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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slander Apr 25. 2016

일시적인 문제

줌파 라히리, <축복받은 집> 수록작 "잠시동안의 일"

                                                                                                                                                                      

축복받은 집 - 

줌파 라히리 지음, 서창렬 옮김/마음산책                                                                                                                 

통지문은 그게 잠시 동안의 일이라고 말했다. 닷새간, 오후 8시부터 한 시간 동안만 정전된다는 것이었다. 최근의 눈보라로 전선이 하나 끊어졌는데, 바람이 덜 부는 저녁 시간에 보수한다고 했다. 보수 작업 대상 세대는 가로수가 늘어선 한적한 동네의 집들이었다. 그 동네는 벽돌집 가게들이 늘어선 전동차 간이역에서 걸어오는 거리에 있었는데, 쇼바와 슈쿠마르는 거기서 지난 3년 동안 살아 왔다.
"미리 알려 줘서 고맙군요."
쇼바는 그 통지문을 큰 소리로 읽고 나서 말했다. 그것은 슈쿠마르보다는 오히려 그녀 자신을 위해 더 잘된 일이었다. 그녀는 교정지가 잔뜩 들어가 빵빵해진 가죽 손가방의 끈을 어깨에서 슬쩍 밀쳐 내어 가방을 복도에다 떨궈 놓고 주방으로 쑥 들어갔다. 회색 운동 바지에 하얀 운동화를 신고 그 위에 푸른색 포플린 레인코트를 입은 서른셋의 그녀는, 일찍이 그녀 자신이 결코 닮지 않겠다고 단언하던 그런 여자를 닮아 가고 있었다. 

                                                                           - 줌파 라히리의 <축복받은 집>에 수록된 단편,
                                                                                       "잠시 동안의 일"의 첫.

  

                                                                                                    

  몇 년 전까지 세상에서 가장 무거운 건, 눈꺼풀이었다. 학창시절 벼락치기로 밤을 새며 시험공부를 하거나 새벽 네 시가 넘어가는데도 한시간 간격으로 깨는 아이를 새파랗게 질린 표정으로 바라볼 때의 눈꺼풀이란, 거의 고문하다시피 내 정신을 짓누르는 무게였다. 


  요즘 내게 가장 무거운 건 입꼬리다. 쳐진 입꼬리 끌어올리는 게 여러 모로 어려워졌다. 시간이 흘러 중력에 순응하기 시작한 탓도 있지만, 심리적으로 위축된 탓도 있을 것이다. 그렇게 나이들어가는 자신을 발견하고 소스라치게 놀라곤 한다. 가령, 오늘 이른 아침, 거울 속에 비친 내 모습은, 10대와 20대의 어느 시절에 정신적으로나 정서적으로, (혹은 마음속 고이 품고 있는 자기 이미지로서) 육체적으로도 머물러 있는 내 뺨을 후려쳤다고나 할까. 정신이 퍼뜩 깨이면서, 일순간 정색하고 내 자신을 바라보게 되었다는 거다. 정직하게 고백하자면, 아이쿠, 저건 뭐야, 하는 심정이었다. 그러니까, '쟤는 누구야'도 아닌 '저건 뭐야'... 


  나는 거울을 보며 양쪽 손가락 끝으로 입꼬리를 끌어당겨봤다. 미소도 지어 보였다. 벌칙으로 강풍이라도 맞은 듯 머리카락은 헝클어져 있고 숙면을 취하지 못한 얼굴은 이목구비를 흐릿하게 만들 정도로 부어 있었다. 그런 꼴을 하고서 입꼬리만 올린다고 그게 미소가 되겠는가. 썩소도 아닌 괴소랄까. 내가 봐도 조금 무서웠다. 괜히 처량하고 처참한 기분이 되어 거울을 외면하고는 얼굴에 찬물만 연거푸 끼얹었다.


    하지만 나이드는 것쯤이야, 짐짓 괜찮다고 쿨하게 말해줄 수 있다. 누구나 피할 길 없으므로. 다만, 이런 말이 나를 심란하게 한다. "마흔을 넘어서면 자기 얼굴에 책임을 져라." 내 생활 방식, 사고 방식, 마음가짐, 그간 눈에 보이지 않던 것들이 인장처럼 얼굴에 새겨져버리는 것 같아서다. 어떤 갈등, 어떤 문제는 열렬히 간구한다 해도 일시적인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닷새간, 오후 8시부터 한 시간 동안만"의 일이면 좋으련만... 나이 들면서 맞닥뜨리는 일들이 대개 그렇지 않았다. 특히 관계속에서 벌어지는 일들은 "잠시동안의 일, 일시적인 문제"로 끝나질 않는다. 그러면서 오늘처럼 미간에 일자주름을 깊이 새기고 턱에 닿을 만큼 입꼬리를 떨어트린 채 맨 얼굴의 나를 마주한다. "일찍이 그녀 자신이 결코 닮지 않겠다고 단언하던 그런 여자를 닮아 가고" 있다는 걸 깨달으며. 그저 찬물을 얼굴에 끼얹는 것이다.                                                                                                                                                                                                                          


*덧


발리우두 여배우처럼 고혹적으로 생긴 인도계 미국작가 줌파 라히리는 <축복받은 집>으로 퓰리처상을 받았는데, 단편집으로는 최초의 수상으로 알려져 있다. 이 책은 출판사 <마음산책>에서 최근에 다시 출간되었다. 출판사가 달라지면서 번역자도 바뀌었는데, 그러면서 제목도 달라진 수록작들이 있다. "A Temporary Matter"는 첫 책에서는 "잠시동안의 일"로, 재출간된 책에서는 "일시적인 문제"로 번역됐다. 관계의 파국을 눈앞에 둔 젊은 부부의 이야기라는 걸 생각해보면 후자가 더 적확한 것 같지만, 제목의 어감상으로는 전자가 문학적 감성에 더 호소하는 듯도 하다. 한글과 한자 차이에서 기인하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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