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stranger May 02. 2020

우뇌가 마음이라면

뇌과학자의 뇌가 멈춘 날

나는 내가 죽었다고 생각했습니다 -뇌과학자의 뇌가 멈춘 날

Jill Bolte Taylor 지음, 장호연 옮김


내 맘대로 서평

오랜 시간 일방적으로 오해받고, 구박받았음에도 자신이 할 일을 담담히 맡아 준 나의 우뇌에게 사과하고 싶어 졌다. '인사이드 아웃'의 책 버전.


추천   

영화 '인사이드 아웃'의 인간의 뇌(마음) 속에서 일어나는 일들이 재밌었던 사람

'감정과 직관보다는 논리와 이성이 앞서야 한다.'는 생각이 확고한 사람

움직이고, 말하고, 기억하고, 학습할 때 좌, 우뇌가 각각 어떻게 일하는지 알고 싶은 사람

마음의 실체를 과학적으로 알아보고 싶은 사람

비추천   

과학에는 관심 있어도, 생물 특히 '인체의 신비'가 신기하게 느껴지지 않는 사람

뇌 이야기만 가득 찬 책은 꼴도 보기 싫은 사람

뇌졸중 환자의 셀프 관찰기를 읽고 싶지 않은 사람

마음, 에너지 이런 얘기는 시간 낭비라고 생각하는 사람


경고. 이제부터 책 내용이 스포일러 될 수 있습니다.


뇌가 어떻게 동작하는지 연구해 온 작가는 어느 날 좌뇌에 문제가 생겼고, 발병부터 회복까지를 관찰한 이야기이다. 특히 좌뇌에서 출혈이 발생해서 뇌졸중 증상을 겪고, 병원에 실려 갈 때 까지가 많은 분량에 걸쳐서 영화처럼 묘사되어있다. 실제로는 짧은 시간이지만 좌뇌가 망가지는 동안 평소에 쉽게 되던 것이 불가능 한 상황을 자세히 설명하다 보니 길어졌던 것 같다. 극적이고 신기한 현상이지만, 같은 상황을 반복적으로 묘사한 부분에선 독자로서 끝까지 읽는 데 인내심이 필요했다.


좌뇌의 손상 이후로 작가는 아기처럼 말하고, 글씨를 배우고, 걷는 것부터 다시 배워야 했다. 작가가 완전히 회복되기까지는 8년이 걸렸다. 긴 시간 동안 마치 세상에 처음 온 것처럼 모든 것을 새로 배우면서, 혼란스럽고 현재 상태에 만족하고 싶어 하는 감정을 느꼈다고 했다. 그런데 그때마다 작가의 어머니가 몇 번이고 반복해서 회복을 도와준다. 이 부분에서 아기가 자라면서 어떤 감정을 느끼면서, 걷고, 말하고, 글씨를 배우는 것 인지 조금이나마 추측해 볼 수 있었다. 작가의 좌뇌가 제 기능을 잃은 뒤로, 감각기관으로부터 너무 많은 정보와 에너지가 쏟아져 들어와서 이를 처리하고 뇌가 쉬기 위해서는 잠을 많이 자야만 했다고 설명했다. 아기도 태어나자마자 주변 환경에 익숙해지기까지 감각기관으로 들어오는 모든 정보와 자극으로 매우 피곤할 것 같다. 불안하고 무서울 것 같기도 하고, 그래서 아기들이 오랜 시간 자는 것일까?


나 또한 인내심 있는 부모님의 양육 덕분에 더 이상 배우고 싶지 않고, 멈춰 있고 싶은 많은 고비를 넘기고 발달 과정에 맞게 성장해서, 스스로 학습하는 어른까지 자란 것이었다. (여태껏 시간이 흘러서 알아서 큰 줄 알았던 것은 멍청한 착각이었다.) 내가 다 기억하지 못하는 어린 시절의 나를 사랑으로 돌봐주신 부모님께 감사해야지 하는 마음이 들었다. 그리고 만약 내가 아이를 낳아 키운다면, 혼자서는 제대로 자라날 수 없는 연약한 어떤 존재를 무한한 인내심으로 반복해 훈련시키면서 스스로 걷고, 말하고, 생각할 수 있을 때까지 돌봐야 한다는 의미 임을 깨달았다.


좌뇌가 망가진 작가는 '어머니'라는 단어를 소리로 들어도, '어머니'라는 소리가 나는 글씨의 모음집으로만 인식할 수 있었고 실제로 그것이 어떤 의미인지 떠올리기 위해 애를 써야 했다. 작가는 뇌가 손상된 상황을 잘 설명하기 위해서 뇌에 저장된 정보를 컴퓨터에 저장된 파일로 비유해 설명했다. '어머니'라는 단어가 어떤 파일과 연결되어있고, 어디에 저장되어 있는지 알 수 있는 기능을 상실한 상태가 좌뇌의 고장이다. 우뇌는 어머니라는 단어와 연결된 정보를 이미지로만 갖고 있다. 뇌를 컴퓨터에 비유해 설명할 때 더 이해하기 쉬웠다는 사실이 좀 충격적이었다. (내 직업 때문은 아니겠지?) 컴퓨터와 '뇌'가 하는 일이 많이 닮았다는 사실에도 복잡한 기분이 들었다.


우리에게 어떤 기억은 인과관계, 정확한 장소, 시각에 대한 정보는 흐려진 채, 그림이나 사진처럼 혹은 짧은 동영상처럼 남아있다. 우리는 그걸 순간이라고 부르기도 하고, 추억이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정보를 그런 방식으로 저장하는 것이 우뇌이다. 어머니가 나를 낳아주신 존재이고, 나의 어머니는 어떻게 생겼고, 나는 어머니와 어떤 것들을 같이 했고, 사람들은 '어머니'라는 개념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이 모든 구체적이고, 때론 추상적인 언어로 표현된 정보를 저장하고 처리하고, #어머니라는 해시태그를 붙여 맵핑하고 관리하는 것은 좌뇌이다. 내가 어머니라는 단어만 들어도 그 의미를 알고, 우리 엄마와의 추억을 여러 장의 이미지로 떠올 릴 수 있을 만큼 좌뇌와 우뇌가 모두 건강한 상태인 것에 감사하며 책을 읽었다.


이 책은 다소 불순한 의도에서 집어 들었다. 우리의 뇌가 일하는 방식을 알고 나면, 학습을 쉽게 하는 방법을 알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이 가장 컸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뇌가 일하는 방식을 알게 되면 다른 사람들의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이해하는 데 힌트를 얻을 수 있을까?'였다. 두 가지 질문에 대해 약간의 힌트가 될 만한 뇌과학 지식을 담고 있기는 했다. 그러나 이 책이 주목하는 것은 내 호기심과는 반대 방향에 더 가깝다. 학습보다는 '감정을 다루는 법'에 다른 사람보다는 '자기 자신'에게 초점을 맞추고 있다.


책 뒷부분의 핵심은 우리의 우뇌에서 일어나는 일을 좀 더 존중하고 관심을 가져보자는 것이다. 대다수의 현대인들에게 더 가치 있는 것으로 평가받는 것들은 좌뇌가 하는 일이다. 단편적으로 말하면 국, 영, 수에서 탁월한 능력을 발휘하는 것. 반면 우뇌는 자신의 기분이 어떤지 미묘하게 느끼고, 직관에 따라 행동하고, 상황이나 사람으로부터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에너지를 감지해 내고, 분노나 슬픔 등의 감정을 표출하는 것 등을 한다. 이 책의 설명에 따르면 우뇌가 담당하는 역할이 우리가 '마음'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가장 인상적이었던 이 책의 한 부분을 소개한다.

나는 책임감이란 '특정 순간 감각계로 들어오는 자극에 어떻게 반응할지 선택하는 능력'이라고 정의한다(영어로 책임감을 뜻하는 'responsibility'는 반응 response 하는 능력 ability이다).
출처 : 질 볼트 테일러, <나는 내가 죽었다고 생각했습니다.>

작가의 설명에 따르면 감정은 자동적으로 설계된 뇌의 반응이고, 시작되어서 완전히 멈추는 데 90초 정도가 걸린다. 예를 들면 분노가 시작되는 것은 우리가 막을 수 없고 90초 동안은 분노가 표출된다. 그 이후는 우리의 선택이다. 그 이후에도 우리의 관심과 생각이 계속 분노라는 감정에 초점을 맞춘다면 이때부터는 우리가 의식적으로 분노하기로 선택학 것이다. 작가는 그래서 감정은 자연스러운 것이고, 언제든지 촉발될 수 있지만 어떤 감정을 지속적으로 유지할지는 한 번 패턴화 되면, 패턴의 경향이 강화되고 이 선택의 순간을 인지하고 의식적으로 감정의 순간에 주목할수록, 감정을 지속할지 그만둘지 선택할 수 있는 힘이 길러진다고 설명한다. 내가 느끼고 싶지 않은 감정에게 더 이상 관심을 주지 않아야겠다는 생각을 다시 한번 하게 됐다.


또 흥미로운 것은 우뇌는 지금 여기에 주목한다는 것이다. 지금 느껴지는 촉각, 시각, 후각, 미각과 여기를 구성하는 사람, 자연, 풍경 등으로부터 정보를 모으고 어떻게 느껴지는지 반응한다. 과거의 정보와 미래에 대한 걱정을 늘어놓는 것은 주로 좌뇌인데, 좌뇌의 재잘거림을 잠시 무시하고 지금 여기에 집중하는 연습이 필요하다고 조언한다. 나는 사람이 행복하다고 느끼는 것이 좌뇌가 세운 계획과 목표를 달성한 순간일 수도 있지만, 감각계와 운동신경계 그리고 직관으로 느껴지는 행복한 순간들이 모이고 쌓여서 일정 수준을 넘기면 '나 요즘 꽤 행복하다'라고 느낄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오늘 몇 번이나 행복감을 느꼈는지가 중요한 정신건강의 지표 중에 하나가 된다고 생각한다.


나는 독일에 다녀온 이후에 드라마틱하게 성격이 많이 변했는데, 가장 큰 변화는 내 감정에 조금 더 귀를 기울이는 사람이 된 것이다. 이전의 나는 감정에 충실한 시간을 보내는 것을 한심하게 여겼다. 그게 오랜 시간 패턴화 되었는지 어지간해서는 미묘한 감정의 변화는 못 느끼고, 대부분의 부정적인 감정은 피곤함과 짜증남으로 대체되어 표출되었다. 아마도 주변 사람들은 나를 예민하고 날카롭다고 느꼈을 것이다. 새로운 환경에서 혼자 여러 가지 상황을 겪다 보니 다양한 감정을 마주했는데, 감정이라는 게 다채롭고 같은 감정이어도 그 정도의 차이가 크다는 것에 대해 제대로 인식하는 과정이 큰 도움이 되었다. 그리고 스트레스받는 상황에도 즐거움을 주는 환경을 의식적으로 스스로에게 제공해 주면 훨씬 도움이 된다는 것도 배웠다. 이 책에서 나온 대로 내가 좋아하는 향을 맡고, 아이스크림을 먹고, 좋아하는 음악을 들으면서 산책하는 순간에 집중하면 그 순간만큼은 스트레스 요인과의 연결을 끊고 내 마음을 진정시켜주는 것에만 몰두할 수 있었다.


지금 여기에서 행복해질 수 있게 도와주는 것들에 더 주목하고, 어떤 것에 어떻게 반응하는 어른이 될 것인지 고민하게 해 줘서 고마웠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