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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slander Sep 25. 2016

애정을 고백하는 이상한 방식

2016. 9. 24. 흙의 날.

 무라카미 하루키의 <양을 쫓는 모험>을 읽기 시작했다. 



  영화 <Into the Forest>는 종말에 가까운 세상을 그려낸다. 주인공은 두 자매. 언니의 오디션과 여동생의 대학입학시험을 며칠 앞두고 미 서부지역에서 원인 모를 단전사태가 벌어진다. 곧 미국전역에서 발전소가 멈춘다. 모든 통신망이 단절된다. 유일한 이동수단은 자전거밖에 없다. 물자를 공급받지 못한 사람들은 약탈을 일삼고, 그 와중에 아버지는 사고로 죽는다. 아직 최악의 상황은 오기 전, 마치 동앗줄을 움켜쥔 것처럼 자매는 일상을 변함없이 이어나가려고 한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언니는 매일같이 춤을 추고 여동생은 책상 앞에 앉아 공부를 한다. 그러던 어느 날 여동생이 우연히 초콜릿과 껌 두 개를 발견한다. 생애 마지막으로 맛보게 될지 모를 초콜릿 한 알. 그녀는 몇 번 언니를 건성으로 부르다가 아주 천천히 초콜릿을 입으로 가져간다. 화면 가득 클로즈업되는 그녀의 입술. 살짝 벌어진 입술에서 망설임이 느껴진다. 조금만, 아니 절반만. 그녀는 작은 초콜릿을 이로 살짝 깨물려다 멈칫하더니 그만 입 안에 넣어버리고 만다. 


  나는 바로 그 기분으로 책장을 넘기고 있다. 책장이 너무 빨리 넘어간다. <1Q84>로 이어지는 하루키의 원더랜드와 현실세계를 움직이는 권력의 괴이한 실체가 모두 이 이야기에서부터 시작된 것 같다. 단편과 장편들에서 참으로 알뜰하게 재활용되고 확장되는 세계와 인물과 상징들.   


  언젠가, 아마도 곧, 무라카미 하루키 옹은 마지막 책을 내놓게 될 테지. 그때를 대비하여 아직 읽지 않은 그의 책들이 책장에 몇 권 남아 있다.  


사실은 재미없을 것 같아서 그간 손도 대지 않았다는. ㅠㅠ


  열림원에서 출간된 책의 뒷날개에는 그의 당시 사진이 실려 있다. 사진 속 그는, 젊다. 세상물정 모르는 순진하고 어리숙한 젊은이처럼도 보인다. 


  어멋. 하루키에게 얇고 섬세한 속쌍거풀이 있다는 걸 처음 알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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