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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slander Sep 27. 2016

그녀들에게 운전대를 허하라

2016. 9. 26. 달의 날.

게일 레빈의 평전, <에드워드 호퍼:빛을 그린 사실주의 화가>를 읽고 있다. 뒤늦게 두번째 시도라는 걸 깨달았다. 아마 오래 전, 호퍼의 그림에 처음으로 매혹당한 즈음에 읽다 지쳐 덮은 모양이다. 1000페이지에 육박하는 평전이니, 앞으로도 몇 번 더 벌어질 일일지도...     



나이트호크(1942). 호퍼는 이 작품을 통해 이른바 미국식 리얼리티를 창출해냈다. 그가 이 그림에 몰두하는 동안 부부싸움은 일어나지 않았다고 조는 지인에게 고백한다.  


소크라테스의 처 크산티페는 악처의 대명사처럼 쓰인다. 왜? 누군가의 손을 빌어 남겨진 소크라테스의 어록 탓이다. 그녀로서는 아무리 억울해도 자신을 변호할 길이 없다.

호퍼는 아내 조를 '나의 크산티페'라고 불렀다. 조는 크산티페와는 달리 자신을 철저하게 변호했다. 미래의 독자를 다분히 의식해 쓴 일기를 남긴 것이다. 이들 부부의 경우에는 호퍼가 자신의 처지를 적극적으로 변호할 수 없다. 심지어 그녀를 비꼬아 그린 듯한 연필스케치까지 남긴 마당에. 단지 우리는 그의 어린 시절 어머니와의 관계, 시대배경과 그의 기질, 그가 남긴 인터뷰와 편지, 그리고 그의 작품 등으로 그의 심리상태를 짐작할 따름이다.

 

예전과는 다르게 재독을 통해 내게 강렬하게 모습을 드러낸 건 에드워드 호퍼가 아닌 조 호퍼다. 이 책이 조의 디테일한 일기를 밑천 삼아 쓰여진 탓도 있지만, 내 자신이 직장을 그만두고 집에 들어앉은 기혼여성이라는 스텐스를 내내 의식한 채 평전을 읽고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요 며칠 영드 <닥터 포스터>에 빠져 있어서인지도.


방영 천만명의 시청자수를 기록했다는데 왠지 그 중 9백만은 기혼여성일 것 같다. 마지막 에피소드를 앞두고서 여주의 행보(아마 복수의 방식)에 대해 댓글이 구백만개나 달렸단다. 헉


각설하고, 호퍼의 작품에 대한 애정이 아무리 지극해도 이번에는 조에게로 시선이 간다.

예술가적 자의식과 아내로서의 역할 사이에서 고군분투하는 그녀의 모습은 안쓰러울 정도다. 몇몇 고백은 그로부터 반세기나 훌쩍 지난 지금 이 순간에도 누군가의 일기장에 토씨 하나 다르지 않은 채 쓰여질 것 같다.  


"매 끼니 음식을 만들어야 하는 일은 나를 지독한 하이에나로 만들었다.
한때 나는 스스로를 예술가로 생각하고 다른 길은 생각지도 않았는데, 지금은 나 자신이 부엌데기일 뿐이고 어디에도 탈출할 길이 보이지 않는다.
부엌데기의 책임과 다른 생활은 없이 그저 피로와 심술 그리고 성가심으로 가득 차 있다." 


1939년 <독립적 여성>이란 잡지에 "당신과 당신의 자동차"란 글이 실렸다. 제럴딘 사테인은 "자동차 운전의 성공에서 오는 힘에 대한 자의식"을 언급하면서 이것이 "달걀 거품기를 다루는 것보다 무한하게 더 중요하다고" 주장한다. (하다못해 오븐도 아닌 달걀 거품기라니...)    


Jo in Wyoming(1946)


당시 조에게도 운전을 마스터하는 게 중차대한 미션이었다. 어디든 혼자 힘으로 갈 수 있다는 건 자신에 대한 자신감과 어디서든 그림을 그릴 수 있는 가능성을 뜻했다. 그리고 "남편의 요구, 취향, 두려움으로부터 제한 받지" 않는 길이기도 했다. 조의 운전으로 빚어진 부부싸움이 '육탄전'(맙소사!)으로까지 빈번하게 확대됐던 건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었다. "남자와 생물학적, 심리학적 동등성을 달성"하려 했던 한 여성의 욕망과 관계/힘의 주도권을 빼앗기지 않으려는 남성의 불안이 운전대를 사이에 두고 격렬하게 충돌했던 것이다.     


조는 1944년도의 일기에서 "일생에서 가장 중요한 충동"으로 세가지를 뽑았다.

"미술을 통한 표현, 성 그리고 운전."


특히 운전과 미술에 대한 '충동'은 갈등의 주된 테마였다. 조는 호퍼가 자신의 미술 본능을 미묘한 방식으로 죽이는 것처럼 여겼다. 어느 날에는 호퍼가 미술관 직원에게 자신을 화가가 아니라 자기 아내로만 소개했다고 조는 울분을 토하기도 했다.

그녀의 일기 속에서 반복되는 장면이 있다.

그녀는 자신이 부엌데기처럼 여겨져 크게 화내다가도 그런 감정발작에 죄의식을 느끼고는 그래도 "내 사랑하는 에디는 집안일을 함께해 주잖아" 하고 자신을 위로한다. 그리고 아무도 보러 오지 않을 거라는 남편의 면박에도 굴하지 않은 채 자신의 작품들을 갤러리로 보내곤 한다. 침체기에 빠져 까칠해진 그가 자신을 힘들게 하는 날이면 남을 배려할 줄 모르는 이기적 인간이라고 일기장에 성토하다가도 그가 성공적으로 다시 작업에 임하면 깊이 안도한다. 사람들을 꺼리는 남편 대신 그의 작품을 평단에 적극적으로 알리고, 캔버스 앞에서 그가 요구하는 다양한 포즈를 적극적으로 취하며, 그가 창작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걸 언제나 최우선으로 삼는다. 그러면서도 자신이 머물 곳이 앉을 데도 없는 부엌과 침실 뿐이라면서 한탄한다.


평전에서 언급된 조의 일기를 읽다 보면 '전쟁 같은 사랑'이란 말이 불쑥 떠오르곤 했다. 격렬하게 싸우고 화해하고 다시 싸우고 어물쩡 넘어가는 일이 평생 반복되는 것 같았다. 여느 부부 같으면 십년이면 적당히 포기하고 살 텐데, 이들 부부는 각자 동일하게 지닌 예술가적 자의식과 욕망 때문인지 끝도 없이 서로를 밀치고 끌어당긴다. 뭐, 아직까지 읽은 바로는 그렇다. 여하튼,


호퍼 그림 속에 빈번하게 드러나는 '고독'과 '단절'의 이미지가 어디에 뿌리를 두고 있는지 알게 되었다.


아내에게 운전대와 방 하나만 내줬다면, 그림 속 인물들의 시선 방향과 표정의 온도가 달라졌을지도...

   

철로 변 호텔, 1952, 캔버스에 유화


뉴욕의 방, 1932, 캔버스에 유화


철학으로의 소풍, 1959

덧.  


1. 나란 인간은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는 쓰릴러도 그 결말을 확인하고 봐야 직성이 풀린다. 평전의 마지막을, 호퍼의 마지막 그림과 그녀의 마지막 일기를 미리 훔쳐 봤다.


호퍼는 자신의 마지막 작품 <두 명의 희극배우>에서 자신과 함께 조를 피에로로 등장시킴으로써 "무대에서 스포트라이트와 영예를 나누는 동반자로서의 위치를 그녀가 인정받을 수 있게 했다." 조는 여전히 정물화를 그렸다. 그리고 호퍼가 죽은 뒤 채 10개월도 되기 전에 84세의 나이로 죽었다. 내가 건너 뛴 어느 페이지에선가 그들은 평온해졌나보다.  


그녀는 이렇게 일기의 "마지막 장을 접는다."


"나는 내 자식들(조의 작품들)로 가득 찬 9제곱미터의 스튜디오를 갖고 있다. 거기에 내 삶의 기록이 있다. 나는 여기저기서 편안함을 느끼고, 다시 살고, 작은 새끼들과 부끄럽지 않다. 하지만 나는 많은 여성들이 미술보다는 사람들과 삶에 더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다는 걸 배웠다. 그들은 두 가지를 다 가져야 한다. 에디가 떠나면 나는 지구상에 혼자다. 그는 사람들에게 별로 관심이 없고 우리는 가까운 친구도 없다. 언덕 꼭대기에 있는 우리의 작은 집이 천국이다. 우리가 가장 사랑하는 모든 단순한 것들. 저 조용한 동반자는 잠자러 갔다. 그는 내가 글 쓰는 걸 미워하거나 내가 말하는 것에 참견하지 않는다."


2. 에드워드 호퍼의 그림은 애니, 영화, 광고 속 장면으로 다양하게 패러디되었다.

 


3. 사우디 정부는 아직도 여성들에게 운전면허를 발급하지 않는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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