 스마우그와 소린의 탐욕에 대해 더 깊이 이해하기 위해서 ‘에리히 프롬’의 이야기를 한번 해보려고 합니다. 에리히 프롬은 『소유냐 존재냐』라는 책으로 유명한 심리학자이자 철학자입니다. 『소유냐 존재냐』에서 에리히 프롬은 사람이 소유의 삶을 추구하는 게 좋을지, 존재의 삶을 추구하는 게 좋을지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데요. 소유의 삶을 추구하는 삶을 ‘소유 양식’으로, 존재의 삶을 추구하는 삶을 ‘존재양식’으로 부릅니다. 에리히 프롬에 따르면 소유 양식은 그 사람이 가지고 있는 재산, 권력, 지식, 사회적 지위 등의 소유에 전념하는 삶의 태도입니다. 반면 존재양식은 그런 소유에 집착하지 않고 자기 능력을 발휘해 성장해 가는 삶의 태도입니다. 이 이론에 따르면, 스마우그나 황금에 잠시 미쳤던 소린은 ‘소유 양식’에 따라 삶을 살아가는 존재라고 볼 수 있죠.
하지만 이들뿐만이 아니라 우리도 소유 양식에 따라 삶을 살아갈 때가 많은데요. 이는 ‘소유’가 현대 자본주의의 기본적인 생존 원리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어떤 가치나 우리의 정체성을 ‘소유’로 증명하는 데 너무나 익숙합니다. 어떤 부동산 어떤 자동차를 가지고 있는지에 따라 사람을 평가하는 경우를 예로 들 수 있죠. 결혼정보업체에서 제시하는 좋은 신랑, 신붓감의 조건 속에 ‘소득 수준’이 들어있는 것을 우리는 그렇게 어색하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어떤 스포츠 스타나, 연예인을 그들의 ‘몸값’으로 평가하는 것도 우리에겐 너무 자연스럽죠. 이외에도 어떤 사람을 연봉 수준이나 소유의 정도로 평가하는 일은 너무나 흔한 일이 되어버렸습니다. 이처럼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자신의 정체성은 곧 소유와 연결됩니다.
소유가 곧 우리 존재를 설명한다면, 소유 양식의 사람들은 더 많이 소유하면 할수록 자기 존재가 확실해지기 때문에 결코 소유에 대한 욕구를 멈출 수가 없습니다. ‘자아실현’은 곧 ‘소유’를 통해 이룰 수 있다는 거죠. 그래서 소유 양식은 필연적으로 탐욕을 부르게 됩니다. 더 많이 소유해야 나의 존재가 더 확실해지니까요. 문제는 소유는 영원하지 않다는 데 있습니다. 소유는 한순간에 불과하고 언젠가 우리 손을 떠나게 되어있습니다. 이런 소유의 불완전성이 소유 양식의 삶에 결국 모순을 가져다주는 것인데요. 아무리 소유하고자 해도 소유물은 언젠가 손에서 떠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나의 소유물이 언제 떠날지 모른다’는 마음이 소유하고자 하는 욕구를 더 강하게 만듭니다.
소유 양식의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어떤 것을 소유 양식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그것을 구속하고 지배하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쉽게 말해 소유해서는 안 되는 대상까지 소유물로 보게 되는 것이죠. 사랑이나 우정, 인간 같은 것들 말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소유물의 가치를 ‘돈’이라는 것으로 치환하는데요. 소유해서는 안 되는 대상까지 소유물로 본다는 것은, 우리의 현실 속에서는 그 모든 것들을 ‘돈’으로 표현한다는 말이기도 합니다. 사실 그러다 보니 돈으로 치환할 수 없는 것들마저도 ‘돈’으로 표현하는 경우가 정말 많은데요. 어찌 보면 우리의 비극의 출발은 이곳에서 출발하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영화 속 탐욕에 눈먼 소린은 자신과 비슷한 처지에 놓인 호수마을 사람들에 대해 공감하지 못합니다. 자신도 용에 의해 모든 것을 잃고 떠돌아봤던 입장인데요, 스마우그에 의해 마을이 폐허가 되어 먹을 것도 부족한 마을 사람들의 도움 요청을 냉담하게 거절하죠. 사람을 있는 그대로 보는 ‘존재양식’의 삶을 사는 사람은 이해할 수 없는 태도입니다. 소린은 어느새 자기도 모르게 사람을 이용가치가 있는 소유물에 가깝게 보고 있는 것입니다. 사람이 살 고죽은 문제를 마주하고도, 자신의 이해득실을 따져서 냉정한 판단을 하게 된 거죠.
하지만, 다행히도 소린은 자기 자신이 황금에 잡아먹히는 환상을 보고 나서 탐욕의 광기에서 벗어나게 됩니다. 에리히 프롬식으로 말하면 그는 소유 양식에서 존재양식으로 삶의 태도를 바꾼 것입니다. 소유에 집착하는 탐욕적인 삶은 결국 그를 파멸로 이끈다는 것을 깨달은 거죠. 그는 우정, 신의, 사랑과 같은 것을 더 중요시하고, 인간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존재양식의 삶’으로 거듭나게 됩니다. 영화 ‘호빗’은 소린의 관점에서 보면 이렇게 삶의 태도가 변화한 사람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 거죠.
“잘 있게, 좀도둑 선생. 자네의 책들, 자네의 안락의자로 돌아가게. 자네의 나무를 심고, 자라는 것을 지켜보게. 사람들이 금보다 고향을 더 귀하게 여긴다면, 이 세상은 더 즐거울 텐데.”
오늘날 우리는 지나친 소유에 대한 집착이 부르는 문제들을 많이 경험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최근 불거진 ‘LH 사태'에 대해 국민들은 큰 분노를 표현하고 있는데요. 특별히 LH의 블라인드에 올라왔던 게시글은 국민들의 분노에 기름을 부었죠. 그런 현실인식들을 볼 때 지나친 소유에 대한 집착, ‘소유 양식’의 삶이 가져다주는 문제들을 우리는 더욱 체감하게 됩니다. 2021년 대한민국에서 가장 이슈가 되는 이야기중 하나는 부동산입니다. 왜 도대체 부동산이 문제가 되는 것일까요. 오늘 에리히 프롬식으로 이야기해보면, 너무나 많은 사람들의 삶이 소유에 전념하는 삶을 살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요?
물론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더 복잡하고 다양한 논의들을 해야 하겠지만, 이런 삶의 형식들이 대다수의 사람들의 삶에 행복감을 높여 주지 못하는 것은 사실인 것 같습니다. 언론이나 매체에서는 부자들의 이야기를 많이 다루다 보니 그런 사람들이 많은 것 같지만, 사실 주변을 보면 부동산 부자들은 많지 않거든요. 다만 우리가 너무 소유 양식의 삶에 매몰되어 있다 보니, 누군가가 부동산 투기를 통해 돈을 많이 버는 것에 대해 동경하고, 어떤 불법적 수단을 동원해서라도 나 또한 그와 같은 입장이 되고 싶어 하는 거죠. 마치 LH직원들이 내부정보를 부당하게 활용해서 땅 투기를 한 것처럼요. 우리는 이처럼 소유에 대한 집착이 결국은 옳고 그름에 대한 기준도 잃게 만들고, 잘못된 행동을 서슴없이 저지르면서도 그것이 잘못인지 모르도록 한다는 것을 가까이에서 경험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나 또한 이에서 그렇게 자유롭지는 않을 겁니다.
물론 소유의 삶을 추구할 건지, 존재의 삶을 추구할 건지는 개인의 선택의 영역입니다. 복잡한 우리의 삶 속에서 기계적으로 둘 중 한 가지만 선택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기도 합니다. 존재의 삶을 추구한다고 모든 소유를 부정해야 하는 것은 아니니까요. '소유' 그 자체가 무조건 부정적이라고 말하는 것도 아닙니다. 다만 현대를 살아가며 우리가 겪는 여러 문제들이 지나친 소유에 대한 집착에서 생겨난다는 점을 생각해볼 때, 영화 호빗이 소린이 던지는 메시지를 조금 더 깊이 고민해볼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ps. 기회가 되신다면 영화 '호빗'을 천천히 정주행 해보시면서, 우리가 겪는 이 문제들에 대해 톨킨이 던지는 메시지를 한번 곱씹어보면 좋을 것 같습니다. 반지의 제왕보다 덜 유명해서 그렇지 꽤나 잘 만들어진 영화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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