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역 고가도로에 대한 아쉬움과 실망
지난 주말 드디어 서울로 7017에 다녀왔다. 생각한 것보다 더 차갑고 건조한 모습이었다. 나는 완공되기 전부터 서울로 7017이 무엇인지에 대한 궁금증을 가지고 있었고, 우연히 종로 근처에 있는 관광안내소에 물어본 적이 있는데 충격적이게도 관광안내원들도 7017의 뜻을 모르고 있었다. 내심 안내원 분들은 알고 있어야하는 거 아닌가, 싶으면서도 그 자리에서 함께 검색해보았다. 이를 계기로 서울로에 대한 정보를 모으기 시작했다. 알고보니 처음부터 고가도로를 폐쇄하냐 마냐부터 삐걱임이 많았던 사업이었다. 진행 과정과 인근 주민들과의 마찰, 안전 문제까지... 하지만 이 글에서는 그 수많은 문제들 중 디자인적, 미적 측면에 대한 이슈들만 적어보았다.
서울시는 오준식 디자이너를 대표로 하는 크리에이티브 그룹 '베리준오'의 재능기부로 만든 새 BI를 18일 공개했다. 시에 따르면 '서울로'는 '서울을 대표하는 사람길'과 '서울로 향하는 길'이라는 중의적 의미를 담았다. '7017'은 서울역 고가가 처음 태어난 1970년과 보행길로 거듭날 2017년을 함께 나타낸다. (...) 길을 나타내는 '로'의 영어표기를 'r' 대신 'l'로 사용해, 두 개의 소문자 'l'을 걷는 모습으로 표현했다. (기사출처 : 연합뉴스)
내가 이해 못했던 7017은 1970년에 생겨난 고가도로, 그리고 보행로로 거듭난 2017년을 의미한다. 사실 이걸 한 번에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은 몇 없을 것이라고 추측해본다. 앞에 100년이 차이나는 것에 EST나 Since를 활용한 전례도 보지 못했다. Seoullo의 걷는 다리 모양 ll은 ‘JJ’로 보인다는 의견도 다수 접했다. 노인, 장애인, 어린 아이 등도 함께 즐기는 것을 고려한 서울로이고, 공공디자인인 만큼 직관적이고 쉬운 네이밍, 명료한 가독성을 중요하게 생각했어야한다고 본다.
손혜원 의원이 서울로에 대한 의견을 5월 중순 쯤 페이스북에 남겼는데, 손 의원의 의견에 적극 동감한다. '작가의 의도라고 하니 일단 이해합니다.'라는 표현에서, 글로 못다 표현한 아쉬움들이 보인다.
이에 더해 서울과 길이 아닌 '고가'를 컨셉으로 하는 게 더 낫지 않았겠냐는 조언도 확실히 설득력이 있다. 이렇게까지 논란이 많은 로고라니, 참 안타깝다. 네이밍과 태그라인, 로고 형태, 컨셉까지 아주 요목조목 까인다.
손 의원은 디자이너 오준석의 재능기부에 대해서도 "왜 재능기부하셨나"라면서 "준식님처럼 유능한 디자이너가 서울시에 재능기부하시면 우리나라 디자이너들은 다 어떻게 살아가느냐"고 우회적으로 비판했다. 기사원문 공공기관의 중요한 브랜딩인데 이걸 꼭 재능기부로 할 필요는 없었을 텐데. 이런 식의 재능기부가 늘어날수록 브랜드 디자인, 혹은 시각 디자인 전반에 대한 가치절하가 이루어지기 쉽다. 로고는 대충 그리면 만들어지는 간단한 작업처럼 치부되는 것이다. 로고 하나 만들기까지 들어가는 노력과 시간을 생각해보자. 유명한 디자이너일수록 제 값을 주고 맡겼어야했다. 대기업들은 몇 십억, 몇 백억씩 주고 로고 만든다. 그 만큼 중요하다. 일반 시민들도 브랜딩이 뭔지, 도시 디자인, 도시 브랜딩이 뭔지 알 권리가 있고 그 가치를 알릴 필요도 있다.
공공디자인일수록 전문가 집단에게 맡겨야한다. 앞서 '아이서울유'라는 실패 사례가 있는데도 왜 박원순 시장이 개인에게 재능기부로 맡겼는지 알 수 없는 일이다. 오준석 디자이너의 재능을 의심하는 것이 아니라, 적어도 브랜딩 팀을 꾸려 각 분야에 대한 리서치, 시민의견 수렴 등을 할 수 있는 전문가들이 모여 함께 했어야한다고 생각한다. 아니면 일반 유명 에이전시에 맡겨도 좋을 일이다. 영국은 이미 디자인 에이전시에 공공디자인을 맡긴다. 런던의 상징으로 널리 알려진 빨간색 2층 버스는 저명한 디자인/건축 에이전시인 헤더윅 스튜디오에서 맡았고, 그들은 아주 작은 환풍구 디자인부터 공공건물 디자인까지도 맡았다. 관련 자료 그리고 그 효과는 대단했다. 한국의 공공기관들은 디자인의 힘만 알고 올바른 디자인 프로세스를 모른다.
슈즈트리는 헌 신발 3만 켤레로 만든 설치미술 작품으로, 세계적인 정원 디자이너 황지혜 작가가 재능기부 형식으로 설치했다. 이 또한 재능 기부인 점이 아쉽다. 개장 기념으로 설치된 예술작품인데, 흉물이라는 의견이 많다. 서울로 7017에서 서울역 광장까지 100m에 걸쳐 조성되었고, 개장일인 20일부터 9일간 선보였다. 9일간 전시되는 작품에 1억원 넘는 금액을 들여 예산 낭비라는 지적이 있었다. 원문기사 (신발에 대한 악취 우려, 비오는 날에 대해 예상하지 못한 것 등은 세척으로 충분히 극복 가능하고, 작년부터 기획되어온 작품이기 때문에 비판하고 싶지 않다.)
일반 대중들과 언론의 비판에 대해 진중권 평론가가 반박한 기사를 읽게 됐다. 원문기사 워낙 유명하신 분이고 갑론을박이 팽팽해 나 또한 양측의 의견을 균형있게 접하고 싶었다. 하지만 진중권 평론가의 글에서 동의하기 힘든 부분이 다수 보였다.
그는 오히려 "대중이 그 작품을 싫어할 수 있고 그건 대중의 권리이지만 왜 비싼 세금을 들여 이런 걸 만들었냐는 식으로 담론이 흐르는 것은 좋지 않다"며 "내가 좋아하지 않지만 내가 이해하지 못하는 코드가 있다는 생각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 "작가들 기를 다 죽여 놓으면 다음부터 이런 작품 못한다. 이 분뿐 아니라 다른 분들도 마찬가지다. 대중의 눈치를 보게 되면 아무 것도 못하게 된다. 대중들의 반발도 예술에서 한 부분으로 받아들여야 하지만, 매번 이런 식으로 얻어맞으면 작가들이 과연 작품을 할 수 있겠나."
일반 서민들은 당연히 내 세금이 저런 곳에 쓰이다니 - 하는 생각을 할 수 밖에 없다. 여론몰이를 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그러한 의견이 많았고. 논쟁의 여지가 많은 작품인 만큼 그 논쟁까지도 감수했어야하지 않나 생각해본다. 사이코패스라고 욕 먹었던 데미안 허스트를 떠올려 보면 그는 수많은 비판과 비난에도 오히려 더 뻔뻔하고 당당했다. 작가라면 응당 그 비판도 받아들일 수 있어야한다. 여태까지 나온 비판이 나는 이해 가능한 범주라고 생각한다. 일반 대중은 이해할 수 없는 어떤 코드가 있으리라 짐작하며 감상할 여유를 가지기 힘들기 때문이다.
또 예술작품에 대한 대중들의 반응은 찬반으로 엇갈리기 마련인데, 기자들이 자기 생각에 맞는 대중들의 인터뷰를 엮어 잘못된 비평을 하고 있다고도 지적했다. (...) 현대 예술은 환경미화가 아니다. 예쁜 것만 예술이 되는 게 아니고 예쁘지 않더라도 의미를 생각하게 해주는 게 예술 아닌가.
현대 예술이 환경미화가 아니라는 것은 동의하지만 이것은 일반 대중을 상대로한 공공 예술이다. 화이트 큐브에 소머리와 그 주변에 꼬인 파리떼까지 예술작품이라 전시해놓은 데미안 허스트의 사례를 보면, 이미 관객은 '화이트 큐브'에 들어가는 순간 어떤 신선함을 줄 예술작품을 기대하고 입장한다. 하지만 이곳은? 보고 싶지 않아도 볼 수 밖에 없는 위치에 거대한 신발 더미가 위치해있다. 아쉽게도 긍정적인 반응을 이끌어내기 어려운 상황이다. 서울의 공공예술들을 떠올려보자. 강남 스타일 조형물을 포함해 실패한 사례가 너무 많다. 최소한의 환경 미화만 이뤄져도 충분히 시민들은 만족한다. 현대 미술도 모르는 무지몽매한 사람 취급하는 평론가의 태도가 너무나 아쉽다.
반면 최범 평론가의 글을 보면, 일반 대중의 반응에 대해 먼저 공감하고 글을 시작한다. 그 이면의 의미 또한 잘 설명해놓았으니 관심있는 분들은 읽어보면 좋겠다. 원문기사
보행로를 좁게 만드는 주된 원인은 원형 콘크리트 화분이다. 이 화분이 이렇게까지 클 이유가 있나 생각해봤는데, 큰 나무들은 흙을 많이 필요로 하니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으리라 짐작해본다. 고가도로 자체도 많이 낡은 상태였으니 나무를 더 많이 심기 어려웠을 수도 있다. 하지만 박원순 시장은 애초에 뉴욕의 하이라인 파크를 참고하여 조성할 것이라 발표했다. 결과물은 하이라인 파크를 참고한 게 맞나 싶을 정도로 삭막하다. 많은 인원을 감당하기에는 폭도 정말 좁다. 화분 사이 사이를 헤집고 다녀야하는데 미관상 어지럽고, 실제 걸었을 때도 다른 사람들 사이에 휩쓸려 걷게 되더라.
당선작은 네덜란드 건축·조경 전문가인 비니 마스(Winy Mass)의 작품인데 개인적으로는 2위, 3위였던 한국인 건축가의 작품이 더 나은 것 같기도 하다. 자세히 보기
오히려 잔디를 심었으면 필요한 흙의 양이 더 줄지 않았을까? 저런 원형 화분을 만든 게 디자이너의 의도겠지만 어떤 의도인지를 참으로 궁금하다. 전혀 정원처럼 느껴지지 않고 식물과 콘크리트의 이질감만이 느껴진다.
전반적으로 서울로에 대한 실망감이 크다. 오세훈 시장 때부터 이어져온 도시 디자인에 대한 실망은 지금까지 이어져오고 있다. 세빛둥둥섬, DDP부터 서울시 브랜드 아이서울유, 서울로까지 - 언제쯤 공공디자인이 제대로 이뤄질 수 있을지 정말 안타깝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