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stranger Aug 30. 2019

한국인의 일중독 DNA

15. 우리나라 역사에는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März 23, 2012

항상 같은 시간대에 있는 기차를 타고 출퇴근하다 보니 트루먼쇼 주인공이 된 기분을 느낀다. 영화 '이터널 선샤인'의 첫 장면처럼 늘 타던 기차에서 갑자기 내리는 상상도 해본다. 나는 인생이 길 따라 달리고 있는 기차 같다고 느낀 적이 없는데, 모든 것이 제시간에 순조롭게 된다고 믿고 사는 기차 같은 나라를 볼 때마다 놀랍다. 아무리 촘촘한 룰과 매뉴얼들로 선로를 깔아도 늘 예상치 못핸던 순간은 찾아오는데, 기차처럼 달려오던 사람은 할 수 있는 게 뭘까? 탈선일까?


선배 하나 없는 신설 학과를 전공으로 결정할 만큼, 독일어는 한마디도 못하면서 독일에서 일 년 살아보겠다고 결정할 만큼의 위험을 감수하는 나는 삶의 변수들을 최대한 차단하고 1년 뒤에 만날 약속을 아무렇지 않게 하는 독일과는 어지간히 안 맞나 보다. 날씨는 벌써 한국의 벚꽃시즌과 비슷해졌다. 자꾸만 작년 벚꽃시즌이 그리워진다.


오늘은 프랑스인 동료 5명(우리팀 동료 기욤과 다른 팀인 그의 친구들)과 점심을 먹어서, 프랑스어에 휩싸여서 밥을 먹었다. 나는 프랑스어는 인사밖에 모른다. 그것도 너무 답답해서 입사하고 나서 물어봐서 배웠다. 쓸 줄도 읽을 줄도 모르지만, 발음은 네이티브한테 배웠으니 좋을지도 모른다. 그들이 나를 신기한 눈으로 바라봐 주시는 덕분에 밥 먹다 체할뻔했다. 프랑스어는 독일어랑 다르게 한 단어도 못 알아들으니, 나한테는 백색소음이나 음악소리 같은 느낌이다. 프랑스어로 나에 대해 말해도 난 못 알아 듣겠지. 다행히 기욤이 영어로 얘기해야 한다고 해주어서 프랑스어 대화를 멈췄다. 영어로 얘기하자고 하니까 프랑스 사람들의 말수가 줄었다. 밥 한번 먹기 힘드네.


그리고 오후에는 리스트에 있는 모든 연체대금을 다 클리어 시켜서, 더 이상 할 게 없었다. 난 게임을 안 하지만, 어떤 게임을 시작해서 끝판왕까지 다 깨서 할 게 없는 기분이었다. 어제부터 오늘 오전까지 리스트에 있는 모든 담당자들이 전화를 받을 때까지  전화하고 이메일을 보내서, 모든 거래처에게 연체대금을 언제까지 준다는 확답을 받아냈다.


옆 자리의 헬레나가 나를 경이롭다는 듯이 칭찬해주었다.(헬레나는 회사를 30년 다니셨다는 현금흐름을 관리하시는 동료분이다.) 사실 회사에 연체대금이 있다고 해서 내 월급이 안 나오는 것도 아닌데, 나는 자랑스러운 한국사람인지라 연체대금만 보면 내 돈을 못 받은 것처럼 빨리 처리하지 않을 수가 없다.

처음엔 연체사실을 고지하는 이메일을 보내고 하루가 지나서, 답장이 없으면 바로 전화하는 나를 보고, 헬레나는 기겁을 하시면서 일주일은 기다려줘야 하는 거 아니냐고 하셨다.  


나는 이해가 안 돼서 대답했다. '아니, 일주일 기다려줄 거면 편지를 보내지 왜 이메일을 쓰겠어요?'

헬레나 아주머니는 크게 웃으시고는 차분히 설명해주셨다.

'누구나 휴가를 갈 수 있고, 한 번 휴가를 가면 적어도 일주일 씩 부재중이야. 그러니 일주일 정도는 당연히 기다려 줄 수 있어.'


한 번 휴가를 가면 적어도 일주일이라니, 명절 공식 공휴일도 3일이고 여름휴가도 일주일씩 쉬는 것은 드문 일인데. 너무나도 다른 나라에 살고 있다고 느끼면서도, 그래서 이 사람들이 이렇게 여유로울 수 있었다는 걸 깨달았다. 아마 한국에서 일주일 휴가를 간다면 백업할 사람을 지정해두거나 휴가를 떠나서도 일을 처리해줬을 것 같다. 근데 담당자의 휴가를 공백으로 그대로 인정하고 당연히 지연될 수 있다고 하다니... 여태까지 방문했던 관공서와 학교에서 담당자가 휴가라서 오피스 문 앞 까지 갔다가 닫혀있는 문에 발길을 돌렸던 순간들이 스쳐갔다.   

 


2019.8.30

이제는 DNA 하면 BTS가 제일 먼저 떠오른다!

독일에서 일하면서 나 자신도 이상하다고 느낀 것은 나만 '전생에 일 못해서 한 맺힌 사람'처럼 일을 한다는 점이다. 그 누구도 빨리하라고 한 적도 없고, 잘 돼가고 있는지 재촉하거나 확인하는 사람도 없는데 나만 일단 하기로 한 일이 빨리 되지 않으면 전전긍긍이다. 주변 동료들이 그렇게 일 하는 나를 보고 놀랐던 것만큼이나 나도 유럽 클라이언트들이 답장이 느린 것에 놀랐다.


저 날 헬레나 아주머니가 설명해 주신 덕분에, 큰 충격과 함께 이 곳에 사는 이상 나도 이 공백을 받아들이고 살아야만 한다는 걸 알게 되었다. 지금은 한국에서도 연차를 길게 사용해서 1주일 혹은 2주일까지도 휴가를 쓰는 사람들이 조금 더 생겨났지만, 불과 저 때까지만 해도 정말 드문 일이었다. 또 내가 자라면서 부모님이나 주변 어른들이 3일 이상 직장을 쉬시는 일은 직업이 선생님인 경우를 제외하고 볼 수 없는 풍경이었다.


도대체 우리 역사에서 무슨 일이 있었길래 나는 쉬는 것에 이렇게 인색한 걸까? 나 역시 한국인의 DNA를 물려받아서인지 빨리 일을 끝내버리지 않으면, 답답한 마음에 집에 가서도 일이 머릿속에 남아있다. 반대로 그들에게는 어떤 역사가 있었길래, 긴 휴가와 여유가 있는 것일까? 한국인의 '빨리빨리 DNA'와 '일단 시작했으면 제대로 결판을 내려는 DNA'는 시너지가 폭발해서, 특히나 직장에서 빠른 시간 안에 도저히 안 될 것 같은 일도 무리해서라도 되게 만들어 버리는 아웃풋을 내는 것 같다. 유럽 친구들은 이런 점을 놀랍고 대단하다고 해주면서도, 한편으론 잘 이해하지 못하고 누군가는 불쌍하게 여기기도 했다.


'학생들이 학교에서 공부하고, 밤 11시까지 학원에서 공부를 또 한다고? 그럼 대체 학생들은 언제 쉴 수 있어? 개인의 취미생활은 할 수 있어?', '지금 한국에서 메일에 답장이 왔어. 그 나라 시간으로 밤 10시야. 설마 아직까지 일 하는 거야?' 같은 질문들에 사실대로 답해주었을 때, 그들은 진심으로 안타까워했다. 그리고 쉴 시간이 없는 것에 대해서 심각하게 받아들였다. 반대로 나는 '쉬는 게 그렇게까지 심각한 문제였어?'라는 생각이 들었다.


많은 담당자들의 휴가로 독일에서 일처리가 늦어져서 서러운 순간들이 많았기 때문에, 그곳에서 지낼 때는 누군가의 휴가가 원망스러운 존재였다. 직장인이 되고나니 연차 하루하루가 소중하다. 학생이 아니니 방학이 없기 때문이다. 다행히도 우리 회사는 3년 근속 시 1달 안식휴가를 쓸 수 있다. 이 안식휴가 만큼은 모든 직장인들이 부러워하는 복지이다. 곧 안식휴가를 떠나지만 나도 5주 동안 완전히 일과 분리된다는 사실이 아직까지 믿기지 않을 만큼 긴 휴가라고 느껴진다.


한국에서 한 달 휴가는 분명 '장기휴가'이다. 독일회사의 휴가는 1년에 30일이었다. 게다가 공휴일도 있고, 크리스마스 연휴, 부활절 연휴 등은 연차와는 별도이다. 동료들 역시 휴가를 갔다 하면 최소한 5일, 보통은 1, 2주였다. 여름휴가는 3주를 당연한 것으로 생각했다. 그렇게 보면 나의 안식휴가가 다시 소소한 것이 된다. 분명 '안식'휴가인데 요즘 퇴근 후에는 여행사 라도 하나 차릴 것처럼 유럽여행 준비를 한 달째 하고 있다. (체감은 투잡을 뛰는 것 같다.) 벗어나야지 하면서도 벗어날수 없는 이놈의 한국인의 일 중독 DNA.


나보다 1000000배 바쁜 BTS도 휴가를 갔다. 쉬는 것은 이렇게나 중요하다.





매거진의 이전글 Exchange Student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