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화는 시스템이다.
내가 해왔던 일, 그리고 현재 하는 일의 특성상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접할 수밖에 없다. 그러다 보니 어느새 사람의 성향과 특징을 바라보는 나만의 시각이 생겨나게 되었다. 그 틀 안에서 사람에 대해 나도 모르게 '예측'같은 것을 하기도 하는데, 어느 정도 예측한 것들이 맞아떨어지는 경우들도 있다. 우연의 일치인지 아니면 예측을 잘했기 때문인지는 알 수 없지만, 이런 일이 반복되면 내가 가진 생각의 틀이 강화되기 마련이다.
사람에 따라서, 실제로 기가 막히게 사람의 성향을 잘 파악하는 분들이 있기는 하다. 그러나 그렇게 사람의 성향을 잘 맞추는 경우 어떤 부작용이 있다. 다 그런 것은 아니겠으나, 사람을 잘 보는 사람일수록 어떤 사람의 성향과 인성에 대해 '결정론적'으로 바라보는 경향이 있다. 사람의 성향을 마치 고정적이고 변화 어려운 것으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가끔 이런 멘트들이 뒤따른다. "거봐 내가 뭐라고 했어. 나는 사람 한번 딱 보면 안다니까." 물론 그들의 예측 중에 틀린 부분은 기억 속에서 선택적으로 편집되는 경우들도 적지 않다.
최근에 업무상 어떤 분과 이야기할 기회가 있었다. 속상하게도 사람을 굉장히 고정화된 시각으로 바라보는 분이었다. 우리가 많이 활용하는 MBTI, 더 나아가서 사주까지 사람을 바라보는 여러 도구들로 사람의 성향을 평가했다. 그분은 마치 그것이 고정된 것이어서 변하지 않는 것처럼 여기는 듯했다. 대화를 마치고, '사람의 변화'를 두고 깊은 고민을 하게 되었다.
사람은 변할 수 있을까?
너무 어려운 질문이지만, '교육'이라는 분야에서 일을 해나가는 이상에는, 변할 수 없다는 가정으로 일을 할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사람이 변할 수 없다는 것이 '불변의 진리' 같은 것이라면, 교육이라는 것이 어떤 의미를 가질 수 있을까?
나는 사람이 변할 수 있다는 것을 믿고 교육에 임하고 있다. 다만 동시에, 변화가 몹시 어렵다는 사실도 인정한다. 여기에는 여러 가지 많은 문제들이 복잡하게 얽혀있지만, 중요한 원인으로 변화에 대한 '접근법'이 있다고 본다. 흔히 변화에 대해 저지르는 일반적인 실수는 변화의 책임을 개인에게만 지우는 것이다.
변화를 가로막는 요인들
어떤 사람의 성격적 특성이 형성되는 데에는 '아주 복잡한 배경'이 있다. 성격상 어떤 문제가 발생하는 경우도 마찬가지로, 한 가지의 원인만으로 규정할 수 없는 복잡함이 있다. 이런 문제들을 파악하는 것은 참 어려운 일이다. 그런데 이런 복잡성을 보지 않고 '개인의 문제'로 모든 문제를 환원시켜 버리면, 예를 들어 '너의 의지가 문제야', '너는 게을러서 그래', '원래 너는 천성이 그렇게 생겨먹은거야'라는 식으로 접근하면 '진짜 문제'는 들여다볼 수 없게 된다. 극단적으로는 개인을 마치 죄인인 것처럼 '정죄'를 하는 일이 발생한다. "누구누구는 하던데 너는 왜 못했어?" 같은 식으로 비교하고 비판한다.
물론 어떤 사람이 가진 성격상의 특징을 만든 원인과 책임에 그 사람 자신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을 것이다. 다만 모든 문제를 개인의 내적 특징으로 몰아가는 순간, 변화를 가로막는 '진짜 문제'를 놓치게 된다. 사람을 '고정적 존재'로 인식하는 것은 변화를 가로막는다. 그러나 사람이 변화 가능하다고 믿는다 할지라도, '진짜 문제'를 바라보지 못하고 문제를 개인화해서 단순화하는 태도 역시 변화를 가로막는다.
진짜 문제
반지하 방에 살고 있는 대학생이 있다. 그는 아침에 잘 일어나지 못한다. 그런 대학생을 보고 '너는 게을러서 그래'라고 말하는 것에 대해 생각해 보자. 과연 정말 그렇기만 할까?
사실 이것은 나의 경험이다. 대학생 시절, 반지하방에 살았던 경험이 있다. 햇빛이 잘 들지 않았고, 방의 상태가 좋지 않아 곰팡이 냄새 같은 퀴퀴한 냄새가 났던 기억이 난다. 여름이면 모기와의 사투를 벌여야 했다. 어느 여름날 실수로 창을 열고 잠을 잤는데, 새벽에 깨어보니 벽에 붙은 수십 마리의 모기를 보고 기겁한 적이 있다. (놀랍게도 우리 집에 놀러 왔던 친한 형의 '탱킹' 덕에 모기의 공격에서 일부 자유로울 수 있었다!) 아마 비슷한 환경에서 비슷한 경험을 해본 분들도 없지는 않을 것이다.
과연 이 상황에서 '너는 게으르다'는 말로 모든 이유가 설명이 되는 것일까? 숙면을 취하거나 아침에 일어나기 괜찮은 환경 조건을 정비하지 않는 한 비슷한 문제는 계속 반복될 것이다.
최근에, 전 세계적으로 청소년의 (수업 중) 스마트폰 사용을 금지하는 경향이 확산되고 있다. 우리나라도 초·중·고교 내에서 스마트폰 금지법이 시행되고 있다. 이와 관련하여 여러 논란이 있지만, 명확한 진실은 있다. 스마트폰의 사용이 주의집중을 방해하고 학생들의 학업성취도에 영향을 준다는 것이다. 최근 발표되어 충격을 준 Z세대(1997~2010년생) 표준화 학업 평가 연구 조사 결과도 스마트폰 등 디지털 기기 사용 빈도가 청소년의 학업 성취도 및 주요 인지 능력에 큰 영향을 주었다고 분석하고 있다.
'맹모삼천지교'라는 말이 여전히 통용되는 데는 이유가 있다고 생각한다. 교육학 연구에서 '학업성취도'와 '동료 효과(Peer Effects)'는 밀접한 상관관계를 갖는다는 것이 꾸준히 확인되어 왔다. 어떤 환경 속에 놓이냐에 따라 학업성취도에 분명한 차이가 생길 수 있다는 것이다.
종합하자면, 결국 어떻게 환경 조건을 정비하고 시스템을 구축하느냐에 따라 사람의 변화 양상은 달라진다. 이처럼 진짜 문제는 나를 둘러싼 환경, 또는 삶을 구성하는 '시스템'에 있을 때가 많다.
변화는 '시스템'이다.
그러므로 진짜 변화는 이 사람이 놓인 환경과 삶의 시스템을 바라보는 데에서 출발한다. 여기서 시스템이란, '어떤 사람을 둘러싼 삶의 환경, 관계, 루틴이나 습관과 같은 구조의 종합'이다. 이와 같은 '삶의 시스템'을 진단하고, 부정적인 행동 양식을 만든 부분을 발견해서 제거하거나 교정하는 것이 변화의 핵심이다.
예컨대, 생활의 '루틴'을 구축하는 것도 일종의 '시스템'을 만드는 것이다. 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드는 여러 조치들, 소위 말하는 '넛지'들을 체계적으로 삶의 루틴에 포함시키는 것이 나의 행동 변화를 유도하는데 도움이 된다. 나는 사무실 책상에 늘 지금 읽는 책을 딱 올려놓는다. 밥을 먹고 간단히 산책을 하고 책상에 앉으면 책이 눈에 들어온다. 집어 들고 5페이지만 읽겠다고 시작하면 어느새 10분 20분 책을 읽게 된다. 이렇게 사소한 요소들로도 작게나마 행동의 변화를 이끌 수 있다.
변화를 함께할 사람들의 커뮤니티를 만들거나 그 안에 포함되는 것도 일종의 시스템을 만드는 것이다. 이것이 100%를 보장하진 않지만 적어도 나 자신의 힘만으로 모든 것을 하려고 할 때보다는 한결 나아진다. 런닝을 하려면 런닝 크루 같은 커뮤니티에 들어가서 관계를 구축하는 것이 훨씬 효과적이다. 교육에서만 '동료 효과'가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운동을 하려면 운동을 열심히 하는 사람들과 관계를 맺는 것이 좋다.
한편으로는 내가 집중이 잘 되는 환경, 내가 부지런해지는 어떤 트리거를 찾아야 한다. 가령 나는 딱 가서 앉으면 집중적으로 일을 할 수 있는 나만의 카페가 있다. 정해진 시간에 할 일이 있을 때는 그 카페로 향한다. 집에서는 전혀 잡히지 않던 일들이 그곳에서는 술술 풀리기도 한다. 요약하자면 '내가 누구인지'를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삶의 변화를 꿈꾼다면, 나 자신에 대한 관찰과 이해는 필수적이다.
나의 책임
앞서 언급했듯이, 시스템이 중요하다고 개인 그 자체가 배제된다는 것은 아니다. 결국 내 삶의 시스템을 바꾸기 위한 노력을 기울이는 출발은 '나의 마음' 으로부터 출발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사람은 변할 수 있을까? 나는 '사람은 변화할 수 있다'고 믿는다. 하지만 그 변화가 쉽지 않다는 것도 잘 알고 있다. 나는 우리의 삶에서 선한 의지를 갖는 것이 중요하다고 믿는다. 그러나 그만큼이나 의지를 실현시킬 '지혜로운 방법'을 갖추는 것 역시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오랜 시간 사람의 변화에 대해 고민하며 방법을 찾아왔던 입장에서 내린 나름의 결론이다.
지금 삶의 변화를 꿈꾸고 무언가 새로운 시도를 하고자 한다면, 일단 마음을 먹되 '하면 된다'는 식의 구호만 외치지 말자. 나를 둘러싼 삶의 구조를 바꿀 지혜로운 방법을 찾아보자. 근본적으로는 '나는 누구인가'를 이해하는 과정이 꼭 함께 가야 한다. 어렵지만 그래야 한걸음이라도 전진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