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님이랑 미팅하고 울컥한 예비 1인 출판사 대표
회사의 노비로 살던 나를 대뜸 1인 출판사의 길로 던져 놓은 모 작가님을 드디어 만나고 왔다. 일단 소감을 말하자면 내가 인생 헛살진 않았구나, 싶기도 하고 내 편이 있다는 건 든든하다는 걸 새삼스럽게 깨달았다고나 할까.
얼마 전에 작가님이 진지하게 동화책을 내고 싶다는 말에 그럼 내가 출판사를 만들어서 그걸 내면 좋겠다! 싶어서 시작한 일이라 어찌 보면 그 작가님의 원고가 없으면, 그 작가님의 책을 내지 못하면 이 출판사의 시작은 불가능할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그래서일까. 나름 오래 본 사이이고 최근에 자주 얼굴을 보긴 한 덕에 얼굴을 봐도 별로 긴장 안 하는데(원래는 엄청나게 내 심장을 롤러코스터 태우는 사람이었음. 정체는 언젠간 밝히기로.) 원고를 부탁하는 입장에서 얼굴을 보려니까 오랜만에 긴장되어서 죽는 줄 알았다. 엉엉.
원래 다른 목적으로 만나는 자리인데 만나는 김에 겸사겸사 출간 이야길 하려고 했던 거라 어느 타이밍에서 말을 꺼내야 하나 고민이었는데 다른 목적 수행 중에(?) 작가님이 먼저 출간 관련해서 궁금한 거랑 자신이 하고 싶은 것들을 이야기해 주셔서 다행이었다. 내가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작가님이 동화책 내려는 이유가 확고했고 또 내고 싶다는 마음이 진심인 걸 알아서 나름대로 용기를 내서 '그럼 나랑 계약하죠!'라고 외쳤고 1초도 안 되어서 OK를 받았다. 그래서 이게 맞나, 싶어서 얼떨떨했는데 오히려 나랑 같이 일을 하면 좋겠다고 하셔서 그간의 긴장이 사르르 녹는 기분이었다.
기세를 타서 다음번에 만날 때는 정식 계약서 들고 오겠다고 선포하니까 막 웃더니 갑자기 한다는 소리가.
"나를 도와주는 것도 고마운데 나는 네가 잘됐으면 좋겠어. 그러니까 계약금 같은 목돈은 신경 안 쓰지 말고 나중에 책 내고 나서 천천히 줘도 돼."
솔직히 말해 이 사람을 응원하고 싶은 마음, 이 사람이 더 잘되고 또 다른 형태로 많은 사랑을 받았으면 하는 바람에서 출발한 일이라 그걸 알아주었다는 것에 한 번 감동하고 또 무엇보다도 나의 성공을, 내 행복을 빌어주었다는 것에서 울컥했다. 최근에 용기내서 했던 원고 제안들이 번번이 거절당하고 있어서 역시 쥐뿔도 없는 1인 출판사 대표랑 같이 일해줄 사람은 없는 걸까, 싶어서 의기소침하던 차에 흔쾌히 나를 믿어준 사람을 만났다는 게 얼마나 벅차고 고마운 일이었는지.
게다가 태어날 때부터 오타쿠라서 그간 내가 최애들에게 자주 하던 말이 '당신이 잘되길 바란다'였는데 막상 그걸 내가 들으니 기분이 참 오묘하더라. 그것도 내가 진심을 다해 긴 시간 응원하던 사람에게서 들은 말이라서 더 기분이 이상했던 것 같기도 하고.
곰곰 생각해 보면 내가 대뜸 출판사를 차리겠다고 주변에 전했을 때, 뜯어말리기는커녕 다들 응원해 줘서 뭉클했는데 오늘 작가님에게 직접 '네가 잘되길 바라'라는 말을 들어서 미팅 끝나고 돌아오는 길에 1인 출판사긴 해도 내 인생은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에 훌쩍훌쩍거린 건 안 비밀.
작가님이 장난 반 진담 반으로 헤어질 때 다음번에는 갑과 을로 만나자고 했는데 살면서 을의 포지션이 이렇게 기쁘고 벅차고 또 반갑기는 처음. 우리 갑인 작가님 잘 서포트해서 작가님의 책도, 작가님도 더 많은 사랑을 받을 수 있도록 노력하고 또 노력하는 출판사가 되어야지.