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rt 20 – 죽을 때만큼은..
군대에서의 삶은
마치 낡은 흑백 필름처럼,
그런 시간들의 반복이었다.
반복되는 하루 일과, 훈련.
군대… 그 속에서의 희로애락.
그렇게 나는 점점 적응해나가고 있었다.
나는 가끔 너를 생각했고,
가끔은 그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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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1년쯤 지났을까.
어느 날, 내게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그리고 나는, 그 전화를 받았다.
“지안아… 나야… 영아야…”
낯설 만큼 떨리고 약한 목소리.
희미했지만, 단번에 알아들었다.
내 심장은 그 어느 때보다 심하게 요동쳤다.
너무 놀란 나머지
무슨 말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그런데 그 목소리엔,
기쁨도, 분노도 없었다.
그저… 너무 약한 목소리.
애써 티 내지 않으려는 목소리…
나는 당황했고, 낯설었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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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너는 조용히,
마치 오래전부터 마음속에 써 두었던 편지를 읽듯
말을 이어갔다.
“나쁜 놈아…”
“너 정말…”
“너… 다른 사람 사랑하고, 결혼하고, 행복하고…
그렇게, 그렇게… 다 좋은데…”
“근데… 근데…
너 죽을 때만큼은… 나만 생각해 줘…”
“그래야 덜 억울할 것 같아…”
너는 목이 메어왔고,
그다음 말은 잘 들리지 않았다.
기억도 가물가물하다.
하지만,
너의 마지막 말만큼은 지금도 선명하다.
“그래도 사랑이 뭔지…
너 덕분에 알았어.
고마워.”
뚝.
전화는 그렇게 끊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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움직일 수가 없었다.
나는 오래도록 수화기를 쥐고 있었다.
머릿속이 너무 복잡했다.
그렇게… 너무 복잡했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또 한 통의 전화가 왔다.
이번엔 네 오빠였다.
“어제… 영아가 하늘나라로 갔어요.
전화번호하고 이름이 적혀 있어서…
혹시나 하고 연락드렸어요.”
그 말을 듣고도,
나는 멍했다.
눈물도, 슬픔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저 아무 생각도 들지 않았다.
몸이 얼어붙은 것 같았고,
시간도 멈춘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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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개월 전,
아버지의 부고 소식도 그랬다.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나는 현실을 부정했고, 믿지 않았다.
슬픔도 크지 않았고,
눈물도 제대로 흘리지 않았다.
장례까지 치렀지만
군대 안에서,
나는 여전히
집에 아버지가 있다고 믿었다.
그렇게 너의 소식도
갑자기 들려왔다.
어쩌면
감당할 수 없는 소식들이
나를 더 무덤덤하게 만들었는지도 모른다.
그렇게,
무덤덤하게 시간이 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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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진짜 슬픔은
시간이 조금 흐른 뒤에야 찾아왔다.
감당할 수 없는 슬픔이 밀려왔다.
군대라는 곳을
지금 당장이라도 뛰쳐나가고 싶었다.
여기 있는 것 자체가 참을 수 없었다.
소리 내어 펑펑 울고 싶은데
그럴 수 없어
답답해 미쳐버릴 것 같았다.
나는 화를 참아냈다.
그리고 밤이 되었다.
침낭 속에 몸을 숨기면
눈물이 하염없이 흘렀다.
숨 죽이며 울었다.
그리고 또 밤이 오면,
다시 침낭 속으로 숨어
조용히 울었다.
또 밤이 오면
어둠 속에 몸을 숨기고
눈물만 흘렸다.
그렇게,
침낭 속에 몸을 숨기면
눈물이 자동으로 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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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가 보고 싶었고
너도 보고 싶었다.
그리고 네 말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죽을 때만큼은 나만 생각해 줘…”
그 말이
내 가슴을 계속 울렸다.
나는 울었고
또 울었다.
숨이 막히고,
목이 메고,
잠들지 못하는 밤이 계속됐다.
혼자 너무 외로웠을 너를 생각하면,
혼자 무서웠을 너를 생각하면,
혼자 감당했을 너를 생각하면…
그렇게 너를 혼자 뒀다는 게,
나는 너무 미안했다.
너무 미안했다.
정말…
미안하다는 말로는
표현할 수 없을 만큼
미안했다.
너는 혼자서
그 아픔을, 그 외로움을, 그 무서움을 견디며
나를 생각해 줬을 너는…
나를 사랑해 줬을 너는…
정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