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자크 상페의 <뉴욕의 상페>
이수명 시인은 작품을 완성하는 데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이 시간의 경과라 했다. 작가들이 작품 완성을 위해 한동안 묵힌다는 말은 익히 들어온 바였다. 시간이 지나면 달리 보이며, 보이지 않는 게 보이므로, 이를 위해 시간이 자신과 작품을 거쳐가도록 내버려둔다고. 이런 익숙한 퇴고의 과정을 시인은 새로운 방식으로 표현한다. 시간이 ‘쓰는 사람’을 ‘복수’로 만들어준다는 것이다. ‘동질성의 파괴’, 그것이 시간이 하는 일이며 그렇게 이전과 달라진 내가 시에 다른 감각을 들여오게 된다고, “쓰는 동안 경험하는 변화와 새로움, 이것이 시”라고 그녀는 단언한다.
와, 근사하구나, 마냥 감탄했던 일이, 오늘 장자크 상페의 인터뷰를 읽는 중에 불쑥 떠올랐다. 그때 나는 그녀의 특별한 표현에 대해서는 감탄했지만, 작품을 완성하는 ‘시간’이라는 요소에 대해서는 전혀 놀라지 않았다고, 그걸 되짚어본다.
"좋은 아이디어란 정말 기적과도 같은 것이어서, 그런 아이디어가 떠올랐을 때에는 있는 힘을 다해 매달려야 하지요.
참, 1년 전부터 작업을 하고 있는데 아주아주 좋은 그림이 하나, 딱 하나 나왔습니다. (...) 아무튼 그 주제를 찾는 데 수년이 걸렸지요. 주제는 단순해요. 어느 날 이런 생각이 났어요. 정신 의학과 의사가 환자용 긴 의자를 바꾸기로 합니다. 쓰던 의자가 너무 낡았기 때문이지요. 그런데 옛날 의자에 길이 든 환자가 낯선 의자에 누워 어쩔 줄을 몰라 하는 거예요. 그 생각을 바탕으로 궁리를 하고 또 하다가 결국 4년인가 5년 만에 그림의 윤곽을 찾아냈습니다. 그때 내가 얼마나 뿌듯했는지요.” p71
소설이나 시 한 편을 완성하는 시간은 얼마나 길어지든 당연하게 받아들이면서, 그림 한 컷에 들어가는 시간에는 왜 그리 놀랐을까.
상페의 성실함은 모르지 않았다. 어떤 날에는 족히 백 장을 그리기도 하고, 삽화 한 장에 두어달을 쏟아붓기도 한다는 것을 이미 들어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그의 작품들을 볼 때마다 노력보다는 재능을 앞서 생각했나 보다. 하나같이 재기 넘치는 그림들은 아이디어를 쥐어짜낸 게 아니라 영감의 소산물이며, 이미 완성된 형태로 다가온 듯했고, 영감이 번득인 순간 그 자리에서 쓱쓱쓱 그려낸 것만 같았다. 역시 이런 재능은 타고나야 하겠지.
그러니 새삼 놀라고 만 것이다. 아이디어 하나를 얻어내려 주야장천 책상에 앉아 버틴 시간, 그렇게 얻어낸 아이디어를 그림으로 옮기려고 버틴 시간, 그리고 고치고 다시 그리며 보낸 시간... 그 절대적으로 필요한 시간이라는 존재에 대해서.
“내게 믿음을 주는 유일한 것은 계속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 장자크 상페
장자크 상페의 작품집 <뉴욕의 상페>에는 상페의 인터뷰와 작품 160여점이 수록되어 있다. 인터뷰는 그가 40년간 <뉴요커The New Yorker>의 표지 삽화가로 일해온 과정을 중점적으로 다룬다. 수록작은 모두 <뉴요커> 표지를 장식한 삽화들이다. 무엇보다 그가 '풍자화가'로 존재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던 시간을 엿볼 수 있다.
내년이면 창간 100주년을 맞이하는 미국 대표 문화 시사 주간지 <뉴요커>는 일러스트 표지(& 내용 관련 문구 없이 일러스트와 제호만을 표지에 싣는 방식)을 고집해온 것으로 유명하다. 이미 그것만으로도 상페에게 이 주간지가 어떤 의미였을지 짐작할 수 있다.
당시 <뉴요커>를 철권통치 중이던 숀 사장과의 특별한 관계성(거기서 드러나는 상페의 직업윤리나 <뉴요커>& 표지가 갖는 독특한 위상), 그가 만난 거장들(특히 스타인버그Saul Steinberg)과의 일화, 재즈애호가로서의 면모, 삽화가로서의 자세 등 흥미진진한 이야기가 많았다.
어떤 일화들은 웃음을 자아내는 아이러니가 유독 빛나서 그가 그린 삽화 그 자체 같았다. (가령, 옆사무실에서 일하던 시각장애인이 상페를 만날 때마다 그림에 대한 논평을 들려주는데, 그 말에 공감하고 일면 감격하면서도 어떻게 반응해야할지 몰라 몹시 당황해하는 장면: "선생의 지난번 그림 말입니다, 굉장히 재미있기는 한데, 여자의 표정이 좀 그랬습니다. 그런 표정을 지을 상황이 아니었을 텐데... 더 놀란 표정이 나왔어야죠.")
상페의 또 다른 작품집 <계속 버텨>를 읽은 건 2022년 4월이었다. 90세에 신간이라니, 존경스러웠다. 계속 버티시길, 하는 바람이 간절했는데, 그 신작이 유작이 되고 말았음을 오늘에야 알았다. 상페는 그해 8월에 타계하셨다. 내 취향의 뼈와 살과 피를 이룬 이들이 하나둘 세상을 떠나고 있다.
아직 읽을 준비가 되지 않아 책장에 고스란히 놔둔 책들이 있다. 파스칼 메르시어의 <언어의 무게>는 유작이라서, 하루키의 신작 <도시와 그 불확실한 벽>은 어쩐지 마지막 장편소설일 것 같아 손을 못대겠다.
‘마지막’이라는 말에 자꾸 연연해진다.
“나는 내가 능력이 있다고 느끼기보다는 내가 한 작업에 책임을 느끼죠. 그래서 나 자신에게 굉장히 엄격해요. 그림이 어느 지면에 실리고 호응이 괜찮아 보여도, 나는 절대로 속지 않습니다! 나 스스로 그림에 만족하지 못하면 나 자신을 비난하고 절대로 용서하지 않아요.”
“...내가 스스로에게 엄격해지려고 하고 진이 빠질 정도로 작업을 하는 이유는 그렇게 갑자기 아이디어가 떠오르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에요. 만일 내게 그런 식으로 하루, 이틀, 사흘, 일주일, 한 달, 두 달간 책상 앞에 버티고 앉아 있을 힘이 있다면... 이런저런 아이디어를 떠올릴 수 있을 거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거든요! 하지만 주야장천 앉아 있으려면 힘이 필요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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