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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tranger Jul 03. 2016

따뜻하고 차가운 독일

9. 한국에 가기 전

28.02.2012 


  독일에서는 법적으로 1년에 총 30일에 휴가를 쓸 수 있고, 나에게는 6개월간의 인턴 기간 동안 15일의 휴가가 주어졌다. 인턴을 시작한 지 아직 한 달도 되지 않았다. 그렇지만 동생의 훈련소 면회일에 맞춰서 휴가를 내려면 당장 다음 주이니 무거운 얘기지만 더 이상 망설일 시간 조차 없었다. 상사인 Mr.Berger 씨에게 군인 동생의 면회 겸 어머니가 아프셔서 한국에 다녀와야 할 것 같다는 얘기를 어렵게 꺼냈다. 

비행기표는 샀어?  안 샀으면 지금 당장 ASAP로 비행기표부터 사야지.

라는 답변을 들었다. 본인도 영국에서 유학했을 때가 생각난다면서, 한국에서는 군인들이 주말마다 가족을 만날 수 있지 않다는 얘기에 충격을 받으셨다. 그리고 휴가는 원래 네가 쓰고 싶을 때 쓸 수 있는 것이니 스케줄만 메일로 미리 알려달라고 하셨다. 그리고는 보스는 나에게 충고를 덧붙였다. "너는 한국에 당연히 가야 하고, 꼭 가야 해. 가족은 항상 일보다 중요해." 보스가 얼마나 워커홀릭인지 알고 있어서 이 말이 더 감동적이었다. 감동적인 보스 덕분에 나는 편안한 마음으로 일주일간 한국을 다녀올 수 있게 되었다. 


거의 매일이 파티인 스페인 교환학생 친구를 퇴근길에 만났다. 난 파티를 별로 안 좋아해서 매번 거절하는데도 꼬박꼬박 찾아와서 "우리 파티할 거야~ 와서 놀아" 하는 친군데, 12시간 동안 기차를 타고 베를린에 도착하자마자 클럽에 가서도 지치지 않는 그런 친구인데!!! 웬일인지 퇴근길에 만나니 엄청 지쳐 보였다. 다크서클이 땅에 닿을 것 같아 보였다. 회사 다니는 게 많이 피곤하냐고 물으니 그동안 힘들었던 일들을 안드레아 특유의 스페인 억양 가득한 영어로 쏟아놓았다. 

독일말도 어렵지만 독일 사람들과의 관계가 가장 어렵다고 한다. 점심 때는 프랑스인 동료인 기욤하고도 같은 얘길 했는데 신기하다. 원래 좀 과격한 안드레아는 "독일인들이 로봇이랑 다를게 뭐야? 왜 그렇게 눈치가 없어!!"라고 했다. ㅋㅋㅋ 완전 반대인 스페인 사람이니 얼마나 힘들겠나 싶어서 같이 맞장구를 쳐줬다. 심지어 다른 스페인 친구들이 "저녁에 같이 외식할래?"하는데도, 피곤하고 내일도 출근해야 하니 그냥 쉬겠단다. 파티 파티 스페인 친구마저 철들게 하다니... 독일이 정말 대단하다 싶다. 


집에 오니 너무 힘든데 피자 먹으면 먹어도 힘이 안 날 것 같아서, 밥을 해서 김치볶음밥이라도 먹으려고 한다. 요즘 점심이 너무너무너무 맛없다. 샤이세...

프랑스 친구랑 나는 이틀째 샐러드랑 후식만 먹고 메인디쉬는 받아서 반도 채 못 먹고 있다. (너무 맛이 없어서) 십 분도 안 돼서 식사가 끝났다. 도대체 이게 음식이냐면서 프랑스 친구의 불평을 듣는데 너무 웃겼다. 


It's not finished.

완성된 음식이 아니라니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독설이지만 프랑스인이라면 혹평할 만하다. 그렇지만 내 입장에서는 프랑스인들도 신기한 것이 메인디쉬가 너무 별로라서 크로와상만 먹었더라도 달달하기 그지없는 크림+베리 디저트는 꼭 챙겨 먹는다. 

나에게 혹평을 받은 음식은 'bohnensuppe'이다. 콩으로 만든 수프에 삶은 소세지가 함께 담겨있는데 비주얼이 영... 내가 콩도 싫어하고, 어린이 입맛이라서 그렇기도 하고, 프랑스 친구도 좋아하지 않는 음식이다. 

 

 bohnensuppe  출처: rezeptwiese.de

일주일에 한 번 꼴로 메인디쉬로 나오고 있는데, 한 번 맛본 뒤로는 손을 안 대고 있다. 프랑스 친구도 마찬가지다. 반면, 같이 먹는 독일 동료는 이걸 냉면그릇 가득히 먹는데 맛있게 먹는 모습이 매번 놀랍다. 내가 밥을 먹는 둥 마는 둥 하면서, 삶아진 파스타에 파마산 치즈만 뿌려먹었더니 독일 친구가 독일 음식이 맛이 없냐고 물었다. "전쟁 중에 먹는 음식 같아. 한국전쟁이나 2차 세계대전 때 먹을 것 같아." 했더니 프랑스 친구는 빵 터져서 웃고 독일 친구는 멋쩍어하면서 자기는 맛있단다. 이왕 얘기가 나온 김에 무슨 감자 요리가 이렇게 많냐고 불평을 했다. 나는 한국에 돌아가면 감자는 안 먹을 거라고 했다. 회사 급식에 매일 감자요리가 조리법만 다르게 해서 2가지 이상 씩 나온다. 감자튀김, 웨지감자, 삶은 통감자, 알감자 구이, 으깬 감자에 샐러드 바에도 감자 샐러드가 항상 있다. 독일의 감자 샐러드는 새콤한 맛이 나는데 식초, 올리브유, 감자, 허브가 주재료이다. 

kartoffelsalat 출처 :http://www.anexpatcooks.com

처음 독일 교환학생이 결정되고 '독일 주식'이라고 구글에 검색했더니 20세기에 만든 것 같은 사이트에서 주식이 감자라고 했다. 너무 옛날 사이트라서 주식이 감자라고 알려주나 하고 와봤더니 진짜 주식이 감자다...(내가 얼마나 독일에 대해 모른 채로 왔던 건지!!! 무식하면 용감하다더니)

내가 하도 불평을 하니까 애들이 한국에선 도대체 급식이나 평범한 한 끼가 어떤지 궁금해했다. 기본적으로 밥, 국, 3-5가지 사이드 디쉬가 한 세트라고 했더니 쉽게 상상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 반찬 추가해도 돈 안 받는다고 했더니, 내 얘기를 못 미더워했다... 한국 가면 식당에서 사진을 찍어와서 보여주던지 해야겠다.



2016.07.03

오랜만에 4년 전 독일에서 함께 지냈던 한국 분들을 결혼식에서 만나 얘기 나누던 중 역시나 음식 얘기가 빠지지 않았다. 독일에서는 한국음식 먹을 기회만 생기면 이때다 하고 많이 먹어두었던 일을 얘기하면서 많이 웃고 또 생각이 났다. 돌아와서 제일 좋았던 것이 김밥을 저렴한 가격에 사서 먹을 수 있다는 것이다. 난 어린이 입맛이라 김밥을 좋아하는데, 독일에선 한국 김밥을 당연히 사 먹을 곳이 없다. 정체불명의 김밥을 파는데 김에 밥을 깔고 오이나 게살 같은 심심한 재료 한 개만 돌돌 만 것을 어처구니없는 가격에 판다. 

한국에 방문했던 외국인 친구들은 김밥을 굉장히 칭찬한다. 한 프랑스 친구는 재료도 다양하고, 건강한 음식인 김밥을 왜 그렇게 싼 가격에 파는지 진지하게(?) 나에게 물었다. 김밥을 그런 시선으로 생각해 본 적이 없어서 나도 명쾌한 대답을 해주지 못했다. 아무튼 그렇게 대단한 김밥이라서 안 먹으면 자꾸 생각이 난다. 독일교회에서 소풍 가던 날에는 다 같이 재료를 준비해오고 나는 열심히 말았던 기억이 남아있다.

김밥뿐만 아니라 타국에서는 모든 한국음식들이 한국에서보다 더 많은 정성을 들여야 먹을 수 있다. 배달의 민족 앱으로 떡볶이가 배달되는 일은 타국에서는 적어도 독일에서는 없다. 한국에선 흔해빠진 콩나물도 독일에는 한국과 같은 것이 없다. 한국에서 일상적으로 먹던 음식들을 맛보려면 일단 재료를 구하는 것부터가 쉽지 않은 일이다. 구할 수 없는 것은 아니지만 한국에서보다 훨씬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편식하는 어린이 입맛에다 원래도 빵, 파스타, 피자를 밥보다 더 좋아하는 나인데도 감기에 걸리면 따뜻한 국물이 생각나고, 분식을 6개월 이상 못 먹으니 '일이 커져도 내가 김밥을 한 번 만들어 볼까?' 결심하게 만들었다. 그런 곳에서 엄청난 정성으로 따뜻한 한국음식을 해주셨던 손길들이 있다. 때로는 한국교회 어른들의 그리고 먼저 유학 와서 집에 초대해주는 언니들의 한국음식은 단순히 먹는 것 이상의 무언가였다. 정성스럽게 차려주신 밥 한 숟가락을 입에 넣을 때 행복하면서 울컥하는 기분이 밥의 온기와 함께 퍼지는데, 한국에 와서는 아직 그 기분을 다시 느껴본 적은 없다. 

아마 지금도 타국에서는 내가 일상적으로 먹는 백반 한 상이 그리운 분들이 많겠지... 나 역시 반대로 독일의 Radler와 Wurst가 가끔 그립다. 사람의 심리가 참 복잡 미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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