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끌어당김과 알아차림

영화 '에반 올마이티', 그리고 칼 융의 '동시성 현상'

by 아웃클라쓰

누군가의 얘기를 하고 있었는데 그 사람이 그 현장에 딱 나타난다거나, 내가 평소에 내내 생각하고 있던 고민에 대한 해답이 책이나 영화를 보고 있는데 갑자기 눈에 들어온다거나 해본 경험이 있나요?


누군가는 그럴 때 그저 '우연의 일치'라고 생각하고 넘기기도 하고, 누군가는 신이 나에게 이런 상황을 허락한 것이라 말하기도 합니다. "호랑이도 제 말하면 온다더니..."하고 웃으며 넘기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런 현상에 대해 깊이 들여다보고, 나름의 이론을 제시한 심리학자가 있었습니다. 바로 심리학자 '칼 융'입니다.



융은 우리에게 많이 알려진 MBTI의 이론적 배경을 제공한 심리학자입니다. 심리학을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지그문트 프로이트'의 제자이기도 하죠(나중에 서로 다른 길을 가게 되긴 했지만요). 융은 앞서 말한 현상에 대해 '동시성 현상'이라고 이름 붙였습니다.


아주 유명한 일화가 있습니다. 칼 융이 치료하던 어떤 내담자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내담자는 아주 이성적이고 합리주의적 성향을 가지고 있었죠. 그 내담자는 약간의 신경증을 앓고 있었습니다. 융은 주로 무의식의 세계에 대해 다루고 이에 대한 치료를 진행했는데, 내담자의 성향 때문에 치료가 진전이 되지 않았습니다. 무의식이니, 꿈의 상징에 대한 해석이니 하는 것들을 '이성적'으로 받아들이지 않았던 거죠. 말하자면 '꿈은 그저 뇌가 만든 이미지에 불과하다'는 식이었던 것입니다.


그러던 어느 날입니다. 이 내담자가 꿈속에서 '황금빛 풍뎅이'를 본 이야기를 꺼냈습니다. 물론 내담자는 '별 의미 없을 것'이라는 단서를 붙였습니다. 그때였습니다. 창에서 '딱딱' 부딪히는 소리가 들립니다. 융은 대화를 멈추고 창가에 다가갑니다. 그리고 창문을 열자 풍뎅이과에 속하는 곤충 하나가 방 안으로 날아들어왔습니다. 융은 그 곤충을 잡아 내담자에게 선물하며 말했습니다.


“여기 당신의 황금 풍뎅이가 있습니다.”


이 사건은 내담자의 심리적 저항을 완전히 무너뜨렸습니다. 융은 이처럼 서로 인과관계가 없는 것 같으나 의미적으로 깊이 연관된 사건이 동시에 일어나는 현상을 '동시성 현상'이라고 불렀습니다.


여러분은 혹시 이와 비슷한 경험을 해보신 적이 있으신가요?



내담자가 가지고 있던 태도처럼, 동시성 현상은 사실 이성적으로 이해 가능한 영역은 아닐지도 모릅니다. 사실 저도 굉장히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성향을 가진 사람이어서, 내담자의 생각이 이해가 되지 않는 것도 아닙니다. 다만 삶 속에서 '황금 풍뎅이 사건'같은, 단순히 우연으로 치부하기엔 너무 절묘한 사건들이 이어지며 삶과 세상에 대한 다른 시각을 일부 받아들이게 되었죠.


저는 이런 현상을 두 가지 키워드로 정리해보려고 합니다. 바로 '끌어당김'과 '알아차림'입니다.


융은 동시성 현상이 일어나는 원인에 대해 여러 가지 설명을 했습니다. 어떤 심리적 전환점이 일어날 때, 삶의 방향이 흔들리며 실존적 질문이 깊어지고 간절해질 때 이런 현상이 나타난다고 보았죠. 저는 이것을 '끌어당김'이라는 단어로 이해하고 싶습니다. 내 안의 무언가가, 나의 실존적 질문에 대해 방향을 제시해 줄 무언가를 계속해서 끌어당긴다는 것이죠.


그러나 끌어당김만으로는 부족합니다. 내가 마주하는 삶의 여러 사건들과 나를 스쳐가는 순간순간 중에서, 내기 미처 보지 못했던 의미 있는 무언가가 숨어있을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그러므로 '알아차림'이 중요합니다. 마치 융이 창을 두드린 '풍뎅이'를 알아차렸듯, 지금 나에게 다가온 사건이, 어떤 순간이 나에게 말하고 있는 무언가를 알아차릴 수 있어야 합니다.


사실 '끌어당김'과 '알아차림'은 한 가지 상태의 다른 설명일 수 있습니다. 굳이 이성적 설명을 시도한다면, 나의 내면의 절실함이 외부의 신호를 포착할 준비를 마친 상태라고도 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렇게 정리를 해나가다 보면, 영화 '에반 올마이티'의 한 장면이 떠오릅니다.



(영화 에반 올마이티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잘 나가던 아나운서인 '에반'은 정치인이 되어 승승장구합니다. 정신없는 하루하루를 보내던 어느 날 그는 신의 계시를 받습니다. '방주'를 만들라는 것이었죠. 방주 이야기를 하니 바로 눈치채신 분도 있겠지만 이 영화는 '노아의 홍수' 이야기를 현대적으로 각색한 이야기입니다. 에반은 처음에는 신의 계시를 거부하고 도망쳐보려 하지만 결국 신이 제시한 미션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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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때 여러분이 '에반'의 부인이라면 어떠실 것 같나요? 집 마당에는 거대한 배가 지어지고 있고, 갑자기 어디선가 동물들이 몰려들기 시작합니다. 에반은 자기의 일은 내팽개치고 방주를 만드는데 여념이 없습니다. 남편은 (정신 나간 것처럼 보이는) 자기 미션에 지나치게 집중한 나머지 일도 가정도 돌아보지 않습니다.


아내 '조안'은 결국 아들들과 함께, 자신과 아이들을 지키기 위해 집을 떠납니다. 그렇게 집을 떠난 조안은 우연히 식당에서 웨이터로 가장한 '신'을 만납니다. 조안이 웨이터에게 묻습니다.


“하나님께 기도하면, 하나님은 그 사람이 원하는 걸 그냥 주시나요?”


웨이터, 아니 신은 대답합니다.


“아니요. 하나님은 기회를 주죠.”

"누군가 인내를 달라고 기도하면 신은 그 사람에게 인내심을 줄까요? 아니면 인내를 발휘할 수 있는 기회를 주시려 할까요?"

"용기를 달라고 하면 용기를 주실까요? 아니면 용기를 발휘할 기회를 주실까요?"

"만일 누군가 가족이 좀 더 가까워지게 해달라고 기도하면...

하나님이 뿅 하고 묘한 감정이 느껴지도록 할까요? 아니면 서로 사랑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해 주실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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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대화를 통해 조안은 이 상황을 ‘기회’로 인식하게 되고, 이후 에반의 변화를 보며 아이들과 함께 돌아가게 됩니다. 방주는 완성되고 에반과 조안, 아이들은 함께 위기를 극복하며 가족은 회복됩니다.


저는 여기에서 '알아차림'을 생각합니다. 조안은 기도합니다. 우리 가족이 좀 더 가까워지기를, 우리 가족이 화합하기를. 그러나 그녀에게 나타난 사건과 상황은 마치 가족이 사이를 더 멀어지게 하기 위해 일어난 일들 같습니다. 신과의 대화에서 그녀는 깨닫습니다. 사실 내가 마주한 이 상황이 바로 '기회'였다는 것을요. 그제야 조안은 '알아차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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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동시성 현상'과 같은 일이 여전히 이성적으로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저는 우리가 겪는 수많은 사건과, 우리가 만나는 많은 사람과의 인연이 '이성', '합리성'이라는 틀만으로는 해석되지 않을 수 있다는 것도 알고 있습니다.


삶의 실존적 고민을 마주하는 순간, 때로는 기도하기도 하고, 답을 찾아 헤매기도 합니다. 그 안에는 어떤 희미한 믿음과 희망이 있습니다. 나의 '끌어당김'이 내가 나아갈 새로운 길을 찾을 기회를 주기를, 그리고 나에게 주어질 기회를 '알아차리기를'. 오늘도 그래서 우연으로 치부할 수 있는 사건과 만남들을 조금은 다른 시각으로 해석해보려 합니다. 그 안에 내가 알지 못하는 우주의 거대한 질서와 어떤 의미가 있을지도 모른다고요.


오늘 길을 지나다 문득 깨닫습니다.

늘 오가던 길에 서 있던 나무 한 그루가, 웬일인지 뭉클하게 다가옵니다.

우연히 마주친 누군가와의 만남이 소중합니다.

우리는 아마도 그냥 만나게 된 것이 아닐 겁니다.


우리가 겪고 있는 수많은 삶의 순간들은 우연일까요, 필연일까요?

우리가 만난 것은 우연일까요, 필연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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