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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slander Sep 25. 2016

미래의 바다, 블롭

2016. 9. 25. 해의 날. 

  내셔널지오그래픽 9월호를 읽었다.  



  2015년에는 캘리포니아오징어의 알이 멀리 북쪽 알래스카 주에서도 발견됐다고 한다. 아열대 해양 동물인 개복치와 조개낙지와 청새리상어가 태평양으로 이동했고, 중앙아메리카의 바다뱀들이 LA 근처 해변 곳곳에 모습을 드러냈다. 따뜻한 물을 찾아온 귀상어들이 캘리포니아주에 출몰하기 시작했다. 영화 언더 워터(The Shallows)의 블레이크 라이블리는 파라다이스로 불리는 멕시코 해안에서 서핑을 하다가 난데없이 상어와 사투를 벌이게 되는데, Surfin' USA가 명랑하게 울려퍼지는 캘리포니아 해안에서 이와 비슷한 일이 벌어질지 모른다. 단지 생태계 지도만이 바뀐 건 아니다. 크릴새우가 급격하게 줄어든 바람에 최소 10만 마리의 작은 아메리카바다쇠오리와 수십만 마리의 바다오리가 굶어 죽었다. 



  북동 태평양의 해수 온도가 기이하게 상승한 건 2013년부터이다. '블롭'이라 새로 명명된 이 수역에서는 약 2년간 생태계가 교란됐다. 많은 기상학자와 해상학자들이 기후 변화로 닥칠 미래의 바다를 이곳에서 예견했다. 따뜻한 기온으로 어류의 신진대사가 촉진돼어 식욕이 왕성해졌다. 먹잇감은 감소됐다. 먹이사슬 위쪽을 차지한 조류와 해양 동물들이 떼죽음을 당했다. 고래와 해달 같은 동물들도 떼거지로 기이한 죽음을 맞이했다. 수심 깊이까지 높아진 수온으로 독성 해조류가 창궐했는데, 이로 인해 발생한 신경독소 때문일지도 모른다고, 학자들은 의심하고 있다.  



  불과 한달 전 포털 한 켠을 소심하게 장식했던 뉴스 한토막이 떠올랐다. 한강을 녹차라떼로 둔갑시킨 유해 남조류는 내시와 사랑에 빠진 어린 왕의 순정한 눈빛 만큼도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지 못한 채 수심 깊이 가라앉았다. 혹독한 무더위가 몇 주 지속되면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깨달았던 여름이었다. 녀석은 악랄한 고리대금업자처럼 내 멱살을 잡고 끌고 다니다가 전기세 고지서 한 장 던져놓고 떠나갔다. 


  2016년 한반도를 강타했던 더위는 이제 물러갔다. 2013년 난데없이 시작된 북동태평양의 블롭 또한 강력한 엘니뇨로 약화되었다. 뉴욕 양키스, 요기 베라가 말했다지.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 이상한 나날은 이제 끝난 듯 보이나, 이제 막 시리즈를 기세좋게 열어젖힌 공포영화의 엔딩처럼 찝찝한 뒷맛을 남겼다. 후속편은 언제나 강도가 더 센 장면들과 함께 돌아오기 마련이다.  


  이상기온으로 나는 고작 몇 주 고생했을 뿐인데, 북동태평양의 해양생물들은 무려 2년이나 패닉상태에 빠져 있었다는 걸 오늘 처음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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