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스다 미리, <미우라 씨의 친구>
“어렸을 때부터 생각했었다.
단 한 명이라도 내 편이 되어줄 친구가 있으면 그걸로 됐다, 라고.” p.82
자, 하드한 걸 읽었으니 이제 좀 말랑말랑한 걸 읽어볼까, 해서 고른 건 아니었지만 결과적으로 압생트 마시고 바닐라콘으로 마무리한 기분.
마스다 미리, 오랜만인데 여전히 좋네.
“고등학교 때부터 친했던 친구가 있거든. 무슨 얘기든 할 수 있는… 뭐, 성인이니까 비밀도 당연히 있지만. 여하튼 성격이 전혀 다른데도 왠지 서로 잘 맞았어. 하지만 이제 연락도 안 와. 아마 평생 안 올 거야. 오랜 친구였으니까… 그래서 알 수 있는 것도 있어.“ p.9
<미우라 씨의 친구>는 만화 데뷔 20주년 기념작. 이제껏 읽었던 마스다 미리의 작품들 가운데 설정이 가장 흥미롭다. 주인공 미우라가 절친과 사이가 틀어지고 새로운 친구와 하우스쉐어를 하며 이야기가 시작된다. 마스다 미리 특유의 담백한 대사, 익숙한 상황들로 채워져 있다. 이야기는 자극 하나 없이 느슨하게 진행되는 듯하지만 꼼꼼이 들여다보면 그 만듦새가 정교하다. 살면서 피할 수 없는 질문들이 복합적으로, 영리하게 얽혀 있다.
친구란, 우정이란, 좋은 대화란 무엇일까. 오랜 시간을 함께 했음에도 말 한마디로 끝나버리는 관계라면, 그 시간과 관계는 그저 공허하고 헛된 것에 불과할까, 그렇지 않다면 어떤 의미를 지닐까, 숱한 이별 후에도 새로운 관계를 두려움 없이 설렘만으로 시작할 수 있을까, 그러려면 어떤 마음가짐이 필요할까, 지나간 시간은 어떻게 마무리해야할까.
“아무리 친한 사이도 작은 균열 하나로 쉽게 갈라지고 만다. 이전에도 친구와 사이가 틀어진 적은 있었지만 그렇다고 익숙해지지는 않는다, 조금도.” pp.17-18
마음 깊이 가라앉기 쉬운 이야기가 이토록 편안하게 읽히는 이유는, 귀여운 그림체와 가벼운 대화도 한 몫하겠지만 친근한 일상 속에서 이야기를 쉽게 풀어가는 능력이 단연코 뛰어나서다. 예전에는 식탁이나 거실 테이블에 놔두고 오가며 몇 편씩 쉬엄쉬엄 읽곤 했다. 이번 이야기에는 숨겨진 비밀이 하나씩 풀리는 재미가 있어 한달음에 달렸다. <스즈메의 문단속>이 떠오르는 장면이 있었는데, 살짝 울컥했다.
* 이것도 스포라면 스포인가;;
미우라의 하우스메이트 ‘친구’는 다섯마디밖에 하지 않는다. 친구와의 대화에 딱 다섯마디만 쓸 수 있다면, 어떤 말을 선택해야 할까. '응', ‘그래’. 요건 나도 찜해놓고... 어떤 상황에도 하기 좋은 말과 상대가 듣기에 좋은 말들을 궁리해보며 멍하니 생각에 빠져 있는데, 테이블 맞은편에서 남편이 뭘 보는지 노트북에 시선을 박아두고 큭큭거린다. 오랜만에 만나는 친구라면 다섯마디로는 불가능하지. 매일 보는 저 친구라면 모를까. 남편이 불쑥 고개를 들었다.
“내 알고리즘이 이상한 영상을 띄워주는데...”
“응.”
“와, 인도 결혼식 라이브 영상이 떴어. ㅋㅋㅋ”
“뭐라고? ㅋㅋㅋ”
“지금 다섯명 시청 중. 이야, 결혼식 크게 하네. 대단하다!”
“그래? ㅋㅋ”
“댓글 달아줄까?”
“뭐라고?”
“... 축하한다고?”
“됐어!”
어, 다섯마디로 돌려막기가 충분히 가능하겠는데?!
(남은 하나는 만화 속 "000"처럼 말랑말랑한 말로 생각해보자...)
가족 단톡방에 들어가서 식구들이 자주 쓰는 말을 살펴보았다.
J가 애용하는 말 다섯 개는, "웅, 힝, 굿, 멀라, ㄱㅊ". 귀여워.
남편은 건조한 정보들 사이로 "와~~~~~ 야호~~~~ ㅇㅋ", 그리고 (귀여운) 이모티콘들을 뿌려놓았다. 극단적이긴 하지만 뭔가 귀여워.
그리고 나는... 스크롤을 죽죽 올리다 질리고 말았다.
와, 이렇게 두툼한 텍스트들이라니. ㅋㅋ
카톡을 노트북으로 확인하고 써 버릇하니, 하고 싶은 말을 몽땅 내뱉은 거다.
부담 없이 줄임 없이 장문의 톡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