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 한국과 독일의 교환학생
März 21, 2012
작년 2학기 나와 교환되어 한국의 내 모교에 교환학생으로 갔던 Heine와 드디어 만났다. 나와 교환된 학생을 만날 수 있다는 기대감에 회사에서부터 신이 났다. 간단히 케밥으로 저녁을 먹고 Irish pub에 갔다. 한국음식이 너무 맛있었고 한국이 너무 좋아서, 한국에서 일도 하고 싶다는 하이네의 초긍정 한국 체험기는 독일에 처음 온 날부터 지금까지 힘들었던 나의 얘기와는 극명히 대비되었다.
형편없는 매너의 교환학생 버디를 만나서 안 좋았던 독일의 첫인상부터, 우울함의 끝을 맛본 독일의 겨울 날씨까지 독일에 와서 겪은 모든 억울하고 속상한 일들을 하이네에게 일러바쳤다. 반면 하이네는 한국에서 친절한 한국인 버디를 만나서 함께 축구도 하고(독일인의 행복지수에 너무 중요한 일!), 누군가와 썸을 타기도 하고 한국어도 배우고 홍대도 가고 막걸리에 파전도 먹고 신나는 일들만 있었던 것 같다.
서로 상대방의 나라에서 받은 컬처쇼크를 얘기하면서는 나는 독일에서 수업 첫날 강의가 끝나자 갑자기 발을 구르고 책상을 두들기는 모습에 큰 충격을 받았다고 했고 (박수보다 큰 소리를 내기 위해서 하는 행동이라고 한다... 여전히 이해하긴 어렵지만...), 하이네는 밤 11시에도 기숙사로 치킨을 배달해 먹을 수 있다는 것에 충격을 받았다고 했다.(뭘 그런 걸 가지고...)
하이네는 모든 크고 작은 일에 자기 생각을 강력하게 주장하는 곳에서만 지내다가, 정 반대의 모습인 한국사람들 사이에 있으면서 평화로움을 느꼈다고 했다. 그의 표현을 빌리자면 유럽에서는 결국 다른 이의 의견과 같은 의견이면서도, 모든 일에 자기 의견을 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In my opinion...'으로 시작하는 모든 이의 주장을 들어야 하는 것이 지긋지긋했다고 한다. 내 입장에선 한 번도 해보지 못했던 생각이었다. 한국 학생들이 '나도 그래', '아무거나 괜찮아', '니 의견대로 하자'라고 말하는 모습이, 줏대 없고 생각 없는 게 아니라 평화롭게 느껴질 수 있다니...
그와는 정반대로 나는 이곳에 와서 'In my opinion...'으로 내 생각을 분명히 전달하지 않으면, '오늘 밥 뭐 먹을래?' 같은 small talk인데도 아무거나 괜찮다고 하면 답답하고 이상한 사람으로 여겨졌다. 심지어 조별과제에서는 나는 친구들 의견이랑 같아서 'I think so too.'라고 한건데 내가 동의하는 이유를 말할 때까지 오랜시간 기다리기까지 하는 상황을 만나면서 모든 일에 의사표현이 분명해졌다. 이 곳에 오기 전에는 내가 다른 사람들보다 의사표현이 적극적이라고 생각했는데, 여기 사람들에 비하면 '이해하기 어려울 정도로 다른 사람 생각에 순응해주는 동양인'에 가까웠다. 나는 이 나라에서는 명확하게 내 의견을 밝혀도 비난받거나 눈총 받지 않는 자유를 느껴서 좋았는데, 누군가는 그게 평생 지긋지긋했다니! 하이네와 얘기를 하면 할수록 내가 지구 정반대에 있는 사람과 교환되어 살고 있다는 게 실감됐다.
이 곳에서 남은 시간은 4개월 정도. 남은 시간 동안 뭘 할지, 계속 독일과의 인연을 붙잡을지, 유럽 대륙의 한 국가에 머물렀던 것으로 끝내고 돌아갈지 고민이 된다. 분명해진 것은 단지 한국사회가 싫다는 이유로 한국을 떠나고 싶지는 않다는 것이다. 본의 아니게 사계절을 지내다 보니 깨달았다. 한국사회의 더럽고 치사한 부분들, 비효율적이라고 느껴지는 것들 때문에 다른 나라에 사는 것을 선택하는 것은 사실은 불만족스러운 현실에 대한 '도피'이다. 그런데 애초에 인생에서 완전한 도피처는 없다. 그래서인지 다른 나라를 선택한다면, 도피한 곳에서 원치 않는 현실을 만났을 때 내가 다시 도망칠 궁리를 하고 있을 것 같다.
우리나라의 모든 것이 마음에 드는 건 아니지만, 아니 반대로 거의 대부분이 바뀌었으면 좋겠지만, 시작도 하기 전에 그냥 피해버리는 것은 잘못 시작하는 게임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아무리 피해봤자 언젠가는 막다른 골목에서 마주칠 것들이 있다는 걸 알기에, 지금은 피하지 않는 것이 더 맞는 것 같다.
2019.7.22
'다른 사람의 하루와 내 하루를 바꿔서 살아볼 수 있다면...?'이라는 영화에서나 가능할 법한 일의 현실 버전이 교환학생이다. 언제부터 어디서부터 시작된 제도인지는 모르겠지만, 갔을 때는 못 느꼈는데 한참 뒤에 생각해보니 지구의 다른 나라에 사는 누군가와 일상을 교환해서 살아볼 수 있다니 신통방통한 제도이다. Exchange Student에서는 'Student'보다는 'Exchange'가 압도적으로 중요하고 스펙타클한 일이다. 나와 일상이 교환되었던 그 친구는, 시간이 흘러서 작년 어느 날 한국인 아내분과 결혼했다. 결혼식에도 초대받았는데 너무 멀어서 가지 못해 미안했다. 한 학기짜리 교환학생의 나비효과는 누군가의 평생의 반려자를 결정하는 데 영향을 주었다. 내 인생이라서 잘 못 느끼고 있는 거겠지만, 나에게도 큰 영향을 준 사건임은 분명하다.
저 날 이후로도 독일에 계속 남을지, 귀국했다가 기회를 틈타서 다시 돌아갈지 고민에 고민을 더했지만 나는 결국 한국으로 돌아가는 것을 선택했다. 그리고 아직 기회를 틈타서 독일로 돌아가지도 않았다. 돌아온 곳에서는 외면하고 싶은 현실들이 계속 들이닥쳤다. 취업을 해야 되는데 몇 종인지도 모르겠는 스펙이 필요하다고 하질 않나, 그걸 다 갖춰도 몇십 군데의 원서를 써도 겨우 한 두 곳 면접을 보면 다행이라고 하는 현실이었다. 바로 앞 학번인 08학번부터 졸업은 정체되어서 졸업을 연기하는 것은 당연한 일 되었고, 밝은 표정으로 졸업식을 참석하는 학우들은 거의 없어지기 시작했다. 도피하지 않은 대가를 꽤 비싸게 치른 후에야, 겨우 숨 돌리는 일상을 되찾을 수 있었다. 진짜 도망치고 싶을 때마다 내 선택을 후회한 순간도 여러 번 있었다.
완전한 도피처가 없다는 생각은 여전하다. 반대로 어디를 가든지 결국엔 마주하게 될 일들이 있다고 인정했으니, 다른 나라에 가서도 담담히 어려운 일들을 마주하면 될 일이라는 생각도 있다. 이 고민은 23살이었던 저 때도, 7년이 흐른 지금도 똑같이 어렵고 무겁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