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 머리 짐승은 거두는 게 아니라는 말을 생각하며
'검은 머리 짐승은 거두는 게 아니다'라는 말이 있다.
먹이고 입히고 잘 키워놨더니 받은 은혜는 생각하지 않고 배신하거나 심지어 원수로 갚는 이들을 두고 하는 말이다. 이 말의 바탕에는 사람의 천성이란 고약한 것이어서, 쉽게 바뀌지 않는다는 생각이 깔려 있다. 사람을 '검은 머리 짐승'이라고 표현하는 것에서 그렇다.
비슷하게 요즘 많이 통용되는 말로 '사람은 고쳐 쓰는 게 아니다'라는 말이 있다. 이 말에는 더 노골적으로 '사람은 잘 변하지 않는다'는 생각이 드러난다.
나도 비슷한 경험을 해봤던 입장에서, 이와 같은 말들이 수긍이 가는 면도 있다. 하지만 질문이 뒤따른다. 나도 한 명의 '사람'이기 때문에 남는 찝찝함 때문이다.
사람은 정말 변할 수 없는 걸까?
나는 정말 변할 수 없는 걸까?
사람은 변할 수 있는가에 대한 질문
사람이 변하는 것에 관한 이야기는 너무 포괄적이어서, 몇 가지 문제로 쪼개어 봐야 한다.
사람이 변한다는 것은 무엇인가?
생물학적 측면과 인간의 정신적 측면 중 무엇의 변화를 말하는 것인가?
만약 정신적 측면의 변화를 말하고자 한다면 정신의 '무엇'이 변한다는 것인가?
이렇게 분류를 해보고 정리해 보면 우리가 흔히 사용하고 있는 '사람이 변한다'는 말이 굉장히 복잡한 이야기임을 알 수 있다. 그렇기에 어떤 각도에서 어떻게 바라보느냐에 따라 사람은 변할 수도 있고, 변하지 않을 수도 있다.
먼저 사람의 생물학적 측면은 반드시 변한다. 우리는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성장하고 늙고 병들기도 한다. 세월의 흐름과 인간이 늙어가는 것은 아직까지는 그 누구도 막을 수 없는 변화이다. 다만 우리가 흔히 사람은 변한다고 말할 때는 생물학적 변화보다는 '정신적 변화'를 말할 때가 많다.
그렇다면 정신적 측면은 어떨까?
어린아이 시절의 우리의 정신과 성인일 때의 정신, 그리고 노년기의 우리의 정신은 동일할까?
'정신'이라는 개념 역시 너무 복잡하고 어렵기 때문에, 자세하게 논의를 하기 시작하면 끝도 없을 것 같다. 일단은 폭넓게 통용되는 정신의 개념으로 논의를 이어가 보자.
정신(精神)은 육체나 물질에 대립되는 영혼이나 마음, 사물을 느끼고 생각하며 판단하는 능력 또는 그런 작용, 마음의 자세나 태도, 사물의 근본적인 의의나 목적 또는 이념이나 사상 등을 가리키는 말이다. - 표준국어대사전
위의 정의에 따르면 정신 역시 '반드시 변한다'. 그중 영혼과 같은 실체를 논하기 어려운 부분을 제외하고, '사물을 느끼고 생각하며 판단하는 능력'에 집중해서 생각해 보면 사람의 정신은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지속적으로 변한다.
어린아이가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 사물을 바라보고 느끼며 판단하는 방식과 청소년기, 성인기의 그것은 결코 동일하지 않다. 삭막해진 어른의 시선을 향해 '동심으로 돌아가자'라는 말을 하는 것은 그 자체로 우리가 변했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같은 성인이라 해도 청년과 중장년, 노년기의 정신은 또 다르다. 이처럼 인간 정신은 시간의 흐름에 따라 계속해서 변하고 바뀌기 마련이다.
천성은 변하지 않는다.
도대체 그럼 우리가 말하는 '사람은 변하지 않는다'는 자조 섞인 속담이나 말들에서 '변하지 않는 것'은 무엇일까?
이때 변하지 않는 인간의 속성을 우리는 보통 '천성'이라고 부른다.
[천성]
본래 타고난 성격이나 성품. - 표준국어대사전
정리하자면, 인간의 정신은 시간에 흐름에 따라 반드시 변화하지만 인간의 '천성'이라고 부르는 영역은 잘 변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극단적으로는 '변할 수 없다'는 것이다. '성격', '성품' 역시 아주 복잡한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주제이지만, 오늘은 더 깊이 들어가지는 않으려고 한다.
'성격'이라는 측면에서, 우리는 사회적 조건과 환경에 따라 성격을 얼마든지 바꿔갈 수도 있다. 집에서의 나의 성격과, 직장이나 학교 등에서 나타내는 나의 성격의 모습이 달라지기도 한다. 어떤 사람과 함께 하느냐에 따라서도 나의 성격이 다르게 표출되기도 한다. 맥락과 상황, 사람에 따라 달라지는 부분들이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사람의 기저에 깔려있는 본래의 속성들은 변하지 않고 남아있다고 생각한다. 특정 상황이 되면 잘 드러나지 않던 천성이 드러나게 되고, 때로는 그것이 부정적인 방식으로 표출되어 사회적으로 물의를 일으키거나 조직이나 개인에게 해를 끼치는 경우들이 있다. 그럴 때 우리는 '사람은 고쳐 쓰는 게 아니다'라는 말을 하게 된다.
나는 생각이 많다. 생각이 많아서 행동보다 생각이 앞선다. 이런 천성은 잘 바뀌지 않는 것 같다. 삶의 훈련을 통해, 상황과 환경에 따라 발현되는 모양들은 조금씩 달라지지만 결정적인 상황과 순간에서는 내 천성이 더 극명하게 드러난다. 근본적으로 이런 성향은 나쁜 것도 아니고 좋은 것도 아니다. 어떤 상황에서 어떻게 그것을 잘 조절하고 활용하냐의 문제이다.
나는 내 천성을 극복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80%의 준비되면 실행한다'는 원칙을 세웠고 지키고자 노력했다. 그런 측면에서 나는 '변했다.' 그러나 여전히 중요한 선택의 기로에서는 망설이며 고민하는 시간이 길다. 그런 측면에서는 '변하지 않았다.'
결론적으로 사람의 천성은 잘 변하지 않지만, 적절한 훈련과 상황에 대한 통제가 함께하면 천성이라 할지라도 적절하게 제어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어떻게 훈련하고 어떻게 상황을 통제할 수 있을까?
너 자신을 알라
출발은 바로 '나 자신에 대한 이해'이다. 내가 가지고 있는 천성, 근본적인 성향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중 어떤 것이 어떤 상황에서 어떤 식으로 표출되고, 경우에 따라 부정적인 형태로 표출되는 것은 무엇인지 스스로 파악할 필요가 있다.
다음으로는 이 성향이 어떤 식으로 조절될 수 있는지를 발견하고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특별히 부정적인 형태로 나의 성향이 나타날 경우에 대한 조절을 할 수 있는지 없는지가 관건이다. 곁에 나를 제어해 줄 수 있는 성향의 사람과 함께하거나, 의도적으로 컨트롤할 수 있는 나만의 루틴을 개발해야 한다.
사람은 변할 수 있다/없다는 이야기는 사실 아주 복잡하고도 어려운 이야기이다. 나는 정말 어렵지만 사람은 분명히 변화할 가능성이 있는 존재라고 생각한다. 타고난 조건과 천성을 크게 바꿀 수 없다고 하더라도, 나를 이해하고 나를 다스릴 수 있는 기술들을 익혀간다면 분명히 더 나은 사람으로 변할 수 있다고 본다. 이런 믿음이 없다면 인간의 삶이란 바짝 메마른 사막처럼 너무 무미건조해질 것 같다.
교육과 변화
그러므로 나에 대한 배움과 훈련의 시간을 갖는 것이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결국 이것은 '교육'과 깊이 연결되어 있다. 교육을 통한 배움과 훈련이 나를 이해하고 나를 다스릴 수 있는 기술을 익힐 수는 계기를 마련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나는 교육의 목표에는 결국 사람의 성장과 변화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우리가 한 세기 동안 받아왔던 교육들은 변화와 성장보다는 암기와 주입, 순응과 획일화에 그 방점이 찍혀있었다. 시대가 변화하는 만큼 교육이 변화해야 한다면, 나는 우리 교육이 '자기 이해'의 바탕에서 나 자신을 더 나은 사람으로 스스로 이끌어갈 수 있는 사람이 되도록 만드는 교육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개인적으로 새해에는 이런 문제의식을 담은 교육이나 프로그램을 만들어보고 싶다.
새해를 맞이하며
우리는 우리를 이해하고 다스릴 수 있는 배움의 시간을 가져본 적이 거의 없었다. 사실 '사람은 고쳐 쓰는 게 아니다'는 말속에는 은연중에 자기 자신을 향한 자조 역시 담겨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러니 아직 도전해 본 적이 없다면 변화를 위한 도전을 시도해보았으면 한다. 새해가 시작된 지금, 만약 올해 내가 어떤 변화를 이룰 수 있을까 고민하고 있다면, 먼저 '나를 이해하는 것'으로 노력의 첫출발을 시작해 보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