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일침프와 드롭박스로 본 새로운 브랜드 디자인
리브랜딩은 성장하는 기업에게 피할 수 없는 관문이 되었다. 시대가 빠르게 변하는 만큼 트렌드도, 사람들의 생각도 변하기 마련. 브랜딩에 투자하지 않는 것은 파워레인저 타이즈를 입고 2018년에 히어로 영화를 찍는 것과 다름 없다. 하지만 너도나도 리브랜딩하고, 차별화된 신생 브랜드들이 나타나는 시점에서 리브랜딩이 오히려 새로움을 반감시키기도 한다.
2010년대의 트렌드를 주도하는 성장 기업은 디지털 프로덕트를 보유한 IT 기업들이다. 구글, 마스터카드, 유튜브, 인스타그램, 마이크로소프트 등 초거대기업들은 깔끔하게 정리된 미니멀한 로고로 변화하기 시작했고, 패션과 F&B 산업들 또한 같은 변화를 꾀했다. 최근 내가 정말 좋아했던 서비스 메일침프가 리브랜딩 했는데, 이를 계기로 요즘은 리브랜딩 트렌드가 무엇인지 4가지로 짚어보았다.
플랫하게 로고를 다듬는 것은 리브랜딩의 공통적인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로고를 더 복잡하게 디자인한 케이스는 아직 못 봤다. 오리지널 로고의 형태와 컬러를 유지하되 그라데이션이나 셰도우 등 구체적으로 묘사된 부분들을 제거하고 선명하게 다듬는다. 로고는 깔끔하게, 브랜딩 아웃풋은 자유롭고 풍부하게 나아가는 것이 오랜 트렌드. 로고만 보면 이게 리디자인이야?싶을 정도로 작은 변화라고 보일 수 있는데, 거대 기업인 만큼 소비자와 기존 방식 그대로 소통하려면 아주 큰 변화를 꾀하기는 힘들다. 지난 글에서 언급했듯 스큐어모피즘에서 플랫디자인으로 넘어가며 기하학적인 도형과 패턴을 활용하고, 로고에 사용되는 컬러를 단순화하며 전반적인 Minimalization이 이뤄진다.
왜 미니멀한 디자인이 트렌드가 되었을까? 브랜딩은 브랜드의 이미지와 메시지, 방향성을 설계하는 작업이다. 과거의 브랜딩은 90%가 로고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디자이너의 목표는 '사람들에게 각인될 수 있는 로고'를 잘 만드는 것. 로고는 수많은 소비자들에게 전달될 '제품' 혹은 '가게'에 머물렀다. 하지만 요즘의 브랜드들은 제품만 팔지 않는다. 이런 진부한 말을 내가 쓰게 될 줄은 몰랐지만 이제는 경험을 판다. 흔한 예로 YG가 고깃집을 하고, 신세계 백화점이 호텔을 만들고 현대카드가 음악 공연을 만드는 컨버전스의 시대다. IT기업들도 마찬가지다. 구글은 광고, 인공지능, 검색, 클라우드 등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고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 유튜브는 SNS를 넘어 크리에이터 문화를 창조하고 있다.
그렇다보니 하나의 로고로 브랜드 가치의 모든 것을 표현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워진다. 예전엔 나도 로고의 조형성에 심혈을 기울였지만 초반에 잡은 아이디어가 바로 다음 달에 확장될 비니지스에 어울리지 않게된 경우도 허다했고, 그 때마다 리브랜딩을 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그래서 큰 기업일수록 확장가능성을 지닌 플렉서블한 로고를 추구하게 되고, 그 초석이 심플하고 플랫한 로고였다고 할 수 있다.
요즘은 새 옷을 갈아입는 것에 그치지 않고 하나의 거대한 세계관을 구축하고, 소비자와의 모든 접점을 시스템화하는 시도가 이뤄진다. 큰 기업일수록 내부 디자이너도, 협력사 디자이너도 많다보니 그 접점을 통제하기 힘들다. 그렇기 때문에 일러스트레이션이나 사진, 아주 작은 아이콘까지도 구체적인 가이드를 만든다.
주목하고 싶은 시점은 2015년 구글의 리브랜딩이다. 아무래도 구글이니까, 구글의 리브랜딩 테마가 IT 기업의 디자인 트렌드를 주도하고, 많은 디자이너 분들이 이에 영향을 받았으리라 생각한다.
구글은 로고 뿐만 아니라 컬러, 서체, 일러스트레이션, 모션, 인터렉션 등 보여지는 모든 것들을 시스템화했다. 가이드라인을 넘어 디자인 시스템을 구축한 것이다. 아이콘 스타일, 하위 서비스들, 그에 따라오는 UI 변화도 놀라웠다.
에어비앤비는 올해에 전용서체인 Cereal을 발표했다. 꽤 오래 전에 Visual Language를 설계하며 개발자, 디자이너, 기획자 사이의 커뮤니케이션을 효율적으로 개선해나갔는데, 에어비앤비는 비주얼 랭귀지라고 표현했지만 VIS (Visual Identity System), Design System 등 회사마다 다양하게 표현하는 듯하다. 이를테면 토스에서는 TDS(Toss Design System)이라 부르더라.
에어비앤비는 여행과 숙박, 액티비티가 많다보니 사진 가이드가 중요하다. 디자인 블로그나 프로모션 자료들을 보면 즐겁고 행복해보이는 순간을 ‘자연스럽게’ 포착한 사진들로 구성되어있다.
앱 내에서의 아이콘과 레이아웃, 공통적인 구성들도 시스템화해 반복 작업을 줄이고 서비스의 일관성을 효율적으로 유지한다. 특히 글로벌 서비스일수록, 사용자가 많을수록 ‘시스템화’하는 것이 중요할 것 같다.
요즘은 온라인-오프라인, B2B-B2C를 넘나들며 브랜드 메시지를 담을 수 있는 아웃풋이 산재해있다. 그렇기 때문에 다양한 레이아웃과 머테리얼에 유연하게 적용될 수 있는 아이덴티티가 필요하다. 그래서 대부분의 리브랜딩 작업이 미니멀한 로고로 일원화되는 경향을 보인다.
이를테면 마스터카드 리브랜딩을 보면 그냥 원 두 개를 겹쳐놓은 것이다. 물론 초반엔 펜타그램이 매너리즘에 빠졌다고, 모든 리브랜딩이 미니멀함으로 귀결된다는 비판이 있긴 했지만 내가 보기엔 저게 최선이었던 것 같다ㅎㅎ... 원 두 개를 겹치는 오버레이, 빨주노를 사용한 것으로 아주 단순한 모티프를 구현해냈고 성공적이었다고 느껴진다. 그 원 안에 사진을 넣어도 되고, 원으로 패턴을 만들 수도 있고, 크고 작은 원의 변주로 일관된 이미지를 전한다.
서체가 궁극의 브랜딩이라는 말을 굉장히 좋아하는 편이다. 브랜딩은 기업이 소비자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 추구하는 방향성을 드러내는 방식인데 사실 일상 생활에서 우리가 접하는 커뮤니케이션은 대부분이 문자다. 광고카피, 슬로건, 제품명, 각종 인쇄물 등 글자가 안 들어가는 곳이 없다.
특히 많은 것들이 디지털화된 요즘엔 기업 서체가 있다면 디자인, 개발, 마케팅에 굉장히 효율적이다. 디자인을 모르는 마케터여도 간단한 서식에 기업 서체를 쓰면 되고, 웹이나 앱에 기업 서체 임베딩해서 쓰면 마찬가지로 브랜드 일관성을 아주 쉽게 유지할 수 있게 된다. 대표적으로 애플의 샌프란시스코, 구글 산스, 삼성 샤프 산스 등 초국적 기업들은 당연히 그들의 서체를 다양하게 보유하고 있고 최근엔 IBM과 코카콜라도 전용서체를 개발했다.
IT기업은 아니지만 서체 자체가 브랜드 이미지가 된 가장 좋은 예시로 던킨 도너츠를 가져왔다. 올해에 리브랜딩을 진행했는데 DONUTS도 빼고 커피 그림도 뺐다. 오로지 던킨 글자로 끝내버린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무나도 던킨스럽다. 던킨의 동글동글한 서체는 쫀득하고 말랑말랑한 느낌을 준다. 컬러와 서체로 강력한 일관성을 주는 좋은 예시.
기업 서체가 있으면 글자만 써도 그 브랜드가 느껴진다. 빠르고 강력하고 정확한 소통방식.
한글의 경우 최소 2,350자 최대 11,172자를 만들어야되기 때문에 영문 서체에 비해 시간과 비용이 많이 든다. 조합형 글자이기 때문에 가독성을 고려한다면 아주 특이한 디테일을 넣기도 힘들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KT올레, 아모레퍼시픽, 배달의 민족 등은 기업서체를 개발해왔고 좋은 반응을 이끌어냈다.
현대카드는 전용서체를 만든지 14년이 지났다. 영문은 2003년에, 본문용 서체는 2012년에 완성되어 기업서체의 가장 훌륭한 선례가 되었다. 지금봐도 그들만의 아이덴티티가 확고하고 촌스럽다는 느낌이 들지 않는 걸보면 꽤나 롱런할 수 있는 브랜딩을 잡은 게 아닌가 한다.
2010년대의 리브랜딩을 감히 내가 요약해본다면 앞서 언급한 네가지 요소로 정의할 수 있을 것이다. 플랫한 로고, 시스템화, 플렉서블, 그리고 전용서체.
하지만 모든 기업들이 이를 기준으로 리브랜딩해왔기때문에 이제는 식상하고 진부하다는 반응도 있다.
그래서인지 요즘 가장 핫한 디자인 에이전시는 샌프란시스코의 콜린스다. 올해 상반기 화제작이었던 드롭박스에 이어 메일침프 리브랜딩도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다.
사실 드롭박스와 메일침프, 둘 다 정말 사랑하는 브랜드였다. 둘 다 설립한지 10년은 됐으니 IT스타트업이 부흥한지도 시간이 참 많이 지났다. 드롭박스는 구글드라이브같은 클라우드 서비스로 시작해 구글독스같은 협업툴로 확장하며 리브랜딩을 감행했고, 메일침프는 대량 이메일 발송 툴에서 마케팅툴로 확장하고 있다.
예전의 드롭박스를 보면 존재감이 크지 않게 귀여운 일러스트를 사용해 친근한 느낌을 주었다. 블루 컬러를 메인으로 그냥 깔끔한 서비스.
콜린스의 리브랜딩은 메인이 블루였나 싶을 정도로 평소 보기 힘든 컬러 조합을 선보였다. 보통 IT기업들이 블루 혹은 선명한 컬러 조합을 썼는데 연보라, 민트, 카키 등을 선정한 게 신기하다.
이미지를 교차해서 편집해 협업 툴로의 확장을 시사했다. (그 의미가 효과적으로 전달됐는지는 모르겠지만...)
자족구성이 정말 다양한 서체를 선정했고 여러 매터리얼이 섞인 자유분방한 일러스트를 사용했다. 이에 대한 디자이너들의 반응은 각양각색이었지만 차별화된 브랜딩을 위해 사진의 무드를 넘어 활용 방식을 바꾸고, 일반적인 디지털 일러스트가 아닌 아날로그적인 방식을 택했으며, 방대한 자족을 지닌 서체로 확장성을 표현했다는 것은 효과적이었다. 이로 인해 얼마나 사용자가 늘었는지, 브랜드 이미지가 개선됐는지는 두고봐야 알겠지만 이미 뻔할대로 뻔해진 브랜드 디자인 영역에 새로운 바람을 불었다는 것만으로 큰 역할을 해냈다.
이어서 메일침프는 왜 원숭이인지는 모르겠지만 아이코닉한 원숭이 캐릭터 프레디가 브랜드의 모든 것을 대변했다. 캘리그라피로 쓴 메일침프 워드타입과 적극적인 이미지 사용, 위트있는 멘트로 이미 특색있는 브랜딩을 해왔다. 메일침프 디자이너들도 대부분 그래픽과 일러스트에 특출난 분들이기도 했다.
하지만 콜린스는 캘리그라피를 버리고 프레디 심볼만 좀 더 깔끔하게 다듬었다.
특이점 중 하나는 메인 서체로 쿠퍼 라이트를 선택했다는 점인데, 대부분의 디지털 프로덕트들이 볼드한 산세리프 서체를 택하는 반면 디테일이 많고 레트로한 세리프 서체를 선택했다는 것만으로 차별성을 띈다. 로고타입은 볼드하게 갔지만 메인서체는 얇고 약간... 올드해보이는 서체를 고르면서 진정성과 위트, 의외성을 전달한다.
또 다른 특이점은 일러스트다. 너무나도 추상적이고 괴랄한 일러스트인데 그걸 의도했다고 하니 뭐라 할 말이 없다ㅋㅋㅋ 전반적인 무드, 서체와 어울리긴 하지만 ‘소규모 비지니스를 위한 마케팅 툴’을 지향하는 메일침프의 비전을 저 일러스트가 대변하고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콜린스와 메일침프 팀은 일부러 Quirky 기이하고 Abstract 추상적인 느낌을 주려고 했다는데 그렇다면 아주 성공한 셈.
지금까지 굵직한 리브랜딩 트렌드를 훑어봤다. 리브랜딩의 목적은 당연히 비지니스의 전환점에 맞추어 대내외로 그 전환에 어울리는 컨셉으로 바꾸는 것이다. 기존 브랜드 유산들을 유지하면서도 새로움을 주어야하기에 매우 어려운 부분. 또한 브랜드 디자인은 워낙 역사가 긴 분야여서 어느 정도 방법론도 고착화되었다. 그래서인지 콜린스의 자유분방한 실험이 어느 정도의 성공을 거둘지 궁금해진다.
명백한 경향성은 브랜드 디자인은 점점 예술에 가까워진다는 점이다. 순수예술의 본래적 특성인 자기표현과 브랜딩 사이에 유사한 점이 많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내가 다른 브랜드와 이만큼 다르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기이한, 상식을 깨뜨리는 캠페인을 시도하기도 한다. 어찌보면 이제는 브랜드 디자인에서 일관성보다는 새로움과 의외성을 느끼고 싶어하는 소비자가 더 많아지는 듯하다.
또 다른 경향성은 하도 브랜드가 많아지다보니 내가 진짜배기라는 것을 알리는 방식으로 아날로그를 택한다는 점이다. 자연스러운 일러스트와 사진을 사용하는 사례가 많아지는 것이 그 반증이다. Authentic, Real, Truly한 브랜드라는 것을 오프라인 경험으로, 아날로그적인 방식으로 전달하는 추세라고 생각된다.
과연 이 다음의 새로운 리브랜딩 방식은 무엇일까? 시각적인 세계관을 넘어 브랜드 경험을 얼마나 넓고 깊게, 방대하게 구현할 수 있는지 그 한계가 궁금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